산행(山行). 몇 달 전부터 맨발로 올라갔다가 맨발로 되짚어 내려온다.
올라갈 때, 맨발임에도 앞에 누구라도 보이면 혼자의 호승심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그예 앞질러야 직성이 풀린다. 삶을 경주하듯 살지 말자 했는데, 알게 모르게 무엇이든 앞질러야 한다는
생각이 저 발 밑바닥부터 머리끝까지 꽉 차 있는가 보다. 기껏 몇 발짝 추월하여 얻은 자기만족과 거친 숨으로 폐를 채울 뿐이건만, 쉬 고쳐지지가 않는다.
숨차게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올 때, 숨은 편안하고 승부 따위는 안중에 없다. 치기 어린 호승심도 화로 위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가뭇없다. 기름 친 비닐 장판처럼 매끄럽게 변한 장마 끝 비탈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이다. 저절로 조심하고 겸손할 뿐이다. 하산길에나마 헛된 호승심을 누를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천천히 오르고 더 천천히 내려왔다. 느린 걸음이 눈길을 길섶으로 이끈다. 늦장마가 염천에 머뭇거리던 땅속 생명을 모두 깨우나 보다. 버섯들, 들꽃들이 만화방창이다.
노랑 망태버섯이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 무도회장을 떠나야만 하는 어느 동화 속 공주 마냥 불과 2시간 동안만 햇살보다 화려한 성장(盛裝)을 펼치는 운명. 그 짧은 운명의 시간 속에서 빛나는 노랑 드레스의 그녀와 눈 맞춤할 수 있었던 것을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꼭 만나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발치, 흰 가시 광대버섯이 우뚝하다.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꼭 이런 모양일 것이다. 다소 우락부락 하긴 하지만, 새하얀 연미복이 노란 드레스의 그녀와 썩 어울리는 듯도 하다.
미녀와 야수. 그들에게 허락된 지상의 두 시간, 첫눈에 반하면 좋으련만 눈을 맞추고 수작을 하고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짧다. 그래도 혹 찰나의 사랑에 눈이 멀어 연모가 사무친다면, 견우와 직녀처럼 내년의 두 시간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감꽃인 줄 알았다. 예닐곱 꽃잎을 젖혀 핀 게 꼭 감꽃이다. 노랗지도, 희지도 않은 무채색. 채도와 명도가 높아야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라면 흐릿한 흑백만으로도 충분하다. 테두리 방귀 버섯, 보고 있노라니 감꽃 주워 먹던 어린아이 하나가 빙긋 웃으며 서 있는 듯도 하다.
골짜기 마른 가지에 피어있는 하얀 몇 송이, 영락없는 순백의 매화다. 금세라도 맑은 향이 골에 가득 찰 것 같다. 하얀 선녀 버섯. 어쩌면 엄지손가락만 한 선녀들의 천의(天衣) 런지도 모른다. 옷 벗어 걸쳐 놓고 아마도 그 작은 천상의 여인들은 지금, 물놀이에 빠져있는가 보다.
색깔이 예쁘면 볼 것 없이 독버섯이라고 세뇌가 된 탓이다. 지레 독버섯이겠거니 본다. 자주색이 연분홍을 머금었다. 자줏빛 무당 버섯. 무당이라면 아기 무당이 틀림없다. 여문 갓이 철릭(天翼)처럼 갈라진다. 여물어 갈라져도 순하고 환한 아기 무당, 독은 없단다.
꾀꼬리버섯, 붉은 덕다리 버섯, 우산버섯과 이런저런 이름의 광대버섯.......
늦장마 끝에는 산(山) 가득 꽃 같은 버섯들이 흐드러진다.
나리꽃 지자 달맞이꽃 시작이다. 달맞이꽃 피기 시작하니 무릇 꽃도 지천이다. 연분홍 무릇 꽃 시샘하듯 맥문동은 보랏빛 꽃 알맹이들을 톡톡 서둘러 터트린다. 달개비, 개망초, 파리풀, 그 옆의 노란 짚신나물 꽃...... 매일 이 길을 오르고 내리면서도 언제 피었는지 모르는 것은 나의 무관심이고 잘못이다. 너무 빨리 걸은 때문이다. 몇 발짝 앞서는 것으로 행복을 붙잡으려 한 탓이다.
느리게 걷는 사람들을 만났다. 올라갈 때 만났고, 내려와서 또 만났다.
할머니 4인방. 두 시간 넘게 한숲 공원 황톳길을 천천히 걷고 있다. 모두 맨발이다. 가장 젊고 건강한 현재의 시간을 오늘보다 노쇠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연장을 위해 바치는 애잔함.
넷은 커다란 참나무 밑동에 동그라니 신발 울을 세워놓고 맨발로 걷고 있다.
평균 나이 칠십 다섯이 넘는 그네는 비가 와도 빠지지 않고 걷는다. 두 발로 걸으면서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하고, 오래 드러누울까 걱정하고, 추억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행복한 얼굴들이다. 습관처럼 나오는 걱정의 말들은 가벼워 금세 바람에 섞이고,
맨발로 느리게 걷는 두 시간은 순전한 행복이다. 그래서 4인방은 매일 맨발로 걷는다.
애잔함은 나의 감상일 뿐이다. 쉬 쇠하지 않기를 빌면서 한동안 길벗이 되어드린다.
나도 맨발이다.
미타쿠예 오야신. ‘지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북미 인디언 다코타족의 인사말이다. 맨발로 땅을 밟는 것은 지구와 연결되는 것이고, 같은 시간 맨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모든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젖은 대지를 통해 할머니 4인방과 연결되고, 교감한다. 버섯들과 들꽃들과 이어져 교감하고, 나무들과 또한 교감한다. 모든 맨발인 것들과 연결되어 교감한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맨발로 천천히 걸으면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행복은 몸과 마음의 가벼움에 달려 있다고 했던가.
천천히 걸으면서 비로소 맨발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말 없는 말을 듣는다.
연결된 모든 것들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오늘,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무척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