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얼굴로 잠금을 해제하려다,
그날은 갑자기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내가 늘 쓰던 숫자들을 눌렀다.
집 비밀번호, 카드 비밀번호, 학번까지도.
모두 틀렸다는 메시지가 떴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짜였다.
숫자를 눌렀을 때, 화면이 조용히 풀렸다.
그날의 공기와 온도, 너의 목소리와 웃음까지 선명하게 밀려왔다.
겨울이었음에도 햇볕이 조금 따스했던 오후,
우린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네가 웃으면 나도 웃고,
내가 웃으면 너도 따라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숫자가 언젠가 나를 무너뜨릴 줄은.
마치 네 이름을 불러버린 것처럼 심장이 아려왔다.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화면 속 사진첩에서 우리 흔적을 찾았다가,
이내 닫고, 열고, 또 닫았다.
삭제하지 못한 사진과 메모들이,
언제든 나를 그날로 데려가 버렸다.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걸 지운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사소한 습관, 눈빛, 대화의 틈,
우리가 함께 했던 공기의 무게까지도.
입력하면 풀리는 건 잠금이지만,
결국 풀리는 건 내 마음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너 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익숙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