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천천히? 빠르게?

by 메모리

27살 취준생, 무스펙에 3개월 경력. 사실 경력도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4년 2월 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위해 자소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것을 반복하며 이력서를 작성하고, 경영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직종으로 일을 다니기 위해 구직사이트를 뒤져보며 여기저기 지원도 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잔소리 중 하나인 토익 공부도 하고, JLPT 일본어 공부도 하면서, 사무직 쪽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ITQ 엑셀, 한글, PPT 자격증 공부도 하곤 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이어가다가, 생각보다 빠르게 행정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계약직이었고, 육아휴직 대체자였기 때문에 1년도 아닌 7개월이었지만, 나의 첫 취업 성공과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뜻깊고 기쁜 순간이었다. 7개월 동안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으며 돈도 많이 모아서

경제적 여유를 얻어 여자친구에게 이것저것 사주기도 하고 나의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기며, 하루하루 보람찬

삶을 살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첫 직장이었던 곳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업무 강도가 높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수두룩하기 때문에 이 건으로 힘들다고 생색내는 건 양심이 없을 수 있겠지만, 업무 외에도 가족 사정, 개인사정 등이 겹쳐 입사 전의 굳게 먹었던 나의 다짐은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너무 힘들었던 탓에, 내과에서 항우울제 약도 처방받아 복용을 하면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고, 나의 힘듦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린 나의 정신은 결국 퇴사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컸었지만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다시 취준생, 백수 생활로 돌아오면서 지치고 무너진 나의 마음가짐을 재정비하면서 다시 토익이랑 jlpt 공부도 하고 천천히 구직활동도 재시작을 했었는데, 어느덧 25년이 되고, 벌써 11월, 26년이 다가오고 있다. 일을 다닌 기간 이후로 따지자면 내 백수 생활이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만 보면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고, 남은 시간도 많다고 느꼈지만, 벌써 한 달 뒤면 26년 새해가 다가온다.


26살 졸업했을 때에는 천천히 준비를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며 구직활동에 전념을 하면서 공부도 했지만, 일을 다니다 그만두고 나니 취업 전의 나의 다짐은 많이 수그러들어 의지도, 의욕도 많이 사라지고, 퇴사 후의 연인과 이별, 친구들과 멀어짐, 부모님의 끝없는 잔소리, 그로 인해 찾아오는 우울함과 무기력감들이 찾아와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 부모님에게 위로를 얻고 싶어도 쉽게 얻지를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sns에서 자주 찾을 수 있는 위로 글들을 보며 자기 위로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취업 시장과, 나와 똑같은 나이대의 무스펙 백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검색도 해보고 그런다.


27살이면 무엇이든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라고들 한다. 전혀 늦은 게 아니고, 충분히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도 된다고 그런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큰 위로가 되었고 자신감도 생기면서 의욕이 조금씩 살아나려고 했었지만, 어머니의 잔소리는 그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린다. 정신 차리라고, 미쳤냐고, 똑바로 하라고, 너무 게으르고 나태한 거 아니냐고, 다른 동생들은 진작에 취업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하라고. 이런 얘기들은 뭐 매일 들어서 조금은 익숙해질 듯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들을 때마다 충동적인 생각도 들고, 그날의 내 기분은 최악으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토익과 JLPT 준비를 1년 넘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한다. 제대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한다면 분명 빠른 시일 내로 마칠 수 있었겠지만, 내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 상황인 것이다.


다른 취준생들은 과연 몇 살일까, 나처럼 무스펙에 무경력인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정말로 늦은 걸까. 걱정도 되고, 불안도 하고, 긴장도 되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만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