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짱, 호시이모, 그리고 초콜릿

도쿄 여자들의 가방 속 생존 전략

by Asparagus



도쿄 여자들의 가방은

늘 은근히 부풀어 있다.


겉보기엔 얌전한 토트백이나

단정한 숄더백인데,

가장 깊은 포켓 어딘가에는

항상 비밀 병기가 숨어 있다.


아메짱,

호시이모,

그리고 초콜릿.


이 세 가지 달콤함은

이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선택한

도쿄식 ‘3대 처방전’이다.


아메짱(あめちゃん)은

사탕이지만,

긴장풀기에 최고다.


“하나 먹을래요?”


회의 시작 전,

이 짧은 문장이 테이블 위에 놓이면

공기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다.


사탕이 하나, 둘

회의 시작 전에 손에 쥐어주면

긴장은 설탕처럼 녹는다.


회의 안건은 그대로인데,

사람들 표정만 살짝 달라진다.

그 작은 차이 덕분에

이상하게도 그런 날의 회의는

대체로 웃으며 끝난다.


일본에서는

사탕도 그냥 ‘아메’가 아니라

반드시 ‘아메짱’이다.


짱을 붙이는 순간

물건은 사람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 친해진 사람이 된다.


나는 데스크에 앉아 기지개를 켤 때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로

사탕을 슬쩍 건네주던 동료들을 기억한다.


그 덕분에 나는

일본 전국 각지의 신상 사탕을

꽤 진지하게 섭렵했다.


아메짱 컬렉터.

나쁘지 않은 직함이다.

(물론 사탕 하나 먹으려고 출근한 건 아닌데,

어쩐지 그렇게 됐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풍경은

사실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흔하다.

“당 떨어질까 봐”라는

아주 합리적인 변명과 함께.


그런데 말린 고구마,

그러니까 호시이모를

가방에서 꺼내는 풍경은

나는 일본에서 처음 봤다.


특히 내 주변의 예쁜 여자들은

허기질 때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가방 속에서 말린 고구마를 꺼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조각을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모두 닮아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어, 말린 고구마네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小腹がすいたとき.”

배가 아주 살짝,

정말로 살짝 허기질 때 좋아요



말뿐만이 아니라

톤도, 속도도, 표정도

마치 연습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비슷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마치

‘일본 직장인 생존 매뉴얼’

어딘가에 적혀 있는 문장을

차례로 읽는 사람들 같아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가면

‘고구마 말랭이’라는 이름으로

큰 봉지에 가득 담아 파는 게 있다.

양도 많고, 가격도 아주 착하다.


이걸 일본 동료들이 본다면

아마 캐리어 한 칸을 통째로 비워

고구마 말랭이로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1년 계획처럼 나눠 먹었을 게 분명하다.

월별 소비, 주간 배분까지 세워가며.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고구마 말랭이 봉지를 들고

일본에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들의 작은 호시이모를

옆에서 구경만 할 것인가.


가방에 넣자니

너무 크고,

안 사자니

괜히 손해 본 기분이다.


항상 한국시장에서

고구마 말랭이를 볼때마다

나는 같은 생각을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초콜릿.


초콜릿은

설명이 필요 없는 언어다.


편의점에서 집어 든

한입짜리의 빠른 달콤함.

커피 대신

초콜릿을 씹는 날도 있다.


카페인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를

조금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내 가방 속의

비상용 위스키 같은 존재랄까.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정확히 한 조각.


한 번은 야근 끝,

텅 빈 오피스에서

판 초콜릿을 반으로 ‘딱’ 쪼갰다.

그리고 옆자리 동료에게 건넸다.


그녀는 뭐가 웃긴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초콜릿은 받아봤는데,

판 초코를 반으로 잘라주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서로의 일을 대신해줄 수는 없었지만,

그 초콜릿 하나로

“너 혼자 아냐”라는 말은

충분히 전해졌다.


달콤함은 종종

언어보다 빠르다.


회의록보다 빠르고,

메신저 이모티콘보다 정확하다.


아메짱은 대화의 문고리,

호시이모는 체력의 방석,

초콜릿은 기분의 점화 장치.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우정처럼 나눠 먹으며 일한다.


거창한 보상 대신

정확한 한 입.


그게 이 도시에서

서로를 조금 덜 지치게 하며

하루를 넘기는 방법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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