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전부터 나의 일터 이메일 서명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넣고 있다.
"자랑스러운 자폐 아빠" 라는 글귀다.
이메일 서명엔 보통 나의 소속, 연락처 등이 기입된다.
여기에 맨마지막에 나는 위의 그림을 넣으면서 내가 자폐 아이를 가진 아빠임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런 일을 결심하게 된 몇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미국 학교에서 수년을 알고 지냈지만 대부분 나의 아이가 자폐인 사실을 모른다.
사람들은 나의 아이가 당연히 정상일 것이라 짐작하고 아이에 대해 질문할 때가 종종 있다.
다같이 모여 점심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안부를 묻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갈등하게 된다.
"그냥 대충 대답을 얼버무려서 분위기를 흘려넘길까? 아니면 사실을 말해야 할까?"
몇 번은 그렇게 대충 흘려넘겼던 것 같다.
어느날 또 아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번엔 제법 구체적인 질문이어서 피해갈 수 없었다.
더 이상 둘러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나는 내 아이가 자폐임을 얘기했다.
사람들은 매우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괜히 무거운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우리는 간신히 다른 화제로 옮겨갔다.
또 한 번은 내 아이가 자폐임을 같은 일터의 사람에게 먼저 솔직하게 말한 적 있다.
그 때 그 사람은 조금 당황했지만 내 얘기를 들어줬다.
하지만 그 후로 그 사람은 내 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나의 속사정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나는 개개인에게 나의 아이가 자폐라는 사실을 전하기가 두려워졌다.
나의 무거운 짐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찌해야하나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았다.
그래서 이메일 서명에 내가 자폐 아이의 아빠임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파급력이 있었다.
나의 이메일을 보게 되는 수십명, 수백명의 사람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담' 없이 말이다.
나 역시도 마음이 편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가끔씩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메일 서명을 보고 개인적으로 아이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한 경우 난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고, 괜찮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일터의 한 미국인에게서 이러한 답장을 받았다.
"저도 제 아들 대니엘에 대해 자랑스러워요 (I am also proud of my son, Daniel)."
이 짧은 한 줄의 답장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분은 50~60대로 나이가 추정된다.
나보다 훨씬 오랜시간 동안 자폐 아이를 가진 삶에 대해 경험했을 것이다.
그 분의 이 짧은 한마디는 슬프면서도 고독했다.
그 후로 우리는 업무 외 자폐에 대해 다시 이메일로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자폐 아빠'라는 내 이메일 서명을 지우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