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실재#11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나는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댄다. 손가락을 움직인다. 나는 이 손이 나의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손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나의 유전자가 결합하고, 세포가 나뉘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 중 어느 순간에 ‘나’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나는 언제부터 실재했는가? 아니, 나는 실재하는가?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불교의 연기(緣起) 법칙에 따르면, 어떤 것도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나는 공기 없이 살 수 없다. 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나의 생각은 타인의 언어를 통해 형성되었고, 나의 몸은 내가 먹은 음식들로 이루어졌다.
나는 혼자 있다고 믿지만, 사실 나는 수많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인가? 아니면 단순히 이 관계의 흐름 속에서 임시로 형성된 존재일 뿐인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다.
내가 없다면 이 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없다면,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를 존재하게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실재하는가?
양자역학에선 관찰하기 전까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 속에서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 그것은 어떤 상태인지 결정되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결정된다.
즉, 나의 존재도 내가 인식하는 순간에만 ‘실재’가 된다.
이것이 연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연기에 따르면,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나는 관찰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인식하지 않는 순간 나는 사라지는가?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가는가?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나의 실재가 유지된다면, 죽음 이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이 말은 곧, 나는 지금도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단순한 순간의 연속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허상인가? 아니면 흐름인가?파동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우리는 보통 ‘나’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가?
나는 10년 전의 나와 같은가?
아니다. 나는 계속 변한다.
세포는 죽고 다시 생성된다. 생각도 변한다. 기억도 왜곡된다.
나는 흐르고 있다.
강물처럼, 구름처럼.
나는 실체가 아니라, 움직임이다.
나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연결이다.
나는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동시에 사라진다.
그것이 연기이고, 그것이 나다.
그러나 이 모든 사유가 끝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붙잡고 싶다.
나는 공허 속에서도, 흐름 속에서도 나 자신이 ‘있다’고 믿고 싶다.
나는 실재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다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