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한 학년 아래 학번들이랑 같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과 특성상 인원이 적고 선후배 관계가 몹시 뚜렷했으며 이미 그룹별 친분은 다 형성이 되었던지라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당시 편입한 언니들과 같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언니들은 정말 좋았고 덕분에 학교 생활이 참 즐거웠다.
1, 2학년때보다 더 좋았다.
(감사하게도 한 언니와는 아직도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외국에서의 긍정적 경험에 안정적인 학업 분위기가 더해져서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여러 수업 중 마음에 들었던 과목은 '음악미학'이었다. 이따금씩 생각으로만 떠오르다가 금방 휘발되는 것을 학문으로 끄집어내어 토론하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바흐 음악을 현대 피아노로 페달 왕창 넣어가며 이른바 '낭만'스럽게 연주한다면 그것은 설득력 있는 해석인가 아닌가? 이런 의문 말이다.
이 과목은 훗날 내가 음악학을 전공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고, 당시 수업하던 교수님을 대학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수업 조교도 했다!
한편,
갓 박사를 따고 돌아오신 젊은 교수님이 '피아노문헌'이라는 수업을 하셨는데, 열정적인 그분을 따라 나도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암기식으로 시험을 봤는데, 조사 하나하나 틀리지 않게 모조리 외워서 같이 다니던 언니가 몹시 놀라기도 했다.
고생했던 화성학도 이젠 어렵지 않게 되어 A+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3학년 1학기에는 콘체르토 오디션이 있었다.
쇼팽 콘체르토 2번을 준비했고, 아쉽게도 떨어졌다.
그러나 오디션에 응시한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3학년 첫 학기에 4.11이라는 학점을 받게 되었고 첫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3학년 2학기 때 또 오디션을 나갔다. 드뷔시의 영상 1권 중 1번 "물에 비친 그림자"라는 곡이었다.
정말 스케일 음 하나하나 정성껏 연습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오디션 후 당연히 떨어졌겠지, 하고 과사에 문의도 하지 않았는데 과사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왜 안 물어봐 너 오디션 붙었어!!"
그땐 정말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학점 4.23점으로 기악과 전체 1등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학과장 교수님이 성적우수자들을 본인 연구실로 불러 북돋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4학년이 되자 교수님이 바뀌었다.
우리 대학에서 제일 핫한 교수님이었다. 연주자로서 네이버에 팬카페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분과의 첫 수업이 기대되어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첫 레슨 때였던가. 그분은 내가 연습하고 있는 곡 전체를 눈앞에서 바로 휘리릭 치셨는데, 히나스테라 소나타 1번 1악장이었다.
테크닉이 까다로운 곡인데 그걸 아무 망설임 없이, 그것도 암보로 연주하는 모습이란!
내가 연주했던 곡들일 지라도 연습을 한동안 하지 않으면 틀리고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상식이었나 보다.
본인의 뇌에는 파일처럼 악보들이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손 옥타브 글리산도를 굉장히 쉽게 보여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이런 사람이 피아노를 해야 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1학기에도 4.23로 지난 학기와 같은 학점을 받았고 또 장학금을 받았다.
2학기가 되고 졸업연주 시즌이 시작되었다.
음대생에게 졸업연주는 졸업논문이나 마찬가지다.
졸연 딱 하루를 위해서 사진도 찍고 가족, 친구들도 부르고 이대나 이태원에 가서 드레스도 빌리고 헤어&메이크업도 공들여 받는다.
내가 그 당시 히나스테라를 졸연곡으로 정한 이유는 비교적
덜 유명하거니와 틀린 게 티도 덜 나서 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당시 20세기 곡에 심취해 있던 이유도 한 몫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았는데,
나는 테크니컬 하고 효과가 넘치는 곡보다 음색, 음악성을 강조한 곡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걸 모르니 진짜 요령 없이 연습해 댔다.
각종 리듬연습과 무작정 천천히 치기, 포르테로 치기, 손가락 들었다 내려치는 이른바 '올드 스쿨 스타일' 연습이며...
방법을 모르다 보니 효율적이지 못한 연습을 참 많이 했었다.
특히 2악장이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어찌어찌 죽어라 연습한 뒤 드디어
졸연 당일, 리허설을 하는데 새끼손가락이 터져서 피가 났다. 어찌나 울컥하던지.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수를 했지만 잘 넘어갔고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그날 찍은 DVD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열어본 역사가 없다.
3학년때부터 나름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지만
간극이 너무 커서
여전히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성적은 좋았지만 실기는 빠르게 늘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실기도 1등 해버리고 쭉쭉 승승장구하는 영화 같은 스토리는 현실에선 없다. 현실은 지극히 정직하다.
4학년 2학기.
스펙터클 하진 않지만
노력한 흔적에 대한 작은 보상은 찾아오나 보다.
마지막 실기 점수가 가장 높았다.
이윽고 졸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