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세계에서의 경험

by 삐아노


2학년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아빠가 회사에서 1년 정도 휴직을 한 뒤,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가족 모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정말 가기 싫었다.

친구들과 떨어지는 것도 싫었고 단 한 번도 해외에 가본 적이 없어서 몹시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가기 전에 아빠는 집으로 오신 과외 선생님과 함께 영어를 배웠는데,

우리는 영어 수업에 참여하지 말고 그저 본인의 수업을 지켜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파란색 영어 카드 대용량 묶음을 사더니 밖에 나가지 말고 이것을 모조리 외우라고 시키셨다.


그게 어찌나 노잼에다가 지옥 같던지!



아빠는 우리가 영어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음이 분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을 가게 되었다.

인생 첫 해외이자, 첫 비행이었다.



처음 만난 미국은 별세계 그 자체였다.

몹시 신기했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도 그렇고

널찍한 도로부터 초록색 표지판에 쓰인 하얀색 영어, 마일, 큰 주차장에 가로로 길쭉한 상점들, 아파트 하나 없이 주택이 가득했던 도시 풍경.


특히 패스트푸드점이 기억에 남았는데,

도미노 피자와 맥도널드가 우리나라와 달리 우중충해서 의아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웬디스나 칼스 주니어는 무척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처음 묵었던 곳은 오클랜드란 동네였는데, 호텔에서 나오면 야자수가 주욱 깔려있었고 걸어서 조금만 가면 작은 아울렛이 있었다.

처음 만난 빅토리아 시크릿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홀린 듯 민트색 수영복을 사기도 했다.


다만 예상과는 달랐던 점은 금발에 푸른 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노르웨이, 스웨덴 등을 가보니 내가 상상했던 인종은 북유럽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피아노와 음악은 한편에 고이 접어둔 채

나와 친브라더는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 있는 한 기숙 어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어학원 생활은 꽤 즐거웠다.

평일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친구들이랑 놀고 식당에서 m&n 쿠키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도 은은한 재미였다.

주말에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싸들고 걸어 다니면서 주위 집들과 다운타운을 구경하고 요거랜드라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집을 가는 게 일종의 낙이었다.

'그레이트차이나'라는 미국식 중국 식당은 나의 최애 공간이었다.


구글을 찾아보니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건재하다.

영화관에서 드라마 장르인 영화도 한 번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참, <아저씨>를 그 영화관에서 봤다.



어학원 1층 카페테리아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종종 치곤 했었는데 언제는 버클리에 다니는 남학생이 리처드 클레이더만 곡을 연주해 달라서 연주한 적도 있었고

한 번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랩소디 앞부분'만' (굉장히 어려운 곡이다) 쳐보고 있자, 가르치던 영어선생님이 내려와서 뒷부분을 쳐달라고 하여 무척 난감했던 기억도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친구들을 따라서

나도 아빠를 설득하여

쿠퍼티노에 있는 디 앤 자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은 다른 의미로 신세계였다.

진짜 미국 대학생들이 다니는 곳!

각국의 인종들이 모인 곳!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었구나, 그간의 나는 정말 초록빛 파충류의 귀 정도였구나-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음악사 수업과 음악이론 수업, 그리고 퍼블릭 스피킹 수업을 신청했다.

퍼블릭 스피킹은 상당히 어려웠는데, 우리나라처럼 ppt를 이용한 발표가 아닌 하나의 주제로 썰을 푸는 형식이었다. 말이 너무 빠르고 표현들이 어려워 도통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반면, 음악사 수업은 정말 열심히 들었는데, 교수님의 카리스마가 참 대단했다.

과제도 정말 밤늦게까지 열심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음악 감상문을 주관적/객관적 파트로 나누어서 썼어야 하는데, 내가 이해를 잘못하여 주관적, 객관적 평을 함께 써버려서 결국엔 B+를 받게 된, 다소 속상한 경험이 있었다.

(한 번 더 제출했으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내서 점수 변동은 아쉽게도 없었다.)


당시 공부했던 음악사 책


다행히도 음악이론 수업은 쉬워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또 대학 내부에는 피아노 연습실이 작게 있었는데, 이따금씩 그곳에서 리스트 발라드 1번을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명문대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에 가서 연주회를 봤던 경험도 있다. 시간이 오래되어 연주회 자체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널찍했던 대학의 캠퍼스 전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미국 생활은 정말 자유롭고 좋았다.


날씨도 아름다웠고 먹거리도 풍부하며 볼거리도 넘쳐나는 등 여유가 초콜릿 시럽처럼 달큰하게 흐르는 땅이었다.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점점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잘하지 못하는 애'였는데 넓은 세상을 보니 '내가 걱정하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겠구나'라는 몹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귀국할 때쯤에는 굉장히 아쉬웠다.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요세미티 등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난 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전 한국에 왔다.



나는 3학년이 되었다.


















keyword
이전 04화D-를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