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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선글라스

세상이 돌려준 뜻밖의 온기

by 박계장

동료들과 청사 밖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 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은 맑고 볕은 좋았지만, 뺨을 스치는 바람 끝에는 여전히 날 선 냉기가 서려 있었다. 영상의 날씨라 해도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두 손으로 감싸 쥐는 커피 잔의 온기가 제법 위안이 되었다. 온기를 느끼며 시청으로 향하는 발걸음 위로, 화제는 절친한 팀장이 기적처럼 되찾은 선글라스였다.


이야기는 지난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팀장은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나, 너무도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이 썼다던 모델이라며, 해외여행 길에 큰맘 먹고 장만한 선글라스를 끼고 뒷산을 올랐다. 흐르는 땀을 훔치느라 몇 번이고 안경을 벗었다 썼다 반복했던 모양이다. 하산길에 분실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보았지만 허사였다. 오가는 등산객이 많은 곳이니 누군가 주워 갔으려니, 그는 씁쓸하게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오늘 아침, 그는 아들 같은 반려견 ‘훈이’를 데리고 다시 산을 올랐다. 겨울 산의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꽂히던 찰나, 등산로 옆 커다란 나무 위에서 이질적인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였다. 잃어버린 후에도 숱하게 오르내린 산이었건만, 왜 여태 보이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무성했던 여름의 잎과 가을의 단풍에 가려져 있던 것이, 잎을 모두 떨군 겨울의 앙상한 가지 사이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땅바닥도 바위 위도 아니었다. 누군가 굳이 바위를 딛고 올라야 손이 닿을 법한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안경다리가 곱게 접힌 채 얹혀 있었다. 지나가던 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주인이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일부러 높은 곳에 매달아 둔 배려였다. 지난여름의 폭우와 가을의 낙엽을 견디며 선글라스는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은 안경을 찾은 것보다, 이름 모를 타인이 까치발을 들고 안경을 올려놓았을 그 뒷모습이 그려져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했다.


팀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며칠 전 내게 있었던 일이 겹쳐졌다.


점심 당번을 자처해 사무실을 지키던 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들이 커피를 건네기에 텀블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꽤 값이 나가는 브랜드의 텀블러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닷새 전, 씻으려고 들고 나갔다가 세면대에 두고 온 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시청 14층은 상주 직원만 이백여 명에 달하고, 업무 협의차 방문하는 외부인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다. 생각해보니 지난 닷새간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만약 세면대에 텀블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다. 그동안 보지 못했다는 건 누군가 가져갔거나 청소 중에 버려졌다는 뜻일 터였다. ‘이미 늦었겠지’ 하는 습관적인 의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도로 나갔다.


세면대에는 없었다. 나는 ‘그럼 그렇지’ 하며 돌아서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새로 설치된 텀블러 세척기 위, 가장 안쪽에 내 텀블러가 놓여 있는걸 발견했다. 아마도 누군가 세면대에서 뒹굴던 텀블러를 주인이 찾으러 올 법한 가장 안전하고 청결한 장소로 옮겨두었나 보다. 닷새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검은색 스테인리스를 쥐자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다. 화끈거리는 건 내 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건 텀블러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신뢰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곁에서 묵묵히 걷던 후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오래전 길에서 USB가 달린 열쇠 꾸러미를 주워 그곳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더니, 근처 대학가 술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지 조심스레 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 이어졌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딱해 보여 결국 차를 몰았다.


나온 사람은 앳된 대학생이었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하던 학생은 후배가 손사래를 치는데도, 억지로 차 안으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세 장을 밀어 넣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후배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수석에 덩그러니 놓인 지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처음엔 거절을 무시한 태도가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돈에 담긴 무게가 느껴졌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었을 테다. 어쩌면 며칠 치 생활비였을 그 돈은 학생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예의이자, 타인의 호의에 빚지지 않으려는 어린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후배는 그 구겨진 지폐를 차마 펴지 못하고 지갑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흘리고 다닌다. 물건일 때도 있고, 사람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세상에 대한 믿음일 때도 있다. 잃어버린 순간 우리는 빗장을 걸고 의심부터 한다. 세상이 내 것을 빼앗아 갔다고.

하지만 오늘 아침 풍경은 조금 달랐다. 이름 모를 등산객은 분실물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주었고, 얼굴 없는 동료는 주인을 잃은 물건을 가장 깨끗한 곳으로 옮겨두었다. 어린 청춘은 타인의 수고에 자신의 진심을 내어주며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끈기 있게 우리를 기다려주는지 모른다. 손에 쥔 컵을 가만히 감싸 쥐며 청사 로비로 들어섰다. 햇살은 유리문 밖에서 멈췄지만, 손끝으로 전해오는 커피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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