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너무나 길고도 짧다
< 2022/07/01 일기 >
빠르게 소멸되어 가는 젊음이 다하기 전에,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초조함.
그 무언가가 뭘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불안함.
지금 내 작은 행동 하나, 하루하루의 시간이, 내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망쳐버릴 것이라는 숨 막히는 공포.
취준생에게 시간이란 매우 가변적인 대상이다.
어떨 때는 하지의 햇살마냥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징하게 늘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공책 귀퉁이에 그려진 움직이는 만화처럼 바쁘고 짧게 끊어지기도 한다.
7월에 그간 미뤄오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충동적으로 한 것도 시간 때문이었다.
시간이 너무나 길었던 탓이다. 겨울에는 반쯤은 재밌고 신기하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취업활동이, 점점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형벌처럼 느껴지던 참이었다. 지금 동동거리며 뭔가를 해도 궁극적으로 내 미래에 도움이 될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는 공포가 컸다. 그나마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했던 과거와 달리 여름에는 유독 서류 탈락이 많아 스스로가 어디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던 중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람은 글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 그 이상의 것이었다. 매번 실패만 하다가 참 오랜만에 이뤄낸 성공이었다. 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의미가 컸다. 학교를 다닐 때는 그럭저럭 쓸만하던 글쓰기 능력이 사회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 비참하고 의기소침해진 참이었다. 그래도 내 글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디지털 시대에 글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신기한(?) 공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미약한 희망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온갖 실패로 점철됐던 여름의 중턱에서 처음 맛보게 된 귀한 성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8월 첫째 주에는 '글을 싸야 산다'는 거창한 소개가 무색하도록 글을 쓸 시간도 없었다. 천천히 지나가던 시간이 갑자기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일도 없으니까. 이번 주는 일정이 하나도 없어 집에서 공부만 하고 서류지원만 하다가도, 다음 주는 면접과 시험이 갑자기 몇 개씩 잡혀 하루도 쉬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취준생의 달력이었다. 당장 며칠 후도 예상할 수가 없어 미리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고, 이미 잡아놓은 약속도 취소하기 일쑤였다. 부모님과 단짝은 걱정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밥도 못 먹는 것 아니냐, 살이 많이 빠졌다, 피곤해 보인다 등. 하지만 나는 오히려 끊이지 않는 자기혐오와 실체 없는 불안에서 날 구제해준 물리적인 분주함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사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썩혀야 하는 기나긴 시간은 견딜 수 없었다.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압박감을 느낀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고, 내 입을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명제였기에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강박도 심했다. 하지만 막상 취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걱정을 시작했던 건 조금 늦은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전의 나는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는지를 걱정하느라 그 앞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무너짐은 너무나 쉬웠고 다시 일어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 끝없는 줄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졸업을 두 학기 앞두고서야 비로소, 학생이 아닌 나의 미래를 상상할 겨를이 생겼다. 평생을 학생으로 살아왔는데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다니 막막했다.
내 상태를 정량적으로 표시하자면 학점만 높은 비상경 문과 졸업생이었다. 인턴도 한번 못해보고, 여자 취준생 치고는 나이도 많은 절망적인 상황.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들에 이유가 있고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지만, 면접관에게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다 들려줄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될 것이었다. 졸업 전 멋도 모르고 넣은 몇 개의 지원서는 서류전형부터 통과하지 못했거나, AI역량면접이나 인적성 시험은 잘 통과해놓고 직무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서류 탈락은 그것대로 서류마저도 못 통과할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게 했고, 1차면접 탈락은 직무 경험이 없다는 것에 무능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졸업 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파리 여행을 다녀오고 봄부터 본격적으로 취준이라는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상술했듯이 처참했다.
그래도 끝없는 실패가 아주 무의미했던 건 아니었는지 7월 말부터 조금씩 일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는 인적성검사, 어떤 회사는 AI역량검사, 어떤 회사는 AI영상면접, 어떤 회사는 오프라인 면접...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 복잡해지기만 한 취업 전형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 보니 시간은 훌쩍 흘렀다. 피곤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감격스럽기도 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사회에의 소속감인가. 졸업 전 2020년도부터 온라인 강의로 인해 이미 사회와의 연결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2년간의 격리 후 그나마 학생이라는 명함마저 사라진 올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넌 뭘 하든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듣던 총명한 나는 어디에 갔는지. 내가 꿈꾸던 어른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래서 실재하는 공간과 사람이 있는 면접에 가는 것이 특히 감사했다. 실체가 있는 대상이 날 불러주는 것이었기에.
저번 주에는 드디어 처음으로 면접에서 합격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1차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진 기억에 면접에 대해 점점 두려움만 커져가던 참이었다. 어떤 회사이든 간에 나를 인정해준 곳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물론 아직 최종합격까지 가본 회사는 없지만 의미 있는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 같다. 여기에 닐 암스트롱이 했던 유명한 말을 끼워 넣으면 과할지도 모르겠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하지만 내게는 정말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흔하디 흔한 면접 합격이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