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골 공항은 처음이 아니었다. 생애 첫 배낭여행을 떠났던 날, 첫 목적지인 프라하로 가는 길에 경유한 공항이었다. 직항 노선이 풀부킹 되어 어쩔 수 없이 파리에서 경유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탠바이하는 직원용 표의 숙명이다.) 원래 계획에서 틀어져 자정 가까운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되고 몸은 배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걸 행운으로 기억한다.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만났기 때문이다. 녹초가 되어 환승한 두 번째 비행기가 떠오를 때, 쏟아지는 잠에 혼곤하던 내 눈을 잡아끈 빛이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드니 등대처럼 빛을 휘날리는 에펠탑과 격자형의 도로로 찬란한 파리의 밤이 보였다.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빠른 비행기의 속력에 찰나처럼 스쳐간 풍경은 꼭 이곳에 다시 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 결심은 6년을 기다려 현실이 되었다.
한국에서 11:40am에 이륙했던 비행기가 현지시간 6:15pm(한국 2:15am) 착륙했다. 단짝이 미리 사준 유심을 끼우니 카톡을 많이 보내 놨다. 내가 탄 항공편을 트래킹까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이렇게 떠나 미안했다. 유심을 등록할 때 여권을 스캔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통화를 사용하려면 이 절차를 걸쳐야 하는 줄 모르고 이상한 사기 사이트인가 하고 당황했다. 결국 등록하지 않고 데이터만 쓰기로 했다. 유심을 사용하는 여행은 이번이 겨우 두 번째라 그런지 여전히 미숙했다.
대한항공이 착륙하는 2E 터미널은 굉장히 외진 곳에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려면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구글맵은 알려주고 있었다. 공항에서 자전거라니, 농담이라고 믿고 싶다. 갈 길이 멀어 무작정 Train 표지만 보고 따라 걸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꽤 들리던 한국어가 걸으면 걸을수록 사라졌다. 다들 택시를 타고 사라진 것 같았다. 공항 터미널로 가는 통로에는 내 캐리어가 돌돌거리는 소리뿐, 텅 비어있었다. 차라리 낮에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홀로 모르는 곳을 걷고 있자니 프라하에서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도 깜깜한 밤에 도착해서 여행의 시작이 쉽지 않았다. 무슨 깡으로 유심도 안 알아보고 혼자 무작정 떠났는지 모르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유럽에서 와이파이만 쓰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사람들에게 하니 무모하다고 놀라워했다. 여기쯤이 분명한데 숙소가 보이지 않을 때 느꼈던 공포와, 공사 중인 건물에 무단점거하듯 자리 잡은 호스텔을 결국은 찾아내기 전까지 막막했던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무모했고 엉성하던 첫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의 기쁨을 알려줬던 그 기억이 유독 지금 떠오르는 건, 너무 오랜만에 그리웠던 것을 되찾아서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끝내고 좋은 경험으로 남기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최대한 빨리 안전한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 이 결론에 다다라 한참 파워워킹을 하니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미아가 되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메인 터미널을 둘러보았다.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파리'라는 도시는 서구세계를 통틀어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드이지만, 유독 미국에서 더욱 수준 높은(?) 사상과 문화의 발상지로 대우받는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를 봐도 파리와 프랑스인에 대한 선망, 혹은 편견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갔던 어느 공항보다도 경제적으로 풍족해 보이는 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미국 아닌 나라에서 미국식 영어가 자주 들려 재미있었다.
2E 터미널에서 찾지 못했던 나비고 판매대가 드디어 보였다. 키오스크를 가보니 이미 카드가 있는 사람만 충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난 카드가 아예 없으니 역무원에게서 사야 했다. 점점 위험한 밤이 다가오는데 그나마 문을 연 세 창구 중 한 곳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화를 하고 있고, 나머지 한쪽은 아랍계 관광객을 붙잡고 한참이었다. 그 앞으로 모두가 줄을 서서 기다림이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나마 대화를 할 일행이 있는 다른 팀들이 부러웠다. 다행히 문을 닫기 전에 내 차례가 오긴 왔지만 정작 나에게는 대충대충 돈만 받고 순식간에 끝났다. 설명도 없이 나비고 카드를 휙 던지기에 알아서 증명사진을 붙이고 이름을 썼다. 미리 공부라도 안 하고 왔으면 카드에 개인정보를 적지 않아서 불이익을 당했겠다 싶었다. 앞서 응대한 백인 가족과는 확연히 대우가 달랐지만, 유럽에서 동양인에게 친절한 사람은 많지 않으니 그리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이제 공항을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지하철로 공항에서 시내로 가려면 RER B선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악명을 익히 들어 마음의 준비를 한국에서부터 해왔다. 그래도 실제로 와보니 승강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범죄 일어나기 딱 좋은 분위기라는 것이 이방인인 내게도 느껴졌다. Train이라고 하는 곳으로 내려오긴 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플랫폼이 두 개 있어 어디로 타야 되는 건가 싶었다. 왼쪽 열차는 내가 내려가자마자 출발해버려서 조금 기다려 오른쪽 열차를 탔다. 어떻게든 되겠지, To Paris라고 위에 쓰여있었잖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행히 내가 타는 열차도 파리 시내로 가는 건 맞았지만 가는 길이 문제였다. 환승역으로 가는 45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프랑스어 발음이 익숙하지 않은데 영어 방송도 없다 보니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헷갈렸다. 게다가 역 이름이 잘 보이게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는 안 쓴 사람들이 더 많아 혹시라도 비말로 옮을까 봐 눈까지 감고 버텼다. 나중에 보니 모든 지하철이 다 그렇지는 않았고 치안이 안 좋은 북쪽 지역을 다니는 이 노선이 유독 심했던 것 같다. 불량해 보이는 젊은 현지인들은 더러운 신발을 그대로 자기 맞은편 의자에 걸터 놓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나에게 시비를 걸거나 소매치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의자도 저런 역사를 지닌 자리겠지… 다 찢어진 헝겊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얼룩으로 오염되어 있었지만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중 한 직장인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엄청 겁먹은 게 보였는지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처럼 굉장히 조심스럽게 떨어져 앉아 본인도 핸드폰을 꼭 쥐고 얌전히 화면만 봤다. 정말 고마웠다.
지옥 같았던 시간이 지나 중간 목적지인 Chatlet-Les-Halles역에 내렸다. 노란색 1호선 표시만 보고 따라가는데도 역이 워낙 복잡하고 미로 같아 갈아타기가 쉽지 않았다. 1호선 열차에 타자 피곤해서 눈도 못 뜰 지경이었다. 녹초가 된 채로 Les Sablon역에 내리니 생각보다 엄청 깜깜하고 조용했다. 9시 정도인데 다 문을 닫아 놀랐다. 한번 노숙자가 말을 건 것 빼고는 위험한 일은 없었다. 다 똑같이 생긴 건물이라 초행길에 밤인데 숙소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찾아갔다. 호스트는 굉장히 친절했다. 내가 벨 누르고 공동현관에 들어와 벙찌고 있으니 맨발로 내려와 3층으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면 된다고 했다.
들어가니 파리 정통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아파트였다. 오래돼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시설도 별로였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거실에 있는 피아노와 촬영 기구, 클래식 기타 그리고 화장실에 잔뜩 붙은 입장권과 영화표들을 보면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 (Parasite 표도 두 장이나 붙어있었다.) '파리지앵'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삶을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웠다. 숙박 전 호스트가 집에 개가 있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개 대신 남자가 있었다. 남편, 혹은 동거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정서가 굉장히 다르니까. 느낌상 남편 같지는 않았다. 오래된 세월로부터 오는 권태나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기억이다. 남자가 집에 있어 걱정했지만 가끔 마주칠 때 친절하게 인사할 뿐 별 문제가 없었다.
호스트가 이것저것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주는 것을 겨우 다 듣고 나만의 공간으로 왔다. 그때가 밤 9시, 한국은 날이 바뀌어 새벽 5시가 됐을 것이다. 20시간 만에 겨우 마음 놓고 쉴 곳에 도착했다.
호스트가 밤 외출을 나가겠다며 집을 비워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긴 원래 호스트의 아들이 쓰던 방이라고 했다. 눕기 전에 침대가 왠지 찝찝해 살펴보니 거민지 빈대인지 모를 벌레가 툭 떨어졌다. 나를 맞이하러 맨발로 바깥에 나오는 데서 그의 위생관념을 짐작했어야 했는데. 기절할 뻔한 걸 겨우 참고 대책을 강구했다. 침대 시트도 딱 보니 안 빤 느낌이라서, 그나마 빨래는 한 것 같은 샤워타월을 깔고 자기로 했다. 그전에 비상조치로 알코올을 뿌렸다. 타월이 내 몸을 다 감쌀 정도로 큰 건 아니라 구부정하게 자야 했다. 혹시라도 수건 밖으로 몸이 빠져나가면 베드버그에 물릴까 봐 무서웠다. 침대에 문제가 있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도 많이 묵어봤지만 침구만큼은 제대로 세탁된 곳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게다가 난방이 하나도 안 되는데 큰 창이 바로 옆에 있어 냉기가 뼈까지 들어왔다. 극도로 피곤한 상황인데도 잠이 안 올 정도였다. 베개와 이불도 이상한 냄새가 나 찝찝해서 쓸 수 없었다. 덮을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져온 옷으로 중무장했다. 가장 두꺼운 후드티와 체육복을 껴입고, 그래도 추워서 목도리를 두르고 패딩도 덮었다. 맨살이 드러난 발이 특히 추웠다. 못 버티고 양말까지 껴입었는데도 얼 것 같았다. 집 안에서 노숙자 체험이구만. 한국에 고이 있을 내 방과 침대가 그리웠다. 피곤에 절어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너무 춥고 몸이 뻐근해 일어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새벽 4시쯤 포기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알아봤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더러운 도시... 각오는 했지만 첫날부터 녹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