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에서 벌써 세 번째 생일이다.
네 번째 생일이 지나면 비로소 한국에 갈 수 있으려나? 싶다.
오늘은 가볍게 파나마에서 생일에 나혼자 뭘 하고 보냈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첫 생일과 두 번째 생일, 세 번째 생일 모두 멀티플라자(파나마의 쇼핑 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랄까.
처음, 두 번째는 점심때 나 혼자 맛있는 걸 사 먹고 남편 퇴근 후 저녁에는 평소에 가기 힘든 고급 레스토랑을 가곤 했다.
이번 생일 주간에 남편은 무척 바빴다.
그래서 생일은 당일이 아닌 일요일에 축하하자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남편 없이 (해외출장을 1년 중 무려 8개월 동안 갔다! ) 보내는 생일보다 훨씬 나아서 아무렇지 않았다. 게디가 20대 때는 생일이 퍽 중요했는데 이제 만 나이 바뀌는 날인 걸로 무게가 더 실린달까?
시차로 인해 한국 시간으로는 내 생일이지만 파나마로는 전 날인 날,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축하연락이 왔다.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 친구들과는 주로 1년에 서로의 생일 때만 안부를 주고받게 되고 있지만, 소중한 인연들이 끊기지 않음에 감사하고 있다.
반가운 답장들을 보내고 다른 공기계폰을 확인해 보니 한국의 병원이며 기관에서 축하메시지를 보내줬는데, 마케팅의 일환이라지만 은근히 감동적이었다.
자정 1분 전, 남편이 일하다가 안방에 와서 유튜브 반주를 틀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퍼포먼스를 감상한 뒤,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자고 있었는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꽃다발을 머리맡에 두고 갔다.
꺄아 센스만점! 항상 푸디에서만 사 오더니 웬일로 예쁜 꽃집에서 사 와서 더 감동!
기분 좋게 일어났다.
점심 즈음, 뭘 하지 뭘 먹지 한창 고민하다가-
어제저녁 둘러봤던 레스토랑에 가보기로 했다.
치로 12분 정도 떨어진, 처음 보는 동네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근 5개월 만에 눈화장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출발.
생일이니 제일 비싼 뿔뽀파스타를 시켰다. 한 접시에 20달러!
피자도 남으면 싸갈 생각으로 주문했는데 직원이 몇 번이고 이거 되게 큰데 괜찮냐고 물어봐서 Si 했는데, 나온 걸 보니 진짜 그랬다. 무이 그란데! 내가 본 피자 중 손꼽히게 커다랬다.
뿔뽀 파스타는 맛있었다. 파나마에서 가장 맛있는 식재료 중 하나는 문어다. 해산물을 안 좋아하는 나도 눈이 돌아갈 만큼 쫄깃하고 탱글 하다. 양이 적고 가격이 비싼 게 유일한 흠이지만 그럴만하다.
파스타와 피자 세 조각을 먹고, 남은 피자를 포장하고 팁 포함 약 40달러를 결제한 뒤 어김없이 멀티플라자로 향했다.
생일이면 가족들이 보내 준 용돈으로 멀티플라자에 가서 향수, 옷, 화장품 등을 구입하곤 했다. 남편은 언제나 주얼리를 사줬다. 그러나 이번 생일에는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스와로브스키 매장에 들어가서 시착해본 팔찌가 마음에 들었지만, 270달러, 여기서는 40만 원인데 한국에서 같은 물건이 26만 원에 판매되는 걸 보니 구매의욕이 싹 사라졌다.
다른 가게에서 은팔찌를 보는데 실처럼 가느다란 줄에 큐빅이 달린 것이 역시 40만 원선이었다. 왜 이리 비싸!
직원이 이것저것 보여주면서 무려 만 달러짜리 다이아팔찌를 착용해보기도 했다. 차기만 했을 뿐인데도 강도당할 생각이 먼저 들어서 소름이 오소소 끼쳤다.
스타벅스에 가서 프라푸치노를 들이켠 뒤, 옷 구경도 했다. 이국적인 그림이 그려진 끈나시, 튜브탑 드레스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아우 내가 몸매만 됐으면 이것만 입고 헐벗고 다닐 텐데!
하나를 입어봤는데 사진으로만 남겼다.
향수도 요새는 뿌리지 않고, 화장품 역시 어차피 화장을 안 하니 살 이유가 없었다.
12월에 면세로 산 파운데이션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선크림, 눈썹, 립스틱이면 파나마 메이크업은 끝이다.
가방이나 신발 역시 하나만 주야장천 들고 신는 타입이라 관심에서 제외됐다.
이래저래 구경만 하다가 오후 5시쯤 마트에 들러 호박과 사과 다섯 알을 산 뒤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니 컨디션이 급 다운되어 널브러져 있는데,
마감으로 인해 자정쯤에 들어올 줄 알았던 남편이 오후 9시가 넘어 귀가했다.
남편 손에는 커다란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었다.
아우 찰리스크림 홀케이크 비싼데!? 이 돈이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가도 고마웠다. 남편보고 나에게 케이크를 꼭 사주라는 감사한 시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감동스러웠다.
이 나라에선 촛불 부는 문화가 없는지 짧은 초를 달랑 하나 주길래 세 개 달라고 했단다. 그래 나는 30대니까.
불을 붙이고 남편이 노래를 불러줬다. 소원을 빌었다.
아쉽게도 소원은 즉각 이루어지진 않았다.
케이크를 조금 먹었는데 미뢰가 정신을 잃을 것처럼 달았다. 남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미드 덱스터를 보다가 친구랑 카톡으로 수다를 떤 다음, 잠에 들었다.
일요일에는 뭘 먹고 뭘 사지!?
행복한 고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