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하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킷사텐

by Asparagus



카페나 킷사텐이나

결국은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킷사텐에 들어가면

목소리가 낮아진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다들 자연스럽게

볼륨을 한 단계 낮춘다.


아마도

이 공간이 먼저

속도를 낮추기 때문일 것이다.


킷사텐의 테이블과 의자는

대체로 연식이 오래돼 보인다.

오래 사용된 물건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다.


간판도 비슷하다.

요즘 유행하는

감성적인 폰트는 없고,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나

“1968” 같은 숫자만

괜히 또박또박 적혀 있다.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곳이 꽤 오래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전해진다.


문은 묵직하다.

조금 힘을 주어 밀어야 하고,

열리는 순간

딸랑— 하고 종이 운다.


그 소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약간 다른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조명은 어둡고,

공기는 조용하다.

빛은 넓게 퍼지지 않고

테이블 위만

필요한 만큼 밝다.


컵이 내려앉는 소리,

신문을 넘기는 소리,

의자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들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 박자씩 늦다.


와이파이는 잘 잡히지 않고,

콘센트도 거의 없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이미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킷사텐은 애초에

편리함을 목표로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다.


안에는 늘 비슷한 풍경이 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단정한 커피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설탕통,

그리고

묵묵하게 커피잔을 닦거나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마스터의 손놀림.


킷사텐에서의 풍경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느려진다기보다,

사람이 그 속도에

맞춰지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괜히 서두르던 마음이

어디선가 툭— 하고 떨어진다.


손님들을 보는 것도

킷사텐의 중요한 재미다.


돋보기 안경을 쓰고

신문을 정독하는 할아버지,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두 분은

수줍게 웃으며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 같다.


오타쿠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는

눈을 감은 채 LP를 듣고 있다.


그리고 꼭

한 테이블쯤은

소개팅처럼 보이는 남녀가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들에게 말한다.


소개팅 성공하고 싶으면

킷사텐에서 약속을 잡으라고.


킷사텐은

여자에게 유리하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사람을

예쁘게 보이게 하는 조명은

괜히 꾸미지 않아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준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와도

뻘쭘해지지 않는다.

잔잔한 LP 음악이

그 침묵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데려간다.


LP음악은 거슬리지 않고,

이상하게 편하다.

대화를 돕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참으로 좋은 장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다.


‘잘 보여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앉아 있어도 괜찮은지’

확인할수 있는 시간이라면

킷사텐만 한 장소도

드물다.


커피값은

카페보다 조금 비싸다.


하지만

지불할 만하다.


어쩌면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약간 비싼 커피 한 잔이

무슨 대수일까.


적어도

값은

충분히 한다.


커피 향이 천천히 퍼지고,

느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느새

일본의 쇼와 시대로

잠깐 잘못 들어온

커플이 된다.


나 역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는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만,


킷사텐 약속이 있는 날엔

일부러 조금 일찍 도착해

책을 꺼내 든다.


킷사텐에서의 독서는

이상하리만치

집중이 잘 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느리게 시간을 보내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공간,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시대에서

여기는

아직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유일하게

AI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공간.

아마도

이곳의 속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나는

킷사텐을 좋아한다.


커피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의 속도 때문에.


그리고

아직 그 속도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기 때문에.


목요일 연재
이전 20화아메짱, 호시이모, 그리고 초콜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