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생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인 만큼 즐거운 일도 가득하면 좋겠고 엄청 즐겁고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생일이
다가오니 생각보다 엄청 기쁘거나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생일 전날만 돼도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지, 무얼 하면서 놀지 잔뜩 상상을 하면서 놀곤 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다가오는
생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조금 특별한 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인 것 같다.
그래도 생일 당일이 되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고, 몇몇은 선물을 주기도 하니 기분이 좋기는 했다. 비꼬는 경우를 빼고선 축하를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
오늘 저녁에는 가족끼리 비싸디 비싼 빕스에 가서 식사를 했다. 무려 50% 할인 쿠폰도 있었기에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만찬을 즐길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나의 무기력증과 우울감 때문인지 식사를 할 때 엄청
행복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맛은 분명히 있었다. 배도 부르게 잔뜩 먹기도 했고. 하여튼 이놈의 우울한 감정을 하루빨리 해결을 해야지.
식사를 하면서도 전 연인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 사이가 멀어진 친구들도 생각나고, 앞으로의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도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생일인 날 만큼은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옷을 갈아입기 전에 거실에서 미리 주문한, 내가 좋아하는 파리바케트 생크림 케이크를 꺼내 촛불을 꽂고, 불을 붙여 생일축하를 소박하게 하고, 사진도 찍었다. 불을 불기 전에 기도를 했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를 했다. 언젠간 나의 기도가 하느님의 귀에 닿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취준생의 입장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 엄청 행복하거나 기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조만간 직장인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전에 그랬듯이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내 생일이어도 부모님의 선물을 준비해 주고, 사진도 이쁘게 찍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는 그랬지만, 다른 취준생들은 생일이 다가왔을 때 그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혹시나 오늘 나와 같은 생일자가 있다면,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싶고, 오늘 하루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쁜 하루를 보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