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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의 첫 만남부터 전공결심까지

by 삐아노


내 나이 7살에 처음 만난 피아노.

그 인연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피아노는 내 눈물 자국과 실패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정신적 에너지를 채워주는 치유사이며, 언제나 그립고 지지리 보고 싶은 자식 같은 존재다.

아주 끈덕진 인연이랄까.




7살. 엄마 손을 잡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기다란 피아노 의자에 선생님이 왼쪽에 앉아 함께 듀엣을 했는데 그 곡의 선율이 몹시도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이 최초의 기억이다.



아쉽게도

그 악보가 무엇이었던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피아노와의 인연을 함께 시작했던 나의 혈연은

바이엘, 체르니가 아닌 "알프레드"라는 아주 세련된 이름의 책으로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게 참 부러웠었다.



'체르니 30까지 배우는 게 국룰' 이듯 오빠 역시 그 단계까지 배우다가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나는 선망의 상징이었던 그의 알프레드를 꺼내어 신나게 치곤 했는데 이 낡고 바랜 악보는 아직도 내 책장 한편에 꽂혀 있다.

(참고로 내 혈육은 빛의 속도로 잊어버려 지금은 "즐거운 나의 집" 만을 조금 칠 줄 안다.)


어느덧 30년 가량 된 악보
가장 좋아했던 곡


고학년이 되고 다들 학업이 바빠져

예체능을 우수수 그만두기 시작했지만

나는 계속했다.

체르니 40을 마치고 모차르트 소나타니 바흐 인벤션이니 쇼팽 왈츠니- 를 거치고 쇼팽 녹턴과 베토벤 소나타를 몇 개 배웠었다. 물론 완전히 취미로.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나의 연주를 듣는다면

나도 모르게 볼 근육이 거칠게 씰룩대다가 입이 '으'하고 벌려질 거다.



말 그대로 엉망으로 쳤더랬다. 그냥 음표만 보고 누른 격이랄까.

아는 게 적으니 그저 만족하면서 쳤던 것 같다.



지금도 건재하지만 당시에도 매우 핫했던 네이버 카페 "피아노사랑"에서 마음에 드는 악보를 프린트해서 이것저것 마구 쳐댔다. 일본의 이름 모를 밴드의 음악부터 가요 편곡, 재즈 편곡, 뉴에이지, 영화 음악 등등 뽑아대느라 잉크가 남아나질 않았고 A4용지가 낱장째로 휘날려서 안 그래도 지저분했던 방이 더 엉망이 되었다.



이윽고 중학생이 된 나는 하늘이 붉게, 혹은 분홍빛으로 뒤덮이며 노을이 내려앉는 모습을 퍽 좋아했는데(지금도 매우 그렇다.) 이누야샤 OST를 듣고 감명받아 비슷한 코드로 노을을 암시하는 "오후 4시"라는 곡을 작곡해 보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들려드리자 작곡가의 곡들보다 좋다고 칭찬해 주신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때의 기억이 작곡을 하고 싶다는 열망의 씨앗으로 자리한 걸까.



여러모로

피아노는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다독여주며

은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친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칠 수 있다고 하자 친구가 "그 플랫 많고 어려운 걸 칠 수 있다고?"

하며 놀라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고,

학교 수행평가에서 리코더 대신 피아노를 선택할 수 있던 것도 꽤 자랑스러웠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드라마 덕택인지

한창 '외식경영', '호텔경영' 이런 류의 진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좋아했고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있던 나는 그만 이름에 혹해버렸다.

(커서 보니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중학생 때는 평균 점수가 90점에 웃돌며 나름 공부 꽤나 한 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성적이 떨어졌다.

수학과 과학이 너무나 어려웠다.

이 점수로 꿈꾸던 학교의 외식호텔경영은 갈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가 느닷없이 피아노 전공을 하라고 했다.



'네 오빠가 너 피아노 시키는 게 나을 거 같단다'



갑자기!?



지금 생각하면 도박이었지만-

어쨌건 그 말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직 피아니스트였던

아빠 회사 상사의 부인께

난생처음 테스트란 걸 받으러 갔다.



그 부인의 고등학교 후배였던 나는

엄마의 성화로 학교 교복을 입고 갔다.

같은 학교 출신임을 강조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내 진로를 걱정하던 엄마는 상당히 심란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우아하면서도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갔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커다랗고 까만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들어찬 방이 몹시도 낯설게 느껴졌다.



동문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학교 마크가 달린

초록빛 교복을 입은 나는

그분 앞에서


쇼팽 에튀드 10-5를 쳤다.


쇼팽 에튀드 op.10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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