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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그리고 끝

취준생은 혼자가 되었다

by 메모리


The end


700일을 넘긴 지 얼마 안돼서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여자친구 쪽에서 많이 지쳤다고 했다.

사실 여자친구랑은 맞지 않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성격, 성향, 취향, 취미. 이런 것들이 전부 정반대인 느낌이었던지라. 그렇기 때문에 다른 커플들에 비해 잦은 다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성격과 성향 때문에 다툰 게 많았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P(즉흥형)이고, 여자친구는 J(계획형)이었어서, 무언갈 계획하고 나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다른 거 해보자" 하지만, 여자친구는 계획대로 흐르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내 쪽에서 조금 더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즉흥형인 내가 계획이란 걸 시도해 보고, 해보지도 않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임을 접하면서 잘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공부도 조금 해보곤 했다.


시소는 균형을 잡기 어렵다

시소는 한쪽이 조금이라도 균형이 안 맞으면 곧바로 기울어지곤 한다. 내 연애도 시소랑 비슷했던 것 같았다. 여자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으니까, 더 잘 보이고 싶었으니까, 더 가까워지고 싶었기에 내 쪽에서 조금 더 많이 맞추려고 노력을 했었다. 물론 여자친구도 나를 위해 노력한 부분도 많고, 나를 생각해 준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반대인 상황에서 시소의 균형을 잡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불화는 점점 커져만 갔고, 서로가 점점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회


균형을 잃은 시소는 자꾸만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어져가면서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자친구 쪽에서 먼저 지쳐 그만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의 큰 실수도 있었지만, 나의 투정과 어리광을 점점 받아주기도 힘들었다고 얘기를 하면서 그만하자고 했다. 처음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사과를 하면서 고치겠다고, 그러지 않겠다고 얘기를 했다. 여자친구는 날 믿어줬고, 나에게 기회를 줬다.


두 번째 기회


어쩌면 나는 학습이 되지 않는 머저리일지도 모른다. 기회를 줬는데도 내 성격을 고쳐나가기는 어려웠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내 투정과 어른스럽지 못한 내 행동에 크게 실망하고 다시 한번 지쳐하면서 그만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정말로 미안하다고, 내가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탓이라고 얘기를 했다. 진부하지만 사과를 하는 나의 입장에선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고치겠다. 등...


여자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다음에도 이런다면 정말 끝낼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어렵게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끝-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만난 날, 나는 부모님께 아침부터 카카오톡으로 크게 잔소리를 들었고, 당일날 새벽에도 여자친구와 마찰이 있어서 다툼이 있었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1시간 밖에 못 잔 상태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컨디션이 제로였던 것이다.


그런 상태로 만나니 텐션 높고 즐거운 모습을 보이기가 힘들었다. 여자친구는 그럼에도 내 손도 잡아주고 챙겨주려고도 하고 그랬는데, 내 컨디션 조절 실패로 마지막 만남을 망쳐버리고 만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여자친구가 안아줬을 때, 그때라도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웃음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정말 한심스럽고 후회로 가득하다.


그 일로 여자친구와 나는 다시 마찰이 생겼고, 나는 저녁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 가볍게 맥주 한잔을 했다. 워낙에 술을 잘 못 마시던 나는 한잔 정도로 얼굴이 빨개지고, 아주 약간 취기가 돌았다. 그 상태로 집에 돌아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여자친구는 지쳤다고, 나는 고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믿음이 안 간다고, 신뢰가 안 간다고, 그만하자고 얘기를 했다.


두 번의 기회를 줬는데도 나는 고치질 못했다. 사람 성격을 바꾸는 게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나도 서운함이 느껴지고 투정을 부리고 싶어지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내가 어른스럽지 못한 것뿐이겠지. 나이 27에 어리광 부리고 투정 부린다니, 누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돼서, 어른이 돼서 감정 하나 조절 못하냐고, 그거 하나 때문에 여자친구를 지치게 하는 게 맞냐고.


혼자가 되었다

한창 취업준비에 바쁜 나는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주었던 여자친구 덕분에 힘이 나곤 했다. 근데 나는 그런 여자친구를 내가 고치지도 못한 내 성격과 행동 때문에 여자친구를 지치게 만들었고, 내가 제 발로 차버리고 말았다. 내가 자처해서 혼자가 되겠다고 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는 거지.


많이 후회스럽다.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고 느껴진다.


취준생의 삶도 힘든데, 여자친구까지 가버린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싶다. 당장 몇 십일 뒤에 토익 시험도 있는데, 정말 험난한 길만이 가득이다. 미쳐버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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