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애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건 아이가 만으로 2살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첫 애에 몰두했던 우리는 둘째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첫 애의 상태는 그리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아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아이의 나이가 올라갈수록 우리의 초조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이의 치료 골든타임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무인도에서 바라본 돛단배가 점점 멀리로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첫 애가 세 살이 넘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나는 가끔씩 둘째를 가지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완강한 반대주의자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 애의 자폐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함께 안고 가야 할 인생이었다. 우리가 죽게 되었을 때 첫 애를 돌보는 일에 대한 부담을 둘째 아이에게 물려주는 게 미안했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조금 특별한 우리 가족을 경험하고 자기에게 선택권이 없던 책임을 부여하는 게 미안했다.
또 다른 이유는 또 아픈 아이가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확률 상 그럴 일은 매우 낮다고 하지만 제로는 아니었다. 두 아이 모두 자폐였던 한국 엄마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두 아이 모두 자폐가 된다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상상하기 싫었다.
마지막 이유는 나도 모르게 둘째 아이를 더 사랑할까 봐였다. 그렇게 변할 수도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첫 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첫 애가 자폐인 경우 둘째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고민했던 이유와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완강한 나의 주장으로 몇 년 간 둘째 생각은 하지 않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첫 애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아이의 상태는 제자리, 아니 뒤로 계속 후퇴하는 것처럼 우리에겐 보였다. 절망적이었다.
이 당시 나의 친동생은 둘째의 임신 소식을 우리에게 알렸다. 이때 부러움과 질투심이었을까. 우리도 둘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아내가 했던 말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도 정상애를 키우는 게 어떤 기분인지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
이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팠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게했다. 아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 후로 우리는 둘째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한 번의 조기 유산을 경험했다.
아내는 슬퍼했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마침내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둘째 아이는 어느덧 한 살 반이 되었다. 우리는 이 아이 때문에 많이 웃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을 때가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우린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로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를 보는 시선은 조금 특별했다. 항상 아이가 자폐가 아닌 지를 평가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첫 애와 다르게 사회성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안심했다.
둘째 아이도 이제 조금씩 자기가 특별한 형을 둔 것을 알기 시작했다. 형이 광대처럼 깔깔 웃으며 자기를 향해 돌진할 때면 무서워서 오열을 했다. 한 번도 형이랑 직접적으로 함께 놀거나 함께 웃지 못했다. 둘째 아이는 놀이터와 도서관에서 다른 형, 누나들을 만나보면서 우리 가족이 조금 특별하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둘째가 생긴 것이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 큰 이유라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