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10화 정선생
누나가 시골에서 돌아오고, 영석도 남산도서관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수아 생각이 자주 났지만, 편지를 쓰는 일도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고, 수아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 같아서 꾹 참기로 했다. 영석은 도서관 시계가 9시 50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남산도서관을 나와 귀갓길을 재촉하였다. 남산 내려오는 길의 전파사에서는 9월 9일에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던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나간 자욱 위에 또다시 밀려오며/가녀린 숨결로서 목 놓아 울부짖는/내 작은 소망처럼 머리를 헤쳐 풀고/포말로 부서지며 자꾸만 밀려오나/자꾸만 밀려가는 그 물결은/썰물 동여매는 가슴속을 풀어/뒹굴며 노래해 뒹굴며 노래해/부딪혀 노래해 부딪혀 노래해/가슴속으로 밀려와 비었던 가슴속을 채우려 하네/채우려 하네/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밀려오는 그 파도 소리에/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려/다시 올 파도와 같이 될거나/밀려오는 그 파도 소리에/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려/다시 올 파도와 같이 될거나/밀려오는 그 파도 소리에/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려/다시 올 파도와 같이 될거나/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영석은 전파사 앞에서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대상을 받은 곡에 들어 있는 “뒹굴며 노래해”라는 가사가 “남녀 상열 지사'(男女相悅之詞)”에 반해서 방송금지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석은 갈 길이 바쁜데도 귀 기울여 들어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남녀상열지사’에 반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영석이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남녀 상열 지사'(男女相悅之詞)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즐거워하는 가사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고려 가요 중 남녀 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노래들을 낮잡아 이르던 말이다. 그들은 이러한 노래들이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에 어긋난다고 여겼으며, 그 결과 많은 고려 가요가 망실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겠니?”라고 한탄하시던 생각이 났다.
영석은 정부가 만일 이 곡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하려 한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군사정권을 무너뜨릴 민중의 힘을 의미한다는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이, 권력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억압하는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이는 예술이 지닌 다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권위주의적 시대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재수생 주제에”라고 웅얼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금상을 받은 노사연의 '돌고 돌아가는 길‘, 은상을 받은 활주로의 '탈춤', 은상을 받은 김정식, 김용숙, 이해종의 '약속', 동상을 받은 유미랑, 박망래의 '꿈을 찾아 날아라'와 최미의 '하나가 된 철새', 그리고 고인돌의 ‘날개’ 하나하나가 모두 좋았지만, 영석은 대상곡과 활주로의 ‘탈춤’이 특히 좋았다. '활주로'는 국립항공대학교 소속의 밴드 그룹으로, 전통적인 탈춤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흥겨운 분위기와 강렬한 서양의 록 사운드를 결합한 충격적인 음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네 형이 국립항공대학교가 정말 좋은 대학이며, 합격이 매우 어려운 대학이라고 수없이 말해놓고서 세 번이나 떨어졌기 때문에 그 대학에 대한 이미지가 영석에게는 매우 좋았다. 그런데 그 학교 출신이 ‘활주로(runway)’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른다니 그저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캐주얼하면서도 록 밴드 특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의상, 악기를 드는 모습, 모두 영석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메인보컬을 맡은 깔끔하고 잘생긴 외모의 구창모와 기타를 치는 긴 머리, 깡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소 거친 느낌을 주는 배철수가 서로 어울리는 것이 참 신기했다.
밤 10시 30분, 1호선 전철을 내려 영등포시장으로 향하는 골목은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 전 마지막 활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네온사인도 간판 불빛도 희미한 시장통은 머리 위로 위태롭게 매달린 전구들의 붉고 누런 빛 아래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좌판 위에서는 막판 떨이를 외치는 생선 장수의 목소리와 천 원짜리 몇 장에 실랑이를 벌이는 아줌마들의 억센 목소리가 뒤엉켜 끈적한 공기를 만들었다. 영석은 곰소댁 아줌마도 저들 중에 섞여 있겠지 싶었다.
파장을 서두르는 손길들은 모두가 같았다. 싱싱한 대구를 담았던 나무 상자는 금세 층층이 쌓이고, 좌판의 채소들은 이미 숨이 죽은 채 주인 없는 잔해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누군가 내다 버린 생선 내장과 물이 뒤섞여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름한 양복 깃을 여민 남자는 막차를 놓칠까 초조한 눈빛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단발머리 소녀는 엄마의 치마폭을 꼭 붙잡은 채 졸린 눈을 비볐다.
골목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영석과 반대방향인 영등포역을 향해 일제히 달렸다. 기관차와 버스가 내뿜는 디젤유 냄새와 시장 상인들이 사용하는 연탄가스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낡은 버스들은 손님들을 꽉꽉 채운 채 매연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통금 사이렌의 길고 음산한 소리가 울리기 전에 시장통에 남아있던 마지막 노점상들은 비닐 포장을 덮기에 바쁘고 서둘러 닫히는 셔터 소리가 텅 빈 시장에 울려 퍼졌다.
영석은 서둘러 영등포시장 쪽을 향해 달렸다. 오목교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영등포시장 쪽으로 향하는 길은 낮의 활기를 잃은 채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드문드문 거리를 비출 뿐, 그 길가에 붙어선 낡은 건물들만이 붉고 푸른 조명 아래서 벌거벗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낡은 라디오의 뽕짝 가락과 담배 냄새, 그리고 눅진한 화장품 냄새가 뒤섞여 찬 공기 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낡은 건물들의 좁은 문간마다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이 기대어 서 있었다. 촌스러운 카라가 달린 옷을 입거나, 몸에 달라붙는 스웨터를 입은 그들은 저마다의 붉은 불빛을 등지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은 여성이 영석을 가로막고 섰다.
“학생 쉬었다 가지 그래?”
“아뇨, 저 바빠요, 얼른 버스 타야 해요. 비켜주세요”
“그리고 저 학생입니다.”
“학생은 뭐 남자 아닌가?”
“통행금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자고 가, 서비스 잘해줄게”
“이러지 마세요, 왜 이러세요”
“어! 만졌어, 그럼 자고 가야 하는 거야”
여자는 영석이 자꾸 질척대는 여자를 밀어내느라 잠시 팔을 잡은 것을 문제 삼으며 막무가내로 영석을 닦아세웠다.
영석은 이 상황이 너무 곤혹스러웠다. 조금만 더 일찍 올 것을 괜히 전파사 앞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후회스러웠다. 다행히 얼큰하게 취한 어떤 아저씨가 허우적대며 그 여자를 향한 손짓을 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더라면 영석은 큰 곤욕을 치를 뻔했다.
버스 안은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가히 콩나물시루라고 할 만큼 사람들로 가득했다. 술 냄새, 담배 냄새, 기름 냄새, 땀 냄새 등이 뒤섞여 숨이 막힐 지경인데도 사람들은 용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손잡이에 의지하여 졸고 있었다. 정선생은 언젠가 영석에게 아직 지방에 일자리가 많고, 지방대학도 서울에 있는 대학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데도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는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중앙집권화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정책 때문에 서울에 우리나라 인구 25%가 모여 살게 된 것이고, 이 문제는 언젠가 우리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중앙집권적 개발 논리가 숨어있어. 모든 자원과 권력이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있잖아. 지방은 오직 서울의 거대함을 뒷받침하는 부속품일 뿐이야,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일자리를 찾아, 학교를 찾아,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이 거대한 도시로 몰려들고 있어. 그들에게 도시의 불빛은 희망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고향을 등진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어. 그 결과가 바로 인구의 폭발적인 서울 집중이고, 그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시대의 강요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결이야, 두고 보라고, 지금은 '박정희 신화'를 이야기하지만, 언젠가 역사는 말할 것이네, 그의 신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가를...”
영석은 정선생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또 주위를 살폈던 기억이 났다.
영석이 집안에 들어서자, 숙희가 달려 나왔다.
“오빠”
숙희는 숫제 울먹이며 영석의 손을 잡았다.
누나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숙희를 바라보았다.
“정선생님이 병원에 실려 가셨단다. 오늘은 숙희가 우리 집에서 자야 할 것 같아”
“무슨 일로?”
“나도 모르겠어, 곰소댁 아줌마와 신부님이 급하게 택시를 잡아 영등포 시립병원으로 모시고 가셨단다”
“우리 아저씨 배가 빵빵해졌어, 나한테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했어. 나 몰래 많이 먹었나 봐”
숙희는 아저씨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없는 현실이 두려워서 우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코피도 많이 흘렸는데 옛날에 잠을 안 자고 공부해서 피곤해서 그런 거래”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서 상황이 어떤지 보고 싶지만, 통행금지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숙희를 안심시켜 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숙희야, 아무 걱정하지 마, 딱 하룻밤만 주무시고 돌아오실 거야”
다행히 숙희는 영석의 손을 붙잡고 곤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영석은 누나와 영등포 시립병원에 정선생 병문안을 갔다. 누나가 출근해야 하고, 자신도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야 하지만, 누나가 숙희가 학교에 갔다 오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영석은 숙희가 등교하기 전에, 같이 병원에 다녀온 후, 숙희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올 심산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곰소댁이 복도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숙희가 엄마 품에 달려가 안기며 울음을 터트렸다. 곰소댁은 숙희를 꼭 껴안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곰소댁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숙희 아침밥 먹였어요, 숙희는 걱정 마시고 정선생님 간호에나 집중하세요”
누나가 곰소댁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 어서 출근이나 허소, 내 꺽정 말고”
“정선생님 괜찮으신 거죠?”
누나가 물었다.
“남편 한 놈 먼저 보낸 박복한 년이 무슨 복이 있어서 또 한 놈 만나 행복하게 살겄는가? 이년 팔자는 그러라는 팔자여”
“애당초 기대를 허지 말았어야 혀”
"아이고 이년아, 이년아, 지지리도 복도 없는 년아, 부모복이 있더냐 서방복이 있더냐"
나지막이 내뱉는 곰소댁의 한탄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영석은 밀러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은 자신과 같이 의사 선생님을 만나보자고 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은 40대 정도로 아주 젊은 분이었다.
“환자분은 간암 말기입니다”
“네? 폐결핵이 아니고요?”
“환자분 말씀을 들어보니 폐결핵약을 복용하셨다더군요. 폐결핵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분은 B형 간염을 오랫동안 앓고 계셨습니다. 본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감염경로는 다양한데, 환자분의 모친이 환자를 출산할 때 전파한 모자감염일 수도 있고, 성접촉이나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감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하잖아요? 간이라는 장기는 신경이 없는 장기라서 통증 신호를 잘 주지 않아요. 종양이 자라더라도 초기에는 통증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크기가 커지거나 간막 즉 피막을 압박하거나 파열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른쪽 상복부 통증이 생깁니다. 피로, 식욕부진, 체중감소 같은 일반 증상만 나타나므로 초기에는 다른 질환으로 오해하기 쉽지요. 특히 환자분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으니 모든 증상이 그것 때문에 생긴 것으로 오해했을 겁니다. 거기에다가 술도 드셨다더군요. 몸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하게 됩니까?”
“이미 늦었습니다.”
“네?”
영석과 신부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부인되시는 분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치료만 해달라고 하십니다. 신부님께서 설득을 좀 해주시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환자분은 길어야 3일 사실 수 있습니다.”
영석과 신부님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디 부인분을 설득하셔서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십시오. 병원의 하얀 천장만 바라보다가 객사(客死)하도록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다만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간성혼수가 와서 경련이나 발작이 생길 수 있으므로 손과 발을 묶고 앰뷸런스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은 환자분께서 임종 직전에 정신이 맑아지고 평소처럼 말하거나 미소 짓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정상인처럼 말입니다. 이를 의학적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 또는 영어로 terminal lucidity, 말기 명료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후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의사 선생님은 영석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설명을 하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나 했다. 그리고 또 곰소댁이 의사의 말을 안 들으니 어서 주변 사람들이 설득을 해서 집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고 재촉을 했다.
집으로 모셔 온 정선생의 손목과 발목은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일터에 나가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곰소댁의 집안으로 정선생을 모시고 들어가 눕혔다.
누나는 회사 사정상 출근을 했다. 그러나 영석은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숙희는 영석이가 돌볼 수밖에 없었다. 숙희도 심상찮은 집안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영석은 삼양라면 한 봉지를 꺼내 아껴두었던 달걀 하나를 넣고 끓여서 숙희에게 먹였다.
“오빠 나 아빠 한번 보고 와도 될까?”
숙희가 무슨 일인지 아저씨라 하지 않고 아빠라고 했다.
“아빠?”
영석은 숙희의 진심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응! 아빠 한번 보고 올게”
“그래, 어서 가보자”
영석은 숙희 손을 잡고 숙희네로 갔다.
곰소댁에 따르면 정선생은 여러 번 발작을 일으킨 후 잠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빠!”
숙희가 비쩍 마른 정선생의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어린 숙희도 직감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곰소댁은 깜짝 놀란 눈으로 영석을 바라보았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숙희의 울음소리에 곰소댁이 울부짖었다.
“아이고 숙희 아빠, 숙희가 아빠라고 안 허요, 눈 쫌 떠보쇼, 눈 쫌”
영석은 정선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이년 박복허다지만 당신만큼 박복허겄소? 출세혀서 집안 일쿼 볼라고 혔는디, 실패혔다고 버림당허고, 죽어도 낯바닥 한번 비추는 놈 없는 가족이 뭔 가족이다요?”
“썩어 문드러질 놈의 사법고시, 육시를 헐 놈의 시법고시, 오살 헐 놈의 사법고시는 뭐 헐라고 준비혔소, 옘병할 놈의 세상, 어떤 놈은 부모 잘 만나 평생 세상 호령허고 살고, 어떤 놈은 고생만 직싸도록 허다가 팍 죽어뿔고”
곰소댁의 울음소리가 오목교를 건너 영등포시장까지 갈 기세였다.
영석은 숙희에게 건너가자고 말했다,
“오빠 나 여기 아빠랑 있을래”
“그래, 그게 좋겠다”
누나가 퇴근하고 한 시간 여가 지났을까?
“오빠! 우리 아빠가 밥 달래? 울 아빠 살아났어”
숙희가 기쁜 얼굴로 영석이네 집으로 달려왔다.
자정까지 올리기로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 낮에 중요한 일들이 생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