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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푼푼 Aug 25. 2023

길을 중요시 여기시던 택시기사님

중요한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 가는 길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예약 후 택시는 몇 분 안에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에 탔는데 앞의 조수석 뒤편에 눈에 띄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생각하는 길이 다를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길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실제로 기사님은 내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찍더니 여러 옵션 중 하나의 경로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에게 내비게이션 길을 따라가겠다고 친절히 말씀해 주셨다.


그 후로도 중간중간 기사님은 더 빠른 경로가 없나 살펴보셨다. 차가 많이 밀리는 시간대여서 이해가 갔다.


왜 기사님은 ‘길’에 예민해지셨을까? 혹시 과거 승객 중 빠른 길로 안 가고 돌아간다고 컴플레인을 받은 적이 있을까?


내가 아이였을 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길 때문에 종종 다투셨다. 할머니댁을 가다 보면 이 길이 더 빠르다 아니다를 놓고 자주 언쟁을 벌이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뒷좌석의 나는 급한 일도 없는데 그게 왜 그리 중요할까 하며 두 분의 텐션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왜 사람들은 길에 예민할까? 나 역시 한국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미국에서 지낸 세월이 슬슬 이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운전자가 가는 길에 대해 조수석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운전자가 길을 몰라 도움을 청하는 경우 당연히 옆에서 도와주지만 말이다.


길이라는 것은 운전자의 ‘믿음’이고 탑승자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결정에 대한 ‘신뢰’다. 동석을 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한 배를 탔단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이 길로 가지, 저 길로 가지”의 조언은 운전자에게는 선을 넘는 말로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길이 다를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길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이 글귀에 계속 눈이 갔다. 이번에는 왠지 인생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폐 아이를 둔 내가 생각하는 길은 부모님이 생각하는 길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왜 한국에 다시 들어오지 않니?”


라는 쉽게 던진 한마디에도 난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결정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 그것은 경험해 보기 전엔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길은 어쩌면 구불구불하고 가로등 빛이 없는 안개 낀 길 같았다.


아직도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고 아내와 나는 매일 흔들린다. 생각하는 길을 바꿔볼지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이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할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택시기사님의 리드에 기대어 난 평화롭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길.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

좋은 길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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