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열 발자국만 걷고 싶다

by 푼푼


내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처음 자폐가 의심된단 의사의 소견을 들은 건 아이가 만으로 2살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지금은 벌써 7살이다. 다사다난하고 일희일비했던... 5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 내 아이와 손을 잡고 똑바로 걸어본 경험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걷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위일 것이다.


모든 자폐아이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아이는 환경이 바뀔 때 큰 자극을 받는다.

이를 미국에서는 Transition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이 환경이 변화한다는 것은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곳에 여행가게 되는 것 같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1층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행위도 아이에게는 큰 변화고 큰 자극이 된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일도 아이에게는 88 열차를 타는 것만큼 힘든 일인가 보다.

건물의 문을 여는 일,

차 안에서 광활한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일,

모두 다 아이에겐 청룡열차를 타는 일이다.


이때마다 아이는 두 눈을 가리거나 내 옷으로 자기 얼굴을 뒤집어쓴다. 그리곤 내게 몸을 기댄다.

아이를 부축하며 걸어가는 일은 내겐 매일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난 아이의 눈이 될 수 없고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가 볼 수 없다.

환경이 변할 때 아이는 어떤 것을 느낄까?

모든 것이 너무 눈부시게 보일까?

계단을 올라갈 때는 63 빌딩 꼭대기를 오르는 기분일까?


아이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아이는 공간이 바뀔 때 항상 두려워하면서도 깔깔 웃는다.

아이는 평범한 기분이 뭔지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 있을까?


하지만 때로 나는 악마가 된다.

아이가 끊임없이 나에게 체중을 실어 몸을 기댈 때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일과 사람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나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이기적인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내가 화를 낼 때면 더욱 깔깔 웃는다.


주차장 장애인 전용 자리에서 건물 문까지는 열 발자국 떨어져 있다.

이 열 발자국을 가기 위해 난 여러 가지 행위예술을 한다.

아이를 안고 가고,

아이가 내 두발을 밟으면서 같이 걷고,

아이가 내 옷을 뒤집어쓰고 가고,

때로는 아이를 업고도 간다.


이 열 발자국이 우리에게는 너무 멀다.

치료 약속에 늦지 않게 이 열 발자국 거리에 안전하게 5분 소요를 계산해 놓는다.


딱 한 번만이라도 아이와 손을 잡고

가볍고, 자연스럽게, 살짝은 경쾌하게

열 발자국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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