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고 싶은 취준생
백수만이 가능한 평일날 놀러가기
나는 대학교를 대전에서 다녔었기에, 대전에서 4년 동안 생활을 했었다. 4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4년 동안 여러 가지 일도 많았고 많은 감정도 느꼈었기에 나에겐 의미 있고, 나의 제 2의 고향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대전 생활을 하면서 친구도 몇몇 사귀고, 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했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1학년은 기숙사생활을 했었고, 2학년은 코로나 때문에 1년을 통째로 집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 되었고, 나머지 3.4 학년은 내가 꿈꿔왔던 자취를 2년 동안 했었다. 그 2년 동안의 시간이 나에겐 정말 뜻도 깊었고, 혼자였기에 자유로웠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동네 친구들과, 대전 친구들과 같이 만나서 놀자는 얘기가 나왔고, 서로 시간을 맞추다보니 평일날 만나기로 결정이 되었다. 내 친구들 몇명은 아직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명은 일을 하고는 있지만 고정휴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일로 맞추게 되었다. 백수 주제에 주말도 아니고 평일날 1박 2일 동안 나가서 노는 것이 눈치가 보이고 기분이 약간 언짢기는 했지만, 나도 하루종일 집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가게 되는건 한달 좀 넘은 기간 만이라서, 오랜만에 먼 곳으로 간다는 여행같은 느낌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즐거움, 그리고 내 옛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향수병에 젖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었다. 가면 재밌게 놀아야지. 원없이 놀아야지. 막 놀아야지.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나는 친구의 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좋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정말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렇게 대전에 도착을 하자마자, 나는 향수병에 도져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4년 동안의 추억들이 이 곳 대전에서 담겨져 있었기에, 나에겐 애정이 담긴 지역이었다. 먼 곳에서 오는 친구를 마중 나가기 위해 항상 먼저 가서 기다렸던 대전역, 친구를 만나선 놀거리가 많은 은행동의 스카이로드, 술을 마시기에 딱 좋은 둔산동,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래도 내 옛날 생각을 뒤로 하고, 친구들을 만났으니 맛있는 식사도 하고, 재밌는 놀거리도 즐기고, 늦은 저녁에는 숙소에 도착해서는 술과 배달음식을 시켜 한 방에 모여 얘기를 나누면서 술도 마시면서 놀았다. 그렇게 하니 벌써 밤 12시가 넘어서 새벽 2시 3시 까지 흘렀고,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 우리들은 정리를 하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서 숙소에서 나온 후에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보드게임에서 재미나게 놀고, 애니굿즈가 있는 가게에 가서 잠깐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옛날의 나였다면, 친구들을 보내고, 버스를 타고 학교 쪽으로 가서 내 자취방으로 가서 씻고, 집정리를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잔뜩 누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현실을 마주봐야 하는 취준생이며, 내 집은 대전에 있지 않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나는 공부를 하며, 다시 수십 수만가지 생각에 휩싸이고 고뇌에 시달리면서 혼자 끙끙 앓으면서 현생을 보내야겠지.
왜 이렇게 호들갑인거야? 그깟 4년 동안의 삶이 뭐 어쨌다고
나만 대학 생활을 한 건 아닐테고, 내가 향수병이라는 단어까지 붙이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쩌면 오두방정일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한숨을 팍팍 쉬면서 "돌아가고싶지 않다~" 라고 혼잣말을 하는듯 친구한테 얘기하기 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자취를 하는 동안에는 나는 큰 걱정은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었다는게 나의 큰 행복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 중 하나는 '눈치' 도 있기도 하니까.
4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바로 뭐라도 하고 싶었고, 자취 생활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학교 조교를 신청해서, 내가 직접 돈도 벌고, 내가 지내던 자취방 월세도 내가 직접 내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극구반대를 하셨다. "교수 뒷바라지나 하는 일 해서 뭐 하려고 그러냐" 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나는 열심히 내 주장을 펼쳤지만 꿈도 꾸지 말라는 부모님의 강한 발언에 나는 이겨내지 못하고, 2년 동안의 짧은 자취 생활을 끝내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후회 중 많이 아쉬운 후회이기도 하다. 그냥 내가 행동으로 옮겨서 했었다면 달랐을까 싶었다.
이런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향수병은 다른 향수병 보다 조금 더 쌔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느꼈었고, 스트레스도 덜 했고, 혼자였기에 느꼈던 편안함도 있었으니까.
행복한 시간은 정말 짧게만 느껴지고, 내가 받아야 하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도 같은 느낌이 정말 싫다.
과연 내가 대전에서 느꼈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