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의 서열화에 관하여
대학 졸업을 했다.
당시의 나는 이상이 매우 높았다.
피아노 연주로 뭔가가 되고 싶었고 뭔가를 하고 싶었다.
솔직히 좋은 대학원을 가서 어딘가 그럴싸한 간판을 걸치고 싶었다.
학부를 다시 갈까? 하는 고민도 살짝 했더랬다.
그러나 나의 손은,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덜덜 덜덜-
마치 오이먀콘에 코트 한 장만 걸치고 서있듯 떨어댔고
다른 사람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마치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을 만난 듯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어려운 파트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과연 이 부분을 무대에서 잘 넘길 수 있을까, 틀리진 않을까 하며
자신감이 지구 내핵까지 추락했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첫 음이 뭐였더라?'
라는 생각이 들곤했는데, 그때마다
심장에 100kg짜리 원판을 달아 강제로
웨이트를 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보리색 건반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88개 중 어디에서 시작해야 될지
조차 잊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만 느끼고
막상 연주할 땐 잘 치게 되는 건
적어도 나의 소설에선 등장하지 않았다.
시험 볼 때도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부들부들 손이 떨려 음이 눌리지 않았고
'다음 음이 뭐지? 여기 틀릴 거 같아!' 하는 순간
귀신 같이 잊어버렸고 틀렸다.
(나중에 뇌 과학 책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당연히 틀려버리게 된단다. 마치 지네한테
'너는 발이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걷는 거야?'
라고 물어보는 순간, 지네는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한 학교에서는 너무 극심하게 부들거려
베토벤 소나타를 클러스트로 쳤다. (여러 음을 한꺼번에 뭉개듯 치는 기법. 20c 음악에서 효과를 위해 종종 쓰인다.)
그렇게 말아먹고 온 날은
'나는 실패자구나.. 때려치울까.. 나는 실력이 모자란가 봐..'
라며 어깨가 옷걸이처럼 축 쳐진 채로 침대에 누워 구글에 '실패 피아니스트', '무대공포증 피아니스트'
같은 검색어를 치면서
나온 칼럼, 글들을 모조리 읽어대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느 날,
나의 친브라더가 그랬다.
"좋은 학교 가서 뭐 하려고? 넌 뭐가 되고싶은건데?
나라면 기업 같은 거 도전하겠다. 문화 엔터테인먼트 회사 같은 곳들 많잖아. 왜 음대 애들은 그런 걸 전혀 안 해보려고 해?"라고.
그때는 '아니, 뭘 모르네!
난 좋은 학교 가서 연주자가 될 거야!' 란 생각만 했더랬다.
음대생들의 대부분 진로는 비슷하다.
아니, 거의 틀에 박힌 생각을 한다.
예중 예고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이나 미국 등에 유학을 다녀와서 박사까지 딴 다음, 귀국 독주회를 열어 사사한 교수님들한테 얼굴을 비추고 여러 학교에 이력서를 넣어 대학에 출강하면서 입시생 개인 레슨하다가 잘 풀리면 교수가 되는 것.
시작점이 소위 엘리트코스건 다르건 거의 비슷하다.
그중 학원을 운영하며
석사를 페다고지로 가거나
아예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도 당연히 많지만
보통 음대생들의 '꿈'은 위의 레퍼토리다.
그러나
한국의 음악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지면서
고학력자가 쏟아지고 유명한 국제 콩쿠르 수상자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이 중 절대다수는 프로연주자로 활동하는 대신,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들어갈 곳은 매우 적다.
음대 기피 현상으로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줄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요새는 어디 출강 자리 얻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음대에서 가르치는 목적이
전부 연주자만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란 데서 기인한다.
사회는 매우 극소수의 연주자만을 필요로 하는데
한 해에만 연주 전공자들이 몇 백씩 쏟아진다.
게다가 클래식음악 전공은
서열화가 극심하다.
학부가 최상위권이 아니면 클래식 음악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고
그 최상위권 안에서도 어느 예중 예고를 나왔는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실기가 몇 등인지에 따라
내부 등급화를 시킨다.
같은 학교 내에서도 그런데
다른 학교끼리는 오죽할까.
어떤 애들은 연주 팸플릿을 갖고 와서
펜으로 쭉쭉 그어대며
연주 실력과 프로필을 품평해 댔고
외부 오디션에서 학생이 예중 예고를 안 나왔으면
실력이 좋아도
뽑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교수가 직접 하기도 했다.
학생이 목표하는 대학보다 낮은 대학 출신 선생님은 목표 대학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또한 암묵적으로 당연히 존재했다.
비슷한 현상은 프로 연주자에게도 쏟아지는데,
월드 클래스라 불리는 국내 연주자를 다른 또래 외국 연주자와 비교하면서 까내리고
예술의 전당에서 예중 교복을 입은 어떤 학생들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연주자가
엄청나게 어려운 곡을 연주할 때 실수를 하자
팔짱을 낀 채 단 한번도 박수를 치지않고
잔혹한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끊임없이 열등감과 건강하지 못한 우월감을 부추기는
아주 작은 사회랄까.
상대의 학벌과 프로필을 비교하며
얘는 나보다 잘나서 질투 나고
얘는 나보다 못난 것에 대한 같잖은 셀프 위로를 하고.
애초에
'나'가 없게 만들달까?
이 사람의 음악은 어떤 걸까? 하는
궁금증 일체 없이 얘는 여기 나왔으니 이럴 거야.
라고 단정 짓는 사회.
이런 환경에서
간판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오로지 지적과 품평만을 받는
무대에 대한 공포도 그렇고.
당시에는 몰랐다.
어딘가 괴롭지만 원래 이 세계는 이런 것이다 생각했다.
지금이야 나도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달라져
여러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 나는 저 루트에서 벗어나는 건
곧 실패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있는 중위권 음대를 나왔는데
석사를 상위권으로 가면 참작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도전을 했으나
실패했다.
'참작이 되겠지' 란 꿈은
그렇게 멀어져 갔고
음악은 오로지 나를 품평하고 등급을 매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