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건물을 세우고, 추억은 밥상을 남긴다.

되돌릴 수 없는 그리운 순간들

by 박계장

시청 옆 주상복합 공사장의 펜스 안쪽에서 나는 밥을 먹었다. 거의 스무 해 전의 일이다. 기초공사를 마치고 멈춰 선 현장에는 공사인부들의 식사를 책임지던 함바식당이 있었다. 공사 현장은 멎었지만 함바식당은 계속 운영되었다. 펜스 출입문을 통해 시청과 경찰청 직원들을 비롯하여 주변 회사 직장인들이 매일 그곳으로 드나들었다. 천막이었는지 간이 시설물이었는지 식당 건물에는 밥 짓는 냄새와 맵싸한 반찬 냄새가 퍼졌고, 스테인리스 국통에서는 된장국 김이 소리 없이 피어올랐다. 반찬은 날마다 달랐지만 밥상의 정성은 한결같았다. 콩나물무침이 아삭하게 씹히는 날이 있었고, 고등어조림에 간장이 깊게 밴 날도 있었다. 식혜나 수박이 후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주변의 식당들 한끼 식대가 대체로 5천 원 남짓이었는데 그곳은 3,500원이었으니 가성비는 훌륭했다.


그 함바집의 음식은 돌이켜 보면 그저 그런 집밥이었다. 하지만 공사가 중단된 현장 한가운데서, 그 어수선한 풍경 속에서 차려진 밥상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한 질서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멈춰 선 공사장, 삐죽한 철골이 앙상한 건물 터, 그 불완전한 공간 안에서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밥이 차려지고 사람들이 모였다. 그 반복 속에는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그래서 누군가는 밥을 짓는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약속이 있었다.


공사는 한참 뒤에야 재개되었고, 건물은 천천히 모습을 갖춰 갔다. 내가 사업소로 내려갔다가 구청을 거쳐 시청으로 다시 돌아온 2017년 무렵, 그 건물은 완성되어 있었다. 시청 건물과 이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그 건물은 이제 시청보다 훨씬 높은 건물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같은 부서 동료 두 명이 살고 있었다. 한 명은 작은 평수를 매입했고 한 명은 분양 면적이 8평이라는 원룸을 임대해서 살고 있었다. 세월은 멈춰 있던 건물을 완성시켰고, 함바집이 있던 자리에는 1층 상가들이 연이어 서 있었다. 완성된 것은 남고, 임시였던 것은 사라졌다.


오늘은 내가 점심 메뉴를 정해야 했다. 시청 주변 맛집을 찾다가 한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시청 대로변 건너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함바집을 운영하던 주인이 공사가 끝나자 식당을 열었다'는 글이었다. 등갈비찜과 나물비빔밥, 어묵조림이 푸짐하게 담긴 사진 속에서 그때 그 함바집이 겹쳐 보였다. 주인아주머니의 거칠지만 다정한 말투와 한겨울 식당 안을 따뜻하게 데우던 난로가 떠올랐다.


그 식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블로그 사진만큼 푸짐하지는 않았다. 방금 건진 듯 김이 나는 돼지 수육, 나물 몇 가지, 김치, 샐러드, 국이 차려져 있었다. 큰 접시에 원하는 만큼 음식을 담아가는 방식이었다. 가격은 7,000원이니 주변 식당들에 비하면 2~3천 원 정도 싼 편이다. 그렇지만 차려진 음식을 생각하면 싸다고 해도 추천하기는 다소 애매했다. 안전모를 쓴 채 음식을 먹는 인근 공사현장 인부들이 많았고 합석은 자연스러웠다. 우리 다섯도 큰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과 함께 앉았다. 동료들은 별 말 없이 식사를 했고 나는 오래전 동료들과 점심시간이면 자주 가던 함바집을 떠올렸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함바집의 맛이 아니었다. 공사장 펜스 안쪽이라는 장소, 선배들과 나눈 웃음, 정감 가는 그때 분위기가 어우러진 어떤 순간이었다. 음식은 그저 그 순간을 담는 그릇이었을 뿐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시간과 장소와 함께한 사람이 달라지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밥이 아니다. 나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되돌리려 했고, 오늘의 식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손님이 몰려 주인은 혼자 허둥지둥이었다. 우리 다섯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네 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영수증을 확인하니 한 잔 값이 빠져 있었다. 주인에게 말하자 무뚝뚝하지만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그 주인이 "손님이 많아 음료 준비가 늦어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계산에서 뺐습니다" 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함께 웃었다. 계산에서 빠진 커피 한 잔이 뜻밖의 대접처럼 느껴졌다. 상술이라 해도 좋았다. 지연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의 손해로 대신하는 그의 배려가 식당에서 비워진 무언가를 채워 주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전 함바집을 다시 떠올렸다. 오늘의 식당은 예전만 못했지만, 그 기억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며 맛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만, 마음속에 쌓인 '따뜻한 밥 한 끼의 기억'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날의 식혜 한 잔처럼, 오늘의 커피 한 잔도 언젠가는 그런 기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순간을 그리워하며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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