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남기고 간 자리

물건과 욕심 사이에서

by 하늘마루

아들이 결혼해 집을 떠난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북적거리던 온기는 어느 순간 고요함으로 바뀌었고, 주인을 잃은 방에는 세월의 흔적들과 남겨놓고 간 아들의 손 때 묻은 물건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그 공허함이 낯설어 집안 구석구석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난 세월, 내가 얼마나 많은 ‘언젠가 사용하겠지...’ 하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를.


집안 구석구석 하나 둘 살림을 정리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무언가를 버린다. 낡은 그릇, 일회용 용기들, 철 지난 옷가지, 그리고 이제는 소임을 다한 아들의 물건들까지.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채우고 가질 때는 늘 부족하다고만 느꼈는데, 버리고 비워낼수록 오히려 삶이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실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나는 예순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버린다는 것’과 ‘내려놓는다는 것’

우리는 흔히 물건을 내다 버리는 행위만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리를 거듭하며 깨닫게 된 것은 ‘버림’과 ‘욕심을 내려놓음’ 사이의 미묘한 경계다. 버림은 과거와의 작별이다. 손때 묻은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는 행위는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잔상들을 정리하는 기술적인 과정에 가깝다. 그러나 버림은 추억과의 정리도 같이 된다.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미래와의 화해다.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돼’라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소유욕을 끊어내는 일이다. 물건이 없으면 삶이 결핍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금 내 곁에 있는 최소한의 것들만으로도 내 존재가 충분히 빛날 수 있음을 믿는 마음이다.


비우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물건에 대한 욕심을 한 꺼풀 벗겨내자, 그 자리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찼다. 아침 햇살이 거실 바닥에 그리는 무늬, 정갈하게 닦인 빈 식탁 위의 고요함, 그리고 물건을 관리하느라 뺏겼던 ‘나만의 시간’ 말이다. 비움은 단순히 공간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었다. 텅 빈 아들의 방을 보며 슬퍼하기보다, 그 빈 공간만큼 우리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롭게 채워갈 인생을 응원하게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증명하기 위해 물건을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얻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적게 소유함으로써 더 많이 존재하려 한다. 가벼워진 어깨로 맞이하는 내일은 어제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단단할 것 같다.


아들이 독립하면서 옷가지를 챙기고 가방에 물건들을 담고 집을 나서며 “엄마 나 이제 가요. 이제 가면 아주 가는 거예요” 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 뒤로 아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옷과 몇 가지 물건을 챙기러 두 번 정도 집에 들렀지만 더 이상 그의 집은 아니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부모는 추억의 조각이 되고 자식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아들방 책꽂이 옆에 붙여두었던 동판조각부조(초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만들었던)가 까맣게 변해있어 버리려고 내놓았다가 다시 주워놓았다. 동판연마제를 구해 다시 빛이 나게 닦아 놓아야겠다. 마지막 추억 조각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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