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소설의 윤리적 위상에 관한 에세이-
2. 메멕스라는 예표와 부차적인 존재(들)의 연결-(1)
정지돈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통상적인 소설의 문법과는 판이한 구성에 우선 당황하게 된다. 극(劇)적 시공간 안에서의 에피소드 대신 무모하리만치 많은 정보의 파편들이 아무런 수습 없이 무책임하게 흩날리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은 작품마다 강도(强度) 차가 있긴 하지만 정지돈 소설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된다. 서술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한 일관된 서사적 인물의 적정성(decorum이하 데코럼)과 서사에 복무하지 않는 정보가 수시로 반복된다. 첫 번째 작품집 『내가 싸우듯이』의 1부인 <장> 연작에서부터 낌새가 보이는 이 같은 경향은 근작으로 갈수록 대체로 심화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단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이하 『우리는』)에 실린 여섯 편의 텍스트일 터이다. 이 작품집은 소설로서 최저한도의 조건만을 충족한 채로 발간된 나름 기념비적인 ‘소설책’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은 하나같이 ‘내적 형식으로서 소설적인 것’을 극도로 결여한다. 18 개의 메멕스(Memex) 카드 각각에 기록된 사이버네틱스와 기후학 일러스트와 테크놀로지 여성해방의 카드 섹션이 맥락 없이 전개되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와 그 연장선에 있는 「존 케이지와의 대화」, ‘존재-역사적 소설의 침입’이라는 모호한 테제 일곱 개를 제시하는 「All Good Spies Are My Age」, 삽입되는 정보에 의한 데코럼의 단절과 훼손의 강도가 어떤 소설보다 심대한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와 「해변을 가로지르며/바다를 바라보며」까지. 『우리는』의 내적 구성은 소설을 소설로서 인지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종국에는 소설로 받아들여야 한다. ‘뉴라이트를 지지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 사장인 출판사에서 등단하여 상업주의를 표방하는 출판사에서 상을 받고 이름을 얻은 개인’이 남긴, “우리가 당면해야 할 한국문학의 입장들”이라는 출판사 워크룸프레스 소설선 중 하나라는 물질적 조건으로 생산되었기에 『우리는』은 소설이라는 말이다. 책 뒤표지에 새겨진 “이 글은 언젠가 소설이 될 것이다”에서의 ‘언젠가’와 ‘될 것이다’라는 모호한 미래시제는 완료시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렇게 물질적·제도적으로 『우리는』은 소설이 됐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진정 소설인지 의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말이다. 소설을 소설로 보이게끔 하는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관습과 내적 구성 간의 타협점을 인지하기 어려운 구성 탓이다.
내적 구성과 그것을 소설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물질적 조건 사이의 낙차는 정지돈 소설의 중핵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정지돈 소설세계를 ‘이해’ 하기 위한 핵심이다. 거기에는 글쓰기 실험이나 지식조합 따위의 언명으로 묻어둘 수 없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은 채 흔적으로 남겨진 존재를 다시금 발견하는 소설적인 태도라는, 정지돈 소설 특유의 윤리적 위상이 담겨 있다.
『우리는』의 주요 콘셉트 중 하나인 메멕스 카드 구성에서부터 시작하자. 통상적인 ‘소설적 경험’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난폭하고 위악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게 분명한 이 같은 구성은 정지돈의 소설이 지향하는 ‘소설적’ 태도를 암시한다. 메멕스란 기억 확장장치(Memory Exteder)의 약자로서, 배니버 부시(Vannevar Bush)가 「우리가 생각한 대로(As We May Think)」에서 제시한 원시 하이퍼텍스트(proto-hypertext) 시스템이다. 마이크로필름에 저장된 정보를 필요할 때마다 불러와 읽고 자유롭게 내용을 편집하는 아날로그 컴퓨터 시스템의 이론적 가설이다. 이는 궁극의 디지털 하이퍼텍스트 시스템 ‘월드와이드웹’ 구상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메멕스 시스템의 구상은 가설에 그쳤다. 메멕스 특유의 아날로그식 정보편집이 반도체가 양산화된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연산속도와 실용성에 의해 사장됐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