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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emin Apr 05. 2023

혁명, 관찰자, 내면-1

이미상, 『이중작가초롱』(2022) 서평

1. 혁명의 개인화     


  이미상의 첫 번째 소설집 『이중작가초롱』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 이 소설집을 수식할 한 단어가 떠올랐는데 바로 혁명이다. 책 말미에 수록된 전승민 평론가의 해설의 중심 키워드이기도 한 것을 보아하니 특이한 인상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이중작가초롱』은 다양한 혁명의 양상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대(「하긴」), 문화예술계 젠더 운동(「그친구」, 「이중작가초롱」), 소셜 네트워크 중심의 문화운동(「여자가 지하철 할 때」, 「티나지 않는 밤」), 이외에도 혁명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다채로운 혁명의 양상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 나는 1789년의 혁명과 관련된 정동(affect)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중작가초롱』을 읽고 연상할 수 있는 혁명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이십 세기 후반기의 혁명의 양상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1789년의 혁명이란, 교과서적인 의미에서의 프랑스혁명 그 자체가 아니다. 역사학자 로제 샤르티에가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의 세계사적 전환에 대해 제시한 바 있는 ‘혁명의 이미지’를 지칭한다.

 프랑스혁명의 일차적인 의의는 민중과 사회가 군주정과 구질서로부터의 이탈일 터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을 담은 위대한 ‘철학서적’의 확산에 따른 것이라 이해됐다. 그러나 사르티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1789년을 기점으로 분기하는 프랑스 사회의 혁명적 기원은 통합적인 사상이나 지식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피지배 민중 모두를 포괄하는 물질적이면서 비균질적인 문화적 전환기의 산물이다. “만약 혁명에 문화적 기원이 있다면, 그 기원은 이미 선포된 조화 속이나 지배 이데올로기와 선포자의 행위를 통합시키는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계를 대표하면서 재조직을 제안하는 경쟁적인 담론과, 분배와 새로운 분할을 발명해 내는 불연속적인 관행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에 있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샤르티에는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급진적인 전환의 원인을 위대한 ‘철학서적’의 공로라기보다는 출판 인쇄술 발전에 따른 대중적 독서행위(lecture communautaire)의 혁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8세기 초에서 혁명 직전인 1980년대 사이에 책의 생산이 3~4배 이상 증가했다는 데 주목한다. 전통적으로 유럽 세계에서 책이란, 지배층과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대중적으로는 낭독이라는 집단적인 경험으로 향유되는 매체였다. 그러나 18세기 인쇄술 혁신에 따른 상업 출판의 대중화는 책에 대한 기존의 감각과 인식을 해체해 나갔다. 흥미본위의 월간 잡지, 단순하고 자극적인 정치 비방문과 팸플릿이 책의 권위를 무너뜨렸기 때문인데, 이는 대중적 차원에서 새로운 독서 경향이 나타나는 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대중들은 널려 있는 책을 자의적으로 선택해서 제멋대로 매혹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중들에게 집단적 경험을 선사하던 책은 이제 사적인 매체로 탈바꿈한다. 책의 희소성과 내용적 심각함 무엇보다 낭독이라는 집단적 향유방식이 독자와 텍스트 사이에 새로운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샤르티에의 주장은 혁명 이후 위대한 철학이나 사상의 지평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자유로운 공간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하는데 근대사상과 철학은 이 수많은 개인화된 사적공간에 의지한다. 위대한 ‘철학서적’의 성공은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한 사적 개인의 형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조건에 수반한 결과이다.  혁명으로 폭발한 위대한 사상과 철학과 정치의 시대는 이에 선행했던 물적·문화적 조건에 의한 대중의 개인화 과정과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중작가초롱』을 읽으며 내가 감지한 ‘혁명’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나의 감상을 샤르티에의 입장을 포개어, 잠정적으로 ‘혁명의 개인화’라 부르고자 한다. 물론 1789년으로부터 약 이백오십 년 가까이 지난 현재, 이미상 소설의 ‘혁명의 개인화’는 샤르티에가 포착한 18세기의 그것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1789년 이후 수많은 (유사) 혁명이 이어져 왔으며 혁명을 추동하는 물질적·문화적 조건 또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일신했다. 『이중작가초롱』의 ‘혁명의 개인화’는 동시대 한국사회의 개인들의 내면과 관련된 혁명의 양상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 문화적 조건 또한 단순히 독서행위와 책이라는 매체적 속성을 초과하여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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