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하지감자 대여섯 개를 강판에 갈아 전(煎)을 부친다. 벌써 두 달 넘게 빠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는 하루 첫 일과다. 씨알이 굵은 것은 서너 개만 해도 둘이 먹기에 적당하다. 잔 것들은 예닐곱 개쯤은 해야 적지 않다. 그 정도 양이면 계란 프라이 만 한 전 일여덟 장 정도가 나온다. 첫물 풋고추로 담근 장아찌 몇 개와 김치 몇 쪽을 곁들여 아침 한 끼를 대신한다.
나는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는 전형적인 ‘삼식이’다. 퇴직 후에도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면 밥부터 챙겨 먹는다. 한 술이라도 먹어야만 몸도 마음도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퇴직한 남편이 꼬박꼬박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것이라던데, 그런 면에서 나는 참 귀찮은 남자다. 그나마 가리는 것은 없어 있으면 있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먹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변명을 삼는다.
감자전은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음식 만들기에 젬병이라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다. 물론 색과 모양을 내고 맛도 가미해서 제대로 된 요리로 만들 것이라면 말이 달라지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 식사 대용으로 간단히 해 먹을 거라면 껍질 벗긴 감자를 강판에 갈아 베 보자기로 물기를 적당히 짜낸 다음 가는소금으로 살짝 간을 해서 부치기만 하면 된다. 살짝 더 센스를 부린다면 풋고추와 양파를 잘게 다져서 적당량 넣어주면 색깔도 영양도 맛도 제법 갖춘 감자전이 된다. 풋고추와 함께 약 오른 청양고추 하나쯤 보태면 혀가 얼얼하고 뱃속이 후끈해지면서 밤새 느슨해진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아침마다 감자전을 부치게 된 것은 수십 년간 아침상을 차려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내지 보답과 같은 숭고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다. 하다 보니까 즉, 두 달 넘게 감자전을 부치다 보니까 한 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고와 정성이 얼마만 한 것인지 알게 되면서 얼마쯤은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직접 해보니 어려움과 고마움을 알게 된 것이다.
6월 말쯤 고향 집에 내려가 부모님이 직접 농사를 지은 감자를 가져왔다. 더는 일 감당이 안 되어 밭을 내놓을지 고심 중이라면서, 자신들 살아서 주는 마지막 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제법 많은 양을 실어 주셨다.
가져온 감자는 쪄서도 먹고, 닭볶음탕이며 감자볶음 등 반찬으로 만들어 줘 먹기도 했는데, 이내 물렸는지 식탁에 올리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러던 차에 감자즙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위장 건강과 피로 해소에 그만이라는 말에 곧바로 감자 몇 개를 씻어 강판에 갈아 즙을 내 보았다. 생즙치고는 마시기가 역하지 않아 계속해 보기로 작심을 하였다.
즙을 짜내고 남은 건더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전으로 부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이야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의례 하는 것이라 흉내 정도는 낼 자신이 있었다. 전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밀가루 따위를 넣지 않고도 반죽이 적당히 차진 데다, 모양을 내기도 어렵지 않았다. 식감도 찰지면서 부드러웠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빼먹는 날 없이 아침마다 즙을 짜고 전을 부치고 있다.
감자전을 부치기 시작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내다. 주에 사나흘 일을 나가는데, 출근 준비를 하면서 놀고 있는 남편 아침밥까지 차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게 된 데다, 아침 식사 한 끼로 부족함이 없고 물리지도 않는지라 감자전 예찬론자가 되었다.
매일 전을 부치다 보니 아침 한때이긴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주부(主夫)가 되어 버렸다. 가끔 귀찮을 때는 ‘설거지라도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하는 원망이 들기도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주부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30년을 주부(主婦)로 살아온 아내의 삶을 생각한다. 금세 염치가 돌아오고 짠해진다.
손이 무뎌 감자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강판에 갈아 즙을 내고, 양파와 풋고추를 다지고, 전을 부쳐 먹고 설거지까지 40분은 족히 걸린다. 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울 때도 적지 않다. 특히, 감자를 강판에 가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지라 믹서기나 착즙기로 갈아 버릴까 고민이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눈 뜨면 다시 강판부터 꺼내는 것은, 비록 평범한 음식이지만 정성을 들여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내가 먹는 한 그릇의 음식이 내 생명의 근원이자 오늘을 살아갈 힘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함부로 해서도, 편한 것만 찾을 것도 아니란 생각이다. 같은 재료라도 정성을 들이면 맛은 물론이거니와 품고 있는 기운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번거로움과 수고를 견디게 한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이 한 끼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알 수 없듯,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수고와 번거로움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두 달 남짓 감자전을 만들면서 음식 앞에 겸손해졌다. 그리고 삼시 세끼 말없이 밥상을 차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숙연해졌다.
감자전은 담백하고 무미한데 맛있고 찰지다. 자주 먹는데도 질리지 않는 게 밥을 닮았다. 동그랗게 부쳐놓으면 희고 뽀얀 것이 보름달 같기도 하고, 그 보름달 아래 환하게 피어있는 박꽃 같기도 하다. 매일 아침 감자를 갈아 전을 부치는 나도 언제쯤인가 담백하고 무미하면서도 찰진 감자전을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