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aemin Mar 28. 2023

부차적인 것들 중에선 가장 중요한-5

-정지돈 소설의 윤리적 위상에 관한 에세이-

  4. 부차적인 겁쟁이-(1)           


  통상적인 소설들과는 너무 다른 생경한 경험을 선사하기에 지금까지 ‘특별한’ 무언가로 이야기되기 일쑤였지만, 정지돈 소설의 중핵에는 현란한 화학반응 뒤편에 웅크린 ‘작은 겁쟁이’가 숨어 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는 상태에서 여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자신의 병세를 하소연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가망 없는 프로젝트를 책임진 채 회사 팀장의 닦달에 시달리는, 평범한 한국남성 청년 ‘나’의 데코럼에서 부터 이 모든 ‘연결’은 시작됐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 남성 ‘나’는 하필 정지돈 소설의 데코럼으로 ‘픽’되는 바람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부유하는 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된다. 테헤란 출신의 모더니스트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한국어 판본을 구하러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소설가 에리크가 ‘나’ 앞에 나타난다. 에리크는 이미 『눈먼 부엉이』를 노르웨이어로 읽었으며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찾아 헤매다가 나의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나’의 집에 머문다. 에리크는 ‘나’에게 헤다야크 책을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된 경위와 『눈먼 부엉이』와 얽힌 여러 우연과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눈먼 부엉이』에 대한 에리크의 맹목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서울의 삼십 대 남성 직장인과 노르웨이의 모더니즘 소설가 사이의 갭은 쉽사리 메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눈먼 부엉이』를 찾는 에리크의 서울탐방에 동행한다. 그 와중에 에리크와 자신을 연결시켜 준 친구 ‘장’의 전 여자 친구 ‘미주’가 일행에 합류한다. 그녀는 컬러 렌즈를 낀 자신의 벽안을 증거로 자신이 루마니아계라고 우기는, 에리크와는 또 다른 부류의 별종이다. ‘나’는 이들의 ‘다름’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 희한한 종류의 사람들을 대면하고 한다는 생각이 “쓰리섬을 하자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소심하고 어리석은 겁쟁이다. 겁쟁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삶’의 편린은 비행기의 항공원리를 알지 못하는 이가 이륙하는 비행기를 새삼 마주하고 느끼는 막연한 ‘굉장함’ 일 따름이다.

 『뉴욕에서 온 사나이』(이하 『뉴욕』)의 ‘나’는 『눈먼 부엉이』의 ‘나’보다 더한 시련(?)에 처한다. 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지던 시절, 뉴욕에 반년 가량 머물렀던 게 전부인 헤테로 남성인 ‘나’는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다행히도 누군가를 죽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처해버렸는데,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생처음 단편소설을 쓴 데다가 동성애인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성향 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말문이 막힌다. 마약상 같은 외모의 라틴계 중년남성과 키스를 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성애자 남성의 난감한 감정을 딱 떨어지게 설명할 말은 없다. 막연한 ‘굉장함’ 대신 당혹감이 계속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받아들인다. 사진으로 남겨진 ‘팩트’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행적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나’에 대한 타인의 증언과 기억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렇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이 썼는지 확신할 수 없는 ‘첫 번째 소설’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동성애인’에 대한 ‘두 번째 소설’을 써 내려간다. 결코 자신의 일부라 생각한 적 없던 자신의 면모를 타인의 기억과 시선을 통해 마주한 ‘나’는 타인에 의해 말해지는 당혹스러운 ‘나’의 행적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한 것이다. 성적지향은 가장 내밀하게 ‘나’를 개별적인 몸으로써 지각하는 감각과 관련된 정체성이다. 타인의 증언을 통해 자신의 성적지향을 동성애자나 바이섹슈얼로 재규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나’의 행적은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헤테로 남성 청년의 ‘의지’의 발로 정도로 읽히면 족하다. 그렇게 쿠바계 소설가 레이날도 아레나스와의 느슨한 연결은 ‘두 번째 소설’이라는 집합으로 나타나고, 레이날도는 한국과 이어지고, ‘나’에게 기억된다.  (계속)

이전 04화 부차적인 것들 중에선 가장 중요한-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