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11화 곰소댁과 영등포 시장
1978년 9월 중순의 영등포 시장은 늦여름의 습기와 초가을의 볕이 뒤섞여 끈적하고 후덥지근했다. 시장 바닥은 열기를 머금고 있었고, 상인들의 쉰 목소리는 찌는 듯한 공기 속에서 울렸다. 그 한가운데, 곰소댁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낡은 회색 면 티셔츠는 땀으로 축축했고, 비늘이 묻은 손은 빠르게 움직이며 고등어의 내장을 빼고 있었다.
“엄마, 더워.”
정선생이 살아 있을 때는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숙희가 이제 집에 혼자 두는 것이 걱정스러워 곰소댁은 오늘 숙희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시장에 데리고 나왔다.
곰소댁은 숙희의 말에 고개를 들지 않고 “쫌만 참어 잉, 곧 끝날 거여. 이거 팔고 팥빙수라도 하나 먹자.”라고 대답했다. 숙희는 아무 말 없이 엄마 옆에 앉아 죄 없는 땅바닥만 발로 툭툭 쳤다. 곰소댁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곰소댁은 정선생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옆집의 영석이나 그의 누나 역시 바쁜 사람들인지라 숙희를 맡길 수 없어 곰소댁은 애가 탔다. 비록 판자촌이기는 하지만, 비좁은 방에서 서로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행복을 영원히 느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정선생이 너무나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쩍 말라서 그렇지 정선생의 요모조모를 살피면, 새까만 눈썹에 쌍꺼풀이 있는 큰 눈, 그리고 오뚝한 코, 넓은 이마, 강인해 보이는 턱, 키스하고 싶을 정도의 입술 등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는 미남이었다. 곰소댁은 정선생의 살이 붙은 모습을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살만 붙으면 극장에서 본 알랭 들롱이나 로버트 레드포드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숙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가 숙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매일 밤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변함없이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졌다. 정선생이 있을 때는 조용히 곰소댁을 지켜보던 점포주 나덕술이 오늘은 숙희를 흘낏 바라보며 곰소댁에게 말을 걸었다.
“곰소댁, 언제까지 좌판에서 고생할 거야. 내 가게로 들어와. 세는 남들보다 싸게 받을 테니까”
곰소댁은 옆에 앉아 있는 숙희가 신경이 쓰였다. 살집이 있어서 그렇지 곰소댁도 치장하고 나서면 어디를 가더라도 빠지는 인물은 아니다. 처녀 때는 곰소 근방에서 내로라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으니까 말이다.
곰소댁은 고개만 푹 숙인 채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상인조합장 김인상도 한마디를 했다.
“곰소댁, 시장 현대화로 시장이 싹 헐리면 좌판 따위는 다 없어지게 되거든, 그러니 나랑 다방에 가서 커피나 한잔하면서 곰소댁의 미래를 의논해 보는 건 어떨까?”
그 말끝에 그가 흘리는 웃음이 곰소댁은 섬찟했다.
“저 옘병할 놈의 새끼들, 곰소댁 신랑 죽은 지, 메칠이나 되얐다고 저 지랄들이여?
곰소댁 옆에 좌판을 깔고 역시 생선 장사를 하는 고창댁이 한마디를 했다. 고창댁과 곰소댁은 동향이라 평소에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누가 지눔들 시꺼먼 속을 모를까 봐? 의뭉스러운 새끼들?“
곰소댁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정선생이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집안은 적막했다. 새벽마다 곰소댁의 귀를 찢던 그 기침 소리조차 사라진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곰소댁은 잠든 숙희 곁에서 정선생이 시간 날 때마다 종이에 끄적거리던 메모지를 꺼내 읽었다.
“살아남은 자가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전태일이 불을 지른 건 죽으려는 게 아니라 살려는 몸부림이었다.”
“전태일이가 누구여? 정선생은 정씬게, 가족이나 친척은 아닐 텐디? 친구가 누구 집에 불을 질렀다는 거여?”
"아는 게 힘이다. 모르면 노예가 된다. 전태일도 공부하며 싸웠다."
곰소댁은 전태일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곰소댁의 손이 떨렸다. 정선생이 남긴 말은 가슴 한쪽을 지피는 뜨거운 불처럼 강렬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시장 재개발 얘기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좌판 상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라, 여기에서 쫓겨나면 발붙일 데가 없다.
“조합이랑 잘 얘기해서 보상금이나 챙기자”는 목소리와 “우리는 목소리도 못 내고 그냥 쫓겨나는 거 아냐?”는 불안이 서로 엇갈렸다.
곰소댁은 장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잠자고 있는 숙희 옆에서 정선생의 남긴 메모지를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법은 약자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은 강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약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들은 강자에게 모든 것을 뺏기게 된다.”
점포주 나덕술은 점점 노골적으로 곰소댁을 흔들어 댔다.
“곰소댁, 밤마다 집에 가면 적적하지 않아? 나 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애도 든든할 텐데?”
끈적끈적한 그의 목소리에 “한마디 할까?” 싶었지만 곰소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참기로 했다. 그가 얼마나 교활한 인간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활한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칭찬이 필요한 사람에겐 아낌없는 찬사를, 불안한 사람에겐 확신을 주는 말들을 건넨다. 그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그의 눈빛이 흔들릴 때만 겨우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실컷 논쟁하도록 내버려 둔 후, 모두의 의견이 지쳐갈 때쯤 나타나 가장 그럴듯한 중재안을 내놓는다. 모두가 그의 지혜를 칭찬하지만, 사실 그 중재안은 처음부터 그가 원하는 방향이다. 그의 미소는 너무나 온화해서 경계심을 허물게 한다. 하지만 그 미소 뒤로 상대의 약점을 낱낱이 파악하고 계산하는 차가운 눈빛이 숨겨져 있다. 그에게 친구란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친구의 기쁜 일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 축하를 건네지만, 그가 필요 없어지면 미련 없이 관계의 끈을 잘라낸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흘리고, 불리한 정보는 완벽하게 숨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파편에 불과하다. 모두가 책임지기 싫어하는 문제가 생기면, 그는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관망한다. 그러다 비난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면, 그제야 나서서 씁쓸한 표정으로 '결국 이렇게 되는군' 하고 중얼거린다.
상인조합장 김인상은 협박조로 말을 바꾸었다.
“내 말 안 듣고 버티면, 좌판 싹 쓸려나가는 수가 있어, 시장에서 곰소댁이 설 자리는 없게 되는 거지” 곰소댁은 그의 음험한 속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맑은 물밑에 숨어있는 차가운 돌 같다. 겉으로는 투명해 보이지만, 바닥까지 손을 뻗어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만져질 것 같다. 그의 말은 꿀처럼 달콤했지만, 그 속에는 독침이 숨겨져 있다. 상대가 방심하는 순간, 그는 그 독침을 정확히 심장부에 꽂아 넣는다. 그의 삶은 정교하게 짜인 거미줄과 같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의 그물망 안에 갇혀 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다.
곰소댁은 배운 게 적지만 그것은 학교에서 배운 게 없다는 것이지, 시장에서 배운 지식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실전에 강하다.
곰소댁은 김인상이가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선생의 메모지에 적혀 있던 또 다른 말이 생각이 났다.
“입술은 칼보다 날카롭고, 말은 주먹보다 무겁다.”
”싸우는 건 주먹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주먹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건 말 한마디다.”
“때로는 차가운 침묵이 어떤 소리보다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그걸 노려 한방에 죽여야 한다."
그래서 김인상이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유혹을 할 때마다 말없이 차갑게 웃어주었다. 그러면 김인상은 흠칫해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뱀처럼 다시 나타나 곰소댁에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회를 엿보았다.
정선생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분노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저놈들이 아무리 총칼로 국민들을 위협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할지라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일이야.”
"박정희가 마치 왕처럼 군림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 것도 결국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야. 이처럼 자기를 선출한 건 국민인데 무지한 국민들이 완장을 채워주면, 그때부터 국민을 자기 노예취급하는 거지. 그러므로 국민들도 공부해야 해, 많이 알아야 해, 많이 아는 국민들이 많아지면 절대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이 나타날 수 없어, 설령 국민들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잘못 뽑았더라도 나중에 본심을 알게 되면 반드시 쫓겨나게 되는 거야. 그래서 일본 놈들이 우리 국민들과 일본 놈들의 교육방식을 달리 한 거야. 자국민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고 우리 국민들은 자국민들의 노예가 되어 그들을 돕는 하수인이 되는 교육만 시킨 거야. 우리 국민들 중 최소한 70%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게 되면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을 거야."
곰소댁은 정치를 잘 모른다. 그저 “높은 사람들이 오죽 잘 알아서 할까?”가 그녀의 소박하고 지극히 단순한 철학이었다. 그래서 정선생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선생의 입을 막고 싶어 안달을 했고, 방문까지 걸어 잠그곤 했다. 그러나 정선생이 죽고 난 후, 그가 남긴 메모들을 보면서 곰소댁은 뭔가 비장하고, 무겁고, 강렬한 힘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좌판 상인들이 불안한 눈빛을 보일 때마다 정선생의 메모에서 느낀 바를 말로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다 쫓겨난당게, 점포 가진 사람들은 보상이라도 받지만, 우리 같은 좌판 장수는 그냥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거여. 약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저놈들에게 영원히 짓밟혀 죽는단 말이여”
“맞아, 전태일이가 왜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죽었겠어?” 좌판 상인 중에서 누군가가 한마디를 했다.
곰소댁은 불현듯 정선생의 메모에서 읽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생각이 났다.
“근디 말여, 우리 정선생이 냉겨두고 간 메모지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든디, 그게 누구여?”
“아니, 아주머니!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진짜 모른단 말씀인 거예요?”
곰소댁은 가슴이 쩌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대단히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정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쭐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제가 봉제공장 다니면서 저녁에 야학 다닐 때, 선생님이 입에 닳도록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제가 조금 이야기를 해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과거 봉제공장에서 천의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꿰매는 오바로크(overlock)를 치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영등포 시장 상인을 만나 결혼을 해서 점포주 대접을 받고 살았지만,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장사도 망하면서 결국 좌판장사의 길로 접어든 여자였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더라고요. 그리고 열여섯 살에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시다', 즉 재봉사 보조로 취직했어요.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의 어린 여성들이었고,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쥐꼬리만큼 낮은 임금, 그리고 몸에 해로운 작업 환경에 시달렸대요.
전태일은 이러한 현실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근로기준법’이라는 법을 혼자 공부하여 노동자들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법이 존재하는데도 현실에서는 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모순에 화가 났답디다. 그래서 1969년에 뜻을 같이하는 동료 재단사들과 '바보회'를 조직해서 노동 실태 조사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언론에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대요. 또한 1970년에는 '삼동친목회'를 결성해 다시 한번 노동 환경 개선을 시도했지만 이 또한 무시당했대요, 그래서 1970년 11월에 22살의 나이로 서울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며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죽었어요”
“워메, 워메, 얼마나 뜨거웠을까잉”
“근디, 월매나 화가 났으면 그런 일까지 저질러 부렀당가?”
”긍게, 우덜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지 한 몸을 불살라부렀다 그 말이여? “
곰소댁은 너무 놀라서 물었다.
”그렇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곰소댁 아줌마가 정확히 짚어 주시네요.“
곰소댁은 비로소 정선생이 남긴 메모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뭔가를 깨달았다는 느낌에 감격스러웠다.
“그려, 우리 그 냥반은 나 같은 사람들이 입 닫고 있으면 저눔들이 우리를 미련 천치로 안다는 말이었구먼 그려” 곰소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가마니로 본단 말이여, 그렁게 저눔들이 우리를 부당허게 대우허먼 우리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단 말이여, 힘을 합치자고! 내 말이 틀렸어?”
“맞어, 맞어” 시장상인들은 손뼉을 치며 합창하듯 말했다.
며칠 후, 시장 상인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곰소댁이 먼저 나섰다. 그리고 정선생의 메모를 보고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적은 쪽지를 슬쩍슬쩍 보며 말했다.
“우덜 좌판상인들은 좌판을 잃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요, 이것은 헌법에 적혀 있는 ‘생존권적 권리”, 즉 줄여서 ’생존권‘이라고 한답디다. 그리고 우덜이 여그서 장사한 지가 10년이 넘었응게, 오랫동안 한 장소에서 영업을 해온 소위 ’관행‘이란 것이 있단 말이요. 그랑게 우덜에게는 ’영업권‘이란 것이 있단 말이 되는 거지라우” “다시 말혀서, 비록 우덜에게 공식적인 계약서는 없다 허더라도, 상인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와 오랜 역사를 근거로 혀서 좌판을 계속 운영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이라우” 또 하나, 시장 현대화 사업이 우덜 같은 상인 전체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단 말이여, 이것은 정당헌 절차를 지키지 않았응게 무효입니다. 법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무효라고 우리 돌아가신 냥반이 수없이 말해줬어라우”
곰소댁은 말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정선생과 살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자기 입에서 이렇게 술술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옳소!, 옳소!”
좌판 상인들은 목이 터지라고 외치며, 곰소댁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는 법이란 것이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집 돌아가신 냥반이 말씀허시기를 법이 가진 본디 목적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약자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었다고 헙디다.”
그때 나덕술이 벌떡 일어나 곰소댁의 말을 비웃듯이 말했다.
“좌판 상인, 즉 노점상들의 생존권 주장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불법행위입니다. 좌판 상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서 우리 점포주들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위치에서 영업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생존권이 더 위협받고 있는 거예요”
“우리 점포주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입니다.”
“점포주들은 엄청난 권리금과 보증금을 내고, 매달 비싼 임대료를 지불합니다. 여기에 각종 세금과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등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사업자 등록까지 마칩니다. 반면, 노점상들은 이러한 비용을 전혀 내지 않거나, 일부 점용료만 내는 경우가 많아 불공정한 경쟁이 발생합니다. 이는 성실하게 법적 의무를 다하는 우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둘째, 시장 질서와 안전 문제입니다.”
“노점상들의 무분별한 영업이 시장의 질서를 파괴하고, 고객의 통행권을 침해하며 안전 문제를 야기합니다. 특히 좁은 시장 통로를 좌판이 차지하면서 고객 동선이 막히고, 화재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해지는 위험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또한, 노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나 상품의 위생 문제도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봅니다.”
“셋째, 기업형 노점의 문제입니다.”
"우리 점포주들은 노점상이 생계가 어려운 빈곤층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주장에 반박하고자 합니다. 상당수의 노점이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노점 자리가 엄청난 돈에 거래되거나, 여러 개의 좌판을 소유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직접 장사하지 않고 고용인을 두어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계형 노점'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므로,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조판상인을 노점상이라고 불렀다.
한쪽 편에서 “옳소”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좌판 상인들의 박수소리보다 작았다.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법 좋아하네. 법이 니들 같은 거지 장사꾼 편 들어줄 줄 아냐? 나라도 못 믿겠는데.” 누군가 좌판 상인들이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좌판 상인들은 심한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곰소댁은 숨을 고르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가만있으면 끝이여라우. 전태일이 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는지,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당게요. 누군가는 싸워야 한다고 했어요. 이제 우리가 해야 헌단 말입니다.”
그 순간 곰소댁은 판자촌 집에서 혼자 기다릴 숙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손아귀에 힘이 실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날 밤, 곰소댁은 숙희를 재우고 혼자 술을 마셨다. 두꺼비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정선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만난 이후, 그녀의 삶은 짧은 행복과 긴 불행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는 정선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사랑했다. 그가 있었기에 그녀의 삶은 잠시나마 빛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김상인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시장 조합의 간부 두 명이 더 있었다.
“다음 달 1일부터 좌판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습니다.”
“강제 철거라니? 지가 뭘 잘못했는디요?”
“시장조합의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게 잘못입니다.”
곰소댁은 분노에 떨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이 시장에 나만 있는 거 아니잖여! 왜 나한테만 이런다요?”
“협조를 안 하는 건 곰소댁뿐입니다.”
그들의 말에 곰소댁은 허탈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웃 상인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동정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도 곰소댁과 같은 처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시장조합의 힘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곰소댁은 갑자기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무인도 같은 외로움을 느꼈다.
“옳소”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좌판 상인들은 곰소댁이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곰소댁은 시장에 나가지 않고 하루를 쉬었다. 학교에 다녀온 숙희가 그런 엄마를 보며 걱정했다.
“엄마, 왜 장사 안 나가?”
“아파서 그려. 쫌만 쉴라고.”
“엄마, 아프지 마, 엄마가 아프면 나도 아플 거야”
숙희의 말에 곰소댁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려, 우리 숙희를 위해 살아야만 혀”
다음 날, 곰소댁은 숙희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좌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곰소댁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숙희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 멀리서 시장 조합의 임원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곰소댁을 보며 비웃었다.
“이거 보라고, 결국 항복했잖아.”
그들의 조롱에 곰소댁은 더욱 비참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김상인의 앞에 섰다.
“내 좌판 돌려주쇼, 나 여그서 장사해야 헝게.”
“안 됩니다. 이미 철거했습니다.”
“철거?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철거해도 다시 만들 거여. 내 인생, 내 딸, 내 삶을 여기서 끝낼 순 없어.”
곰소댁의 눈은 불타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숙희가 있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정선생의 따뜻한 기억이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곰소댁의 투쟁은 영등포시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는 시장조합에 맞서 싸웠다. 매일 아침 시장에 나와 빈 공간에 앉아 시위를 했다. “내 좌판 돌려줘!”, “시장조합은 각성하라!” 그녀의 외침은 시장 상인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그녀의 투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다음에는 열 명이, 그리고 백 명이 넘는 상인들이 곰소댁의 투쟁에 합류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좌판을 정리하고, 시장조합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곰소댁의 투쟁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문 기사와 뉴스에 그녀의 이야기가 실렸다. “영등포시장 곰소댁의 눈물겨운 투쟁”, “가난한 상인의 삶을 짓밟는 시장조합”. 여론은 곰소댁의 편을 들어주었다.
시장조합은 곤란해졌다. 그들은 곰소댁을 회유하려 했다. “곰소댁, 우리가 특별히 상설 점포를 싸게 드릴게요.” 그러나 곰소댁은 거절했다. “나는 돈이 아니라, 여그서 장사할 권리를 원하는 거여.”
그녀의 말은 시장 상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들은 곰소댁의 투쟁에 더욱 힘을 보탰다. 결국 시장조합은 곰소댁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녀의 좌판을 다시 만들어주었고, 그녀가 영등포시장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978년 늦가을, 영등포시장에는 다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곰소댁은 자신의 좌판 위에서 고등어 내장을 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녀의 마음은 따뜻했다. 그녀의 옆에 그림을 그리던 숙희는 복음자리교회에서 학교를 다녀온 후 돌봐주기로 했다. 곰소댁이 목숨처럼 품속에 넣고 다니는 숙희의 그림 속에는 곰소댁과 숙희,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정선생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숙희가 있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정선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와 함께 싸웠던 영등포시장의 상인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들 덕분에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정선생이 그녀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멀리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이 가을이 끝나면, 더욱 단단해진 삶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