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하루
어제는 기껏 제 발로 찾아간 서점에 원하던 책을 발견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빠르게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오늘 아침 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선 점심을 먹고 곧장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환절기 때문인지 나의 비염 증상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는 바람에, 자고 일어났을 때와 저녁때 즈음에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 바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던 나는, 비염의 고통을 맛보면서 집에 남아있는 비염약을 먹고, 약 기운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서 자버리고 말았다. 물론 부모님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잠을 편하게 자진 못하고, 거의 몇 십분 마다 깨면서 잠을 청했다.
잠을 청하고 눈을 떠보니 어느덧 4시였다. 모처럼 열심히 하려고 다짐까지 했는데, 빌어먹을 약 때문에 낮 시간을 거의 날려 보내버렸다. 그렇지만 분명 약을 먹고 잠까지 잤는데도 나의 코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옷을 입고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러 출발을 했다. 안 그래도
요즘 독감도 유행이고 환절기 때문인지 4시가 넘은 시간대에도 이비인후과에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어린아이들도 대거 많이 보이기도 했다.
약을 받고서, 집으로 후딱 돌아와선 책상 앞에 앉아 새로 산 한자 공부 책을 펼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다. 훈독? 음독? 촉음화? 연탁? 연성? 오쿠라가 나? 당장이라도 책을 접고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지.
최근에는 디스코드에서 같이 노는 친구 한 명도 자격증 준비로 인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다 싶어 새롭게 디스코드 방을 파서, 서로 웹캠을 켜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게 하고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얘기를 했고, 역시 흔쾌히 승낙해서 오늘부터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확실히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니 공부에 대한 열정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고, 웹캠을 킨 덕분에 억지로? 라도 의지가 생겨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같이 공부하니 심심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어렸을 때 영어나 일본어 등 하나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외국 영화나 일본 애니 같은 걸 꽤나 보고, 문법은 틀렸을지라도 그냥 자신감 하나로 막 내뱉어보기도 했으니까. 이런 내가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순탄하게 마스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그냥 자신감으로 내뱉고 듣고 본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았다. 간단히 시작을 하려고 하니 모르는 용어들이 수두룩히 튀어나왔고, 하나를 배우는 데에도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배우고 외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언어에는 재능이 있다. 재질이 있다. 공부해서 토익, JLPT 따면 취업 문도 넓어진다. 무조건 해라. 하는 게 좋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시는 것 같다. 물론 대학 생활도 게으르게 보냈고, 학사학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스펙 취준생이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매번 토익 얘기와 JLPT 얘기를 꺼내시니 정말 지겹고 짜증이 날 지경이다. 토익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 마디를 하면 버럭 화를 내서는 한바탕 싸우게 된다.
대학 졸업 직전까지만 해도, 내가 당장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 어디든 후딱 들어가서 돈을 벌어 자취를 계속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로 나는 할 수 없었고, 그 이후의 면접 제의가 왔을 때 부모님께 소식을 알려줘도, 뭐 하는 데냐, 학력무관인 곳을 왜 가냐, 가서 뭐 배울 거냐, 나중에 뭐 먹고살 거냐,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겠냐 등의 소리를 하셨고, 그런 소리를 계속 들으니 나의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선 지금은 취업 의지도 많이
꺾인 상태다.
취준생이 된 이상, 부모님의 잔소리는 필수불가결이겠지만, 잔소리도 계속 들으면 스트레스가 되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피곤해진다. 어렸을 적의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전적으로 밀어주시고 믿어주실 줄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의 앞 길을 막았기에, 부모님이 종종 밉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부모님은 날 위해서 그렇게 말해주신 거겠지만, 그건 그거고, 밉고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취업을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 중인 취준생들에게, 오늘도 수고했고, 좋은 꿈 꾸고, 푹 잘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대들은 나처럼 앞 길이 막히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