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유지하는 품위

반바지 입으면 안 되나요?

by 박계장

차 문을 여는 순간, 안경에 김이 서린다. 차 안의 냉기와 바깥의 습한 공기가 부딪치면서 안경이 뿌옇게 흐려진다. 아침 7시, 지하주차장에는 밤새 남은 더운 공기가 아직 빠져나가지 않았다. 동남아의 습한 새벽처럼 눅눅하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시청사는 '인텔리전트 빌딩'이라 불리지만, 냉난방 용량은 늘 부족하다. 외벽이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 아침부터 햇볕이 실내를 데운다. 해가 오르기도 전에 창가 자리는 벌써 더워진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먼저 창문을 열고 선풍기부터 켠다. 요즘은 공무원노조의 건의로 더운 날에는 일과 시작 전부터 에어컨이 가동되지만,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면 사무실 온도는 점점 올라간다. 컴퓨터와 프린터, 복사기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사람들의 체온까지 더해지면, 에어컨의 냉기는 금세 밀려난다. 더 큰 문제는 일과 이후나 휴일에 업무로 남아있을 때다. 에어컨이 꺼져 실내는 찜통이 된다.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던 1993년 3월, 나는 남포동 지하상가에서 산 양복을 입고 첫 출근을 했다. 공무원이면 당연히 정장을 입는 줄 알았다. 하지만 출근해 보니 대부분 점퍼에 면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은 과장, 계장, 그리고 민원인을 많이 상대하던 선임 직원 정도였다.


2006년 시청으로 발령받았을 때 구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현장업무가 거의 없고 실내에서 행정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모든 직원이 감색이나 회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 넥타이 차림이었다. 여름이면 흰색 반팔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가 사실상의 복장 규범이었다. 컴퓨터는 많이 보급되었지만, 여전히 수기 문서 작업도 많아서 흰 셔츠에 토시를 끼고 일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 시절 여름은 견디기 어려웠다. 땀이 속옷까지 흘러내려도 셔츠는 단정해야 했고, 바지는 늘 주름이 살아 있어야 했다. 그런 복장은 '공무원의 품위'라는 이름 아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에어컨은 관공서가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야 한다며 웬만해서는 틀어주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도 더운 바람만 들어왔다. 오후가 되면 셔츠는 등에 달라붙었고, 정장 바지는 허벅지에 들러붙어 걸음걸이를 무겁게 만들었다.


2012년 사업소로 갔다가 구청을 거쳐 2017년 다시 시청에 돌아왔을 때 새로운 시장의 지시로 젊은 직원들이 배치되어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2년 사무관 승진 후 구청으로 전보되었다가 올해 1월 돌아온 시청은 변화가 더욱 뚜렷했다. 정장을 입는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복장도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연령이 확연히 젊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 직장인보다 대학생에 가깝다.


복장이 자유로워진 것은 다행이지만, 더위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과 장비는 급격히 늘었는데, 온도 기준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관공서는 여름철 실내 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1980년 제정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절약이 강조되던 시대의 흔적이 아직도 여름철 사무실 온도를 통제하고 있다. 시청사가 연산동에 들어선 1998년 직원 수는 1,500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3,800명 가까운 인원이 한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1인당 1대씩의 컴퓨터와 모니터, 수많은 프린터와 대형 복사기들이 내뿜는 열기에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복사열까지 더해지면 실내 온도는 28도보다 훨씬 높아진다.


에어컨의 냉기가 고르게 퍼지지 않아 자리마다 온도 차도 심하다. 창가 자리는 오전부터 찜통이 되고, 복사기 근처는 하루 종일 후끈거린다. 온도계는 28도를 가리켜도 체감온도는 30도를 훌쩍 넘는다. 이런 환경에서 하루 종일 근무하다 보면 전화 응대에서도 친절함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온도 기준을 낮추거나, 복장 규정을 현실에 맞게 바꾸거나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요즘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출근한다. 바지도 정장 바지 대신 면바지를 입는다. 그러다 보니 세탁소에 옷을 맡길 일도 예전보다 줄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던 시절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행정안전부에서도 여름이 되면 '하절기 복장 간소화' 지침을 내려보낸다. 노타이, 면바지 착용을 허용하고 간부들부터 따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히 넘지 못하는 선이 있다. 남자 직원의 반바지 착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몇 해 전 서울시와 수원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반바지를 잠시 허용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의 하절기 복장 간소화 지침에도 찢어진 청바지와 함께 반바지는 부적절한 사례로 명시되어 있다.


이상한 일이다. 45년 전 만들어진 온도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28도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복장 규정이라도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은 치마를 입을 수 있지만 남성은 여전히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깔끔한 반바지가 땀에 젖어 구겨진 정장 바지보다 단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30도가 넘는 사무실에서 발목까지 덮는 바지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변화는 느리게 오지만, 멈추지 않는다. 복장도 점점 실용과 편안함을 받아들이고 있고, 형식보다는 태도와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오늘도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그 변화가 언젠가 문을 열고 들어설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 희끗한 계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날이 오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제야 진짜 여름이 시작되었다고. 그리고 공무원도 드디어 여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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