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의자에 앉아
낯선 얼굴을 바라본다.
이발사의 능숙한 가위질에
무심히 머리칼이 잘려 나가면
거뭏하던 머리카락 속에
세월이 허옇게 묻어난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
주름은 깊고, 눈가는 퀭하다.
켜켜이 쌓인 지나온 시간 속에서
지우지 못한 기억이 소환된다.
쇳덩이를 불구덩이에 쑤셔 넣으며
긴 밤을 버텨내던 내 아버지
새벽이면 제철소 뒷문으로 쏟아져
그라스 가득 소주를 부어
목구멍에 엉긴 고단한 삶을 훓고
비틀비틀, 해를 머리에 이고
용케 집을 찾아오던 아버지
세월에 무너져 가던 그 사내
아니라고 손사래 쳐도
누가 봐도 그 사람이라니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불쑥, 느닷없이 찾아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내 아버지의 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