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는 안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오늘 시험을 보러 가는 친한 형이 있다. 그 형은 내 주변에서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똑똑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열심히 잘하는 멋진 형이다. 그 형이랑 디스코드 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에게 질문 하나를 했었다.
"JLPT 공부하는 건 목적이 있어? 단순 스펙업? 아니면 다른 목적?"
이 말을 듣고선 머리가 잠깐 하얘졌다. 이번에 보게 되는 JLPT 시험은 사실 내 의지가 아닌 어머니의 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나는 이번 시험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부탁? 잔소리? 조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신청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은 여전했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그런 말을 듣고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보라고 해서 보는 거라고.
그러다 보니 갑작스레 생각이 굉장히 많아졌다. 이 형은 자기의 미래를 위해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른 자격증도 있고, 학교도 인서울이고, 준비를 열심히, 철저히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싶었다.
27살, 무스펙, 무경력, 지방대 4년제 학사 출신. 가진 건 이게 다인데, 열심히 자격증 공부를 해서 취득을 하고 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워쓰고 그래야 하는데, 26살에 졸업하고 지금까지 나는 이루어낸 게 아무것도 없다. 갑작스레 느껴진 불안함과 초조함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생각보다 많은 글이 나온다. 무스펙 몇 살, 어떻게 해야 되냐, 어떤 직업을 가져야 되냐, 어떻게 살아야 하냐 등등. 생각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글의 답글들은 좋지 않았다. 당장 공부해라, 아무 데나 취업해서 경제활동이라도 해라, 인턴 활동부터 해라 등등. 역시나 달가운 얘기는 듣지 못했다.
내 주변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지내는데, 나는 나의 무능함, 게으름, 나태, 무기력, 우울로 인해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으니 나 자신이 정말 미워지고 싫어져간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면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그놈의 이별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열심히 흐르고,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시간은 그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너무 급하지 않게, 차분하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부모님의 잔소리에 갑작스럽게 액셀을 밟아버려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정말 늦었고, 못돼먹게 살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고 슬퍼진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내야 할지, 내가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지, 또 내가 연애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 갖가지 걱정을 생각하면서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버린다.
잘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