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취준일기: 면접 후기 (1)
생활용품업체 영업 신입 1차 면접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졸업을 앞둔 나는 지원서 '난사'를 시작했다. 그 흔한 경영경제 복수전공이나 인턴 혹은 학회 같은 스펙이 없는 국문과 졸업생이 할 수 있는 건, 전공무관과 경력무관 공고에 최대한 많이 지원하는 것이었다. 내 전문성을 활용할 수 없고 그것이 요구되지도 않는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업계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비상경 문과에게 허락된 직무는 영업, 인사, 기획, 홍보 정도. (그나마 인사는 신입은 거의 뽑지 않는다) 뭐라도 상관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지원 회사를 100개는 채워보기로 했다. 다 안되면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다짐하며.
몇 번의 불합격 끝에 첫 서류합격 메일을 보내준 회사는 나름 탄탄하고 인지도 있는 생활용품기업이었다. 처음으로 받아본 '합격'이란 글자는 너무도 찬란해서 비상경 문송 취준생으로 신분이 격하되며(?) 함께 추락한 내 자존감을 일시적으로나마 세워주었다. 아직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고 인적성과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면접이 남아있었다. 갈 길은 한참이지만 최종합격을 해서 멋진 사옥으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을 꿈꿔보기도 했다. NCS나 수능 류의 무난한 인적성검사를 통과하고 1차 면접 대상자가 되었다. 원래도 부족한 사회성과 자신감이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은둔자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가 원래도 말보다는 글이 편한 성격이라 면접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가족과 친구 앞에서 버벅대고 한숨을 쉬고, 자신감이 없어 상대의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대본을 열심히 만들어놓고도 잘 읽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절망의 대야에 섞인 한 방울의 설렘으로 첫 면접날의 새벽이 밝아왔다.
입사면접이란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는 자리이지만, 반대로 지원자가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원자의 입장으로 본 이 회사는 비호감에 가까웠다. 착한 기업이라고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는 곳이라서 더욱 괴리가 느껴졌던 것 같다. 면접관들은 공통적으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큰 것 같아 보였다. 애사심은 좋지만 지원자를 깔아뭉개려고 하는 태도가 느껴져 짜증 났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회사인 줄 아나보다.
하루종일 사람을 완전 진 빠지게 만든 면접이었다. 면접 경험도 없는 와중에 난이도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화상으로 진행하는 거니까 그나마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침 8시 40분부터 캠을 켜고 화상 회의실에 대기하다가 9시부터 팀과제를 시작하고, 중간중간 개인별 역량면접, 영어면접, 인성면접에 마지막 팀발표까지 해서 오후 6시 넘어서 일정이 끝났다. 면접비는 10만 원씩 부쳐줬다. 안 받아도 좋으니 중간에 도망가고 싶었다.(오전의 개인면접을 망했음을 직감하고는 어차피 떨어질 텐데 점심시간에 컴퓨터를 꺼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직무면접이 제일 먼저였다. 팀회의실에서 과제를 하다가 각자 스케줄에 맞춰 개인면접실로 소환되었다. 면접관이 나이 지긋한 부장급으로 네 명이나 있어서 굉장히 긴장됐다. 처음 시작하는 자기소개부터 말아먹은 느낌이 났다. 처음에 나를 굉장히 귀엽게 바라보던 아버지뻘 면접관도 표정이 굳었고 나머지도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나만의 강점을 짧은 시간 안에 어필하는 것은 우선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고 회사와 직무도 잘 알아야 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외울 수밖에 없는데 외운 티 안 나게 하라고 조언은 어떻게 따를지 모르겠다. 면접을 몇 번 본 지금도 자기소개가 제일 어렵다. 나를 아직 잘 모르고 회사의 생리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 대한 탐구는 죽을 때까지 미완일 것이라 생각하는 문사철스러운 고집 때문일까.
그 후는 인성 면접이었다. 중년 여성분과 비교적 젊은 여성분 두 명이 들어왔다. 이 회사는 면접에 비중을 크게 두는지 전체적으로 지원자 한 명당 면접관 수를 많이 할당해 놨다. 스트레스받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상사가 부당한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건지 등을 물어봤다. 그중 한 면접관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도 유독 눈빛이 서늘해서 주눅이 들었다. 영어면접에서는 원어민이 들어왔다. 업무 관련이나 자소서 관련이 아니라 생뚱맞은 질문을 물어봐서 당황하는 바람에 원래 실력이 안 나왔다. 그래도 그나마 시간이 짧아 무난하게 끝났다.
팀미션이 가장 큰 산이었다. 여자 중고신입 지원자 한 명과 남자 지원자 한 명, 총 세 명이서 하루종일 조모임을 했다.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해 자사의 상품을 판매할 방안을 만들어 내는 거였는데 우선 라이브 커머스 자체를 잘 몰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평생 이용해 본 적도 없는 서비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자료조사하는 시간에 서둘러 알아보니 카카오 쇼핑 라이브나 네이버 쇼핑 같은 데서 홈쇼핑과 비슷하게 생방송으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실시간으로 댓글이나 하트가 올라오는 것도 생소했고 평범한 제품을 대단한 것처럼 과장하는 호스트의 모습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서비스이거나 즐거운 여가생활일 텐데, 이곳의 생리와 내가 안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도 주제였지만 팀원이 가장 힘들었다. 한 지원자가 고압적인 태도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조모임을 끌고 갔다. 판매할 상품을 기저귀로 정하며, 나는 고령화시대에 맞추어 노인용 기저귀를 제안했다. 기저귀 하면 떠오르는 아기용 이미지에서 탈피한다는 신선함과 고령화라는 시사성에서 점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됐다. 하지만 내 의견은 씨알도 먹히지 않고 독불장군의 뜻대로 되었다. 마케팅 전략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은 기저귀에 '엄마도 여자다(?)'라는 슬로건을 가져오며 사은품으로 니치 향수 같은 걸 끼워주자고 했다. 아기 용품에 엄마만 관련이 있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30대 초반일 텐데 아빠는 당연하게 육아에서 지워버려 당황스러웠다. 만약 젊은 층에서도 이런 생각이 보편적이라면 육아에 있어 성평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모두가 그의 뜻대로 됐다. 그룹 활동인데 자기 마음대로만 하고 타인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아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끝나고 팀원평가 시간이 있었다. 다짜고짜 면접관이 다른 지원자에게 나에 대해 물어봤다. “00님은 00님(나)이 팀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심지어 못마땅한 말투라 처음에는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나만 지적한 건 줄 알았는데, 차례로 물어본 걸 보니 상호평가하라고 한 것이었다. 질문을 받은 지원자는 처음에 그 질문을 받고 그래도 열심히 쥐어짜서 자료조사를 잘해줬다고 말했다. 참 고마운 평가네. 나는 또 다른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어 강점을 솔직히 말했다. 관련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실무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이 훌륭했다고. 사실 네가 붙으면 내가 떨어지는 면접이라는 자리에서 같은 팀원에게 좋은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걸 알면서 면전에서 서로에 대한 평가를 종용하는 방식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면접이 끝나자 그제야 내 몸이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온몸은 긴장과 실망으로 차가웠고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때아닌 물놀이를 한 느낌이었다.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