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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대학원을 다니다.

by 삐아노


아빠가 말했다.

"너 이번에 대학원 안갈거면 어디 취직해서 돈 벌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부랴부랴 학교들을 썼다.

그중에 '음... 하 고민되는데 여긴 보험 삼아 써보자.'

라고 생각한 학교가 있었다.




어이쿠

그 학교에 가게 됐다.




처음엔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학부 학교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몇몇 동기들과 마음이 맞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턴 꽤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이 즈음부터 내 레슨도 늘기 시작했다.



나의 첫 레슨은 대학교 1학년 20살 때였는데

이 때는 아무런 스킬도 교수법도 모르고 무작정

"이건 미야. 이건 4분 음표야. 한 박자인거지"

뭐 이런 식으로 재미없게 가르쳤다.

시간도 게다가 1시간!

초등 저학년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어떻게 가르칠지도 연구하고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학생이 차츰 늘기 시작했다.




저녁에 레슨이 없는 날에는 무조건 학교에 남아 연습을 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아쉬운 맘으로 학교를 나섰다.

지하철역에서 주먹밥을 사 와서 연습실에서 먹는 게 일상이었다.

주말에도 집에서 연습이 안될 때는 학교로 갔다.




이맘때 쯤부터 콩쿠르와 외부 오디션을 나가기 시작했고

마스터클래스도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했다.



어라? 오디션에 붙었고

어라라? 콩쿠르 입상을 하기 시작했다.



신인 연주회에서 연주를 했고

꽤 유명하고 이름 있는 콩쿠르에선 2등을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온 심사위원분들이 심사한 콩쿠르에선 1등을 했다.


1등을 안겨준 쇼팽 발라드 4번. 콩쿨에선 코다까지 다 쳤다.



대학원에서도 동기들이 잘 친다고 칭찬을 해줬다.

뭔가 어리둥절했다.



'너니까 그렇게 빨리 수 있지

언니 방금 화음 보이싱 대박

넌 잘 치니까'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분명 나는 못하던 애였는데

점점 잘하는 애가 되기 시작했다.




마스터클래스는 대학교수의 원포인트 레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해외 유명 음대의 교수가 한국을 방문할 때 이루어진다.

한 번은 마스터클래스에 가서 연주를 했더니 교수님 제자분이 어 잘 치는데? 누구한테 사사했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진짜 기분 째졌다!)

또 한 미국 음대 교수님이 내 연주가 맘에 든다고

우리 학교에 오지 않겠냐는 말을 해주셨다.





점점 갈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연습을 하면 매일 뭔가를 깨달으면서

유레카! 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게 엄청난 만족감과 뿌듯함을 안겨줬다.

도파민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대학원 실기시험에서 1등을 했다.





당시 내 친구가 조교였는데

다른 애가 누가 1등 했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

날 가리키며 "? 얘지."라고 했다.




레슨이 늘면서 작품 하는 성인 수업과

잘 치는 학생 수업도 맡게 됐다.




신기하게도

작품 레슨을 할수록 더불어 내 실력도 늘어갔다.

학부 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교수님들의 별세계 표현들이

내가 관찰자 입장에 서니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의 깨달음들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피아노를 취미를 하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피아노, 음악 전공 선생님들도

내 블로그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3학기가 되기 전이었을까.

레슨이 너무 많아져서

집중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작정하고 휴학을 했다.




그 후로 레슨에 몰입했다.




학부 때만 해도 귀가 안 열렸다.

누가 앞에서 연주해도

그냥 안 틀리고 잘 치는데 의의를 뒀지 그 이상을 듣진 못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점점 귀가 트여갔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해석을 스스로 한 다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어 봤을 때

소름 돋게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그렇게 되기까지

유튜브를 최저 속도로 틀어두고

대가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따라도 많이 해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예술의 전당으로 뛰어가서

유명 연주자의 실황 리사이틀을 정말 많이 봤다.





해외 연주자로는 지메르만, 랑랑, 플레트네프, 아르헤리치, 키신, 베레조프스키, 페라이어, 부흐빈더, 유자왕, 리시차, 얀 리시에츠키, 브루스 리우, 마리아 조앙, 아믈랭, 이고르 레빗, 마슬레예프, 꿀띠쉐프 등.

국내 연주자로는 조성진, 손열음, 선우예권, 임동혁, 신창용, 김선욱, 손민수, 김태형, 김희재, 김다솔, 박종해, 정한빈 등.


(여담이지만, 파나마에서 가장 그리운 건

바로 이 프로들의 연주다.)



이들의 실황 연주를 직접 귀로 들으며

차곡차곡 쌓아갔다.

전반부가 끝나면 바로 감상평과 후기를 적으며

인터미션 시간을 보냈고

공연이 마무리된 후에

집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들을 블로그에 업로드했다.





그러다 보니

리사이틀 후기를 아주 생생하고

전문적이게 기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주자의 특징은 뭐고 곡 해석은 어떻고 치는 연주 스타일, 페달, 손, 모션, 자세 등등에 대해

자신 있게 나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 레슨이 가장 좋았고

덩달아 재밌었다.

사실 매우 어려운 수업은 왕기초 유아 수업이다.

(여기선 작품 레슨을 만날 기회조차 거의 없어서 아쉽다.)





9개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고

총 11개의 콩쿠르에서 입상하게 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빈약하던 프로필이 점차 풍성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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