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14화 영석이와 예비고사
새벽 5시. 오목교 판자촌은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영석의 방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체감 온도는 훨씬 낮다. 판자촌이 하천 변의 낮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새벽안개가 밤새도록 한강과 안양천 주변에서 밀려드는 습기 덩어리로 변해, 골목 사이사이에 스며들었고, 창문 틈으로 들어온 차가운 강바람 때문에 얇은 합판이나 널빤지에 붙여 놓은 낡은 벽지가 파르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실내와 실외의 기온 차이가 크지 않다 보니 방 안의 공기는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차갑고, 이불 밖으로 나온 영석의 피부는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다. 그때마다 영석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공기 중에는 타다 만 연탄재 냄새와 석유난로를 피울 때 나는 등유 냄새가 섞여 있다. 이것이 차가운 습기와 만나 묵직하고 가라앉은 새벽의 냄새를 만들었다. 이른 새벽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깨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나무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얇은 함석지붕에 서리가 앉아 미끄러지는 소리, 그리고 연탄불을 갈기 위해 ‘탁탁’ 달라붙어 있는 연탄을 떼어내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늘게 가른다. 그리고 아스라이 들리던 “두부 사려!”, “따끈한 두부가 왔습니다!”라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지게를 멘 두부 장수가 걸을 때 나는 지게의 덜컹거리는 소리, 두부를 꺼내기 위해 두부판을 바닥에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가 판자촌의 좁은 골목에 울려 퍼진다.
해가 뜨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오목교 판자촌의 골목길 흙바닥이나 마당에 놓인 양동이, 낡은 장독대 위에는 하얗게 서리가 앉았다. 연탄 연기가 굴뚝 위로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다. 이 연기는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다.
11월 7일, 예비고사가 코앞이다. 영석에게 어제 수아와의 데이트는 꿈만 같다. 남산에서 내려다본 불 꺼진 강남, 그 흙먼지 속에서 수아는 박정희 시대 개발 독재의 명과 암,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아빠와 오빠의 첨예한 갈등을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빠가 빨리 시집가라고 한다”라고 했던 수아의 말은 영석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영석은 수험생 신분, 판자촌의 가난한 재수생. 수아의 세상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거리는 남산에서 바라본 강남만큼이나 멀다. 그러나 이 순간에 그런 모든 생각은 한낱 사치에 불과하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다고 해서 자신과 수아의 사랑이 맺어진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고, 수아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일이다. 겨우 극장에서 손 한번 잡은 일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수아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영석은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실력 편’을 덮고, 송성문의 ‘성문 영어’를 펼쳐 들었다. 김열함의 ‘영어의 왕도’에 대한 2회 독(讀)을 어제 모두 마쳤기 때문에 다시 ‘성문 영어’ 2회 독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예비고사가 끝나면 본고사를 대비하여 최용준의 ‘해법수학’도 다시 한번 공부하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영어 교재를 펼쳤지만, 눈은 수아를 졸라서 받은 사진 한 장에 자꾸 머무른다. 수아의 해맑은 미소가 담긴 사진. ‘공부해야 한다,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를 짓누른다.
그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고 누나가 들어왔다. 누나는 최근 ‘똥물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마음고생이 심한 것으로 보인다. 누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했다. 아마도 영석이가 수험생이라 걱정할까 염려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누나의 얼굴은 굳어 있고 많은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나는 영석의 책상 위에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놓았다.
“잠은 좀 자고 공부하는 거니? 낯빛이 누렇게 떴어. 코앞에 닥친 시험인데, 수아 만나는 게 그리 좋더냐?”
누나가 수아에게서 온 편지를 먼저 발견한 적이 있었다. 누나가 누구냐고 묻기에 영석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 이후, 알게 모르게 누나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누나가 살짝 비아냥대는 투로 말한다고 해서 크게 책망하는 것 같지도 않다.
“걱정하지 마. 나… 열심히 하고 있어. 누나도 회사 일로 너무 신경 쓰지 마.”
누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은 내가 해야지. 너, 수아한테 부끄럽지 않으려고 더 매달리는 거 알아. 이 누나가 너 대학 가면, 당장 이 판자촌 벗어날 거다. 가리봉동 숙모네 ‘벌방’으로 이사 갈 거야. 그러니까 힘내!”
누나의 짧은 말속에는 삶의 무게와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영석은 누나를 절대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리봉동 '벌방'이라니 그게 뭔데?”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있는 ‘벌방’이나 ‘벌집촌’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산업화와 수출 주도 성장을 상징하는 노동자들의 주거 형태를 의미하는 거야. 주로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10대와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 노동자들의 주거지를 말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공단 근로자도 아닌데 왜 거기로 가?”
“여기에서 사는 삶이 하도 힘들고 불편해서 얼마 전 가리봉동 사는 숙부네 집을 찾아갔었어.”
“아니, 내가 모르는 숙부가 계셔?”
“응! 옛날에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 구경을 왔을 때, 아주 먼 친척이 가리봉동에 살고 계시더라. 할아버지께서 그 숙부가 사람들 열 명 정도를 데리고 다니면서 집을 지어 파는 일을 하시는데 상당한 돈을 버셨다고 했어.”
“그래서 이번에 혹시나 우리가 살만한 방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갔었지.”
“그렇구나! 그런데 그 숙부는 우리와 몇 촌간인데?”
“나도 몰라. 여하튼 할아버지께서 8촌은 넘어가는 촌수라고 하셨어.”
“그렇다면 법적으로는 친척이 아닌 거네?”
“그렇지 뭐! 그러나 시골에서는 웬만하면 다 친척이라고 하잖아. 숙부랑 숙모가 할아버지께 꼼짝을 못 하시더라. 우리 할아버지 모두 무서워하잖아.”
“맞아! 우리 할아버지 흰 두루마기 입고 나타나시면 모두 길을 비키고 어려워하셨지.”
“그때, 할아버지께서 숙부한테, “혹시 내 손녀딸이 어려운 경우에 처하면 네가 좀 도와줘야 한다”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이번에 찾아가니 뭐라 하셔?”
“응! 벌집 한 곳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러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어.”
“우선 판잣집이 아니라서 좋더라.”
“그런데 그 방이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어. 그래서 당장 이사를 해야 할 일은 아냐”
나중에 영석이가 알아본 ‘벌방’은 열악한 주거 환경과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벌방’은 기존의 단독 주택이나 다가구 주택을 소유주가 최대한 많은 세입자를 받기 위해 불법적으로 개조하거나 증축하여 만든 밀집 주거 형태라고 한다. 방 하나의 면적은 보통 2~3평(약 6.6㎡~9.9㎡) 남짓한 쪽방인데,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공간에 2~5명의 여공들이 사글세를 감당하기 위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방을 ‘벌집’처럼 촘촘히 쪼갰다고 해서 '벌집촌'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런데 건축 허가 없이 무허가 증축되거나 개조된 경우가 많아, 단열이 거의 되지 않는다. 따라서 겨울에는 매우 춥고, 채광이나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낮에도 노란 백열등을 켜야 한단다. 또한 벽이 얇은 합판 등으로 되어 있어 방음이 전혀 되지 않고, 이웃 방에서 TV 소리나 대화 소리, 심지어 밤늦게 라면을 끓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라는 것이다. 다만 영석이가 누나에게 물어보니 이사 갈 방은 그보다 훨씬 나은 편이라 벽이 벽돌로 되어 있어 방음이 되고 방도 4평 정도 된다고 했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벌방에 사는 여공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농촌에서 상경하여 구로공단의 봉제, 가발, 완구 등 노동 집약적 경공업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장의 노동 환경은 화학 약품 냄새와 먼지로 가득하며, 잔업을 포함해서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라고 한다. 또한 유급휴일, 월차, 생리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하루 12~15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매우 낮아, 여공들은 보통 1년 치 월세를 선불로 내는 사글세를 감당하기 위해 좁은 방을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부엌은 있나?”
“‘벌방’은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부엌이 건물 밖에 있는 경우도 흔한데, 그 집은 방에 작은 부엌이 딸려 있더라”
“화장실은 따로 있어?”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더구나. 수십 가구가 사는 벌집에 화장실이 딱 한 개야, 대문 쪽에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대변 칸이 3개, 그리고 소변 칸이 딱 1개 있더라.”
“엥? 그러면 아침에는 전쟁터겠는데?”
“‘벌방’이 도대체 몇 개인데?”
“26개”
“뭐라고? 그럼 한 방에 5명씩만 잔다고 하더라도 130명이 아침에 쏟아져 나온다는 거 아냐?”
“3교대니까 그보다는 낫겠지. 여기 오목교 판자촌도 모두 공용 화장실이잖니?”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벌방에 여공들이 산다면 우리가 이사 갈 경우, 남자는 나 혼자란 거야?”
“아마 그럴 거야”
“아이고! 내가 숨이 막혀서 살 수 있을까?”
“화장실 가는 일도 큰 문제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기보다 나을 게 뭐야?”
“우선 판잣집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름에 물난리를 겪을 염려가 거의 없다는 것, 방음이 된다는 것 등등 여기보다 훨씬 나아”
“너! 내게 말은 안 하지만 정류장 몇 개 지나서 다시 걸어오잖니?”
영석은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랬어. 그러나 신부님께서 자존감이 높으면 그런 것들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될 거라 해서 당당하게 다니고 있어”
“오늘 아침은 ‘라보때' 할까?”
누나가 말했다.
“'라보때’가 뭐야?”
“응! 우리 회사 언니들은 밥맛 없을 때나 돈이 없을 때 ‘라면 보통 때우기’를 줄여서 ‘라보때’라고 해. 마침 쌀이 떨어졌으니 오늘 아침은 라면으로 보통 때우자”
누나가 애써 명랑하게 말하며 주황색 삼양라면 봉지를 뜯었다.
영석은 아침을 먹고 남산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옆집 곰소댁은 영등포 시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영석을 붙잡았다. 얼굴이 여위고 많이 상해 보였다.
“영석이 총각! 이리 와서, 이거 가지고 가, 공부할라믄 월매나 힘들겄어?”
“내가 아침 일찍 싼 김밥이여!, 돌아가신 우리 집냥반이 내가 싼 김밥을 참 좋아혔는디,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겄네.”
“아이고! 아주머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거 어떻게 은혜를 갚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누나가 뛰어나오며 말했다.
“아따! 뭔 소리를 고로코롬 한당가? 서운하게시리”
“우리가 남이여? 겨우 김밥 한 개 갖고 고로코롬 야그하면 내 입장이 뭐가 된당가?”
“우리 숙희를 친동생마냥 돌봐주는 것만 혀도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겄는디”
영석이는 김밥이 담긴 도시락을 든 채, 감사한 마음에 어찌할 줄 몰라했다.
“네 개 쌌어. 두 개는 점심때 먹고, 두 개는 저녁에 먹으면 될 거여.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응게 상하지는 않을 것이고만, 그리고 단무지도 같이 쌌응게 도서관 식당 아줌마헌티서 따신 물 한 컵만 달라고 혀서 먹어.”
“정말 감사합니다”
정희와 영석은 동시에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 집 냥반처럼 공부만 허다가 병 얻지 말고, 밥 잘 챙겨 묵고. 서울대학교 꼭 붙어야 혀. 그래야 돌아가신 그 냥반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 아니겄어? 영석이는 우리 오목교의 희망이란 말이여!”
영석은 김밥을 가방에 넣으며 곰소댁의 젖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간암으로 세상을 뜬 정선생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판자촌의 유일한 희망인 영석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 나 김밥 다 먹었어.”
숙희가 아직 다 씹지 않은 김밥을 오물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오빠! 잘 다녀와. 나도 곧 학교 갈 거야.”
“그래!, 아주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숙희야 학교 잘 다녀와”
영석은 활기차게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걸어갔다.
남산도서관에 도착하여, 영석은 지정석처럼 항상 앉는 3층 열람실 구석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계획표대로 공부하고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자꾸 틀리던 문제만 골라 왜 틀렸는지를 살피기로 했다. 영석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수아에게서 받은 편지를 다시 한번 꺼내 보고 빙그레 웃었다.
‘수학의 정석’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표지가 손때로 반질반질하다. 영석이가 홍성대 저자의 얼굴이라도 볼 기세로 파고든 그 책에는 영석이가 수도 없이 풀고 또 풀었던 문제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집합’ 단원의 귀퉁이는 이미 찢어져 너덜거린다. 수학이 끝나자. 영석은 '성문종합영어’와 학원 다닐 때 샀던 영어 교재를 펼쳤다.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난해한 문법 설명을 연필로 짚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국어 과목은 영석이가 특히 자신 있어하는 과목이므로 동아출판사의 ‘완전 정복 시리즈’와 교학사의 ‘필승 시리즈’를 빠르게 한번 훑어본 후, 학원사에서 나온 월간 ‘학원’의 학습 시리즈의 주요 과목, 즉, 국어, 영어, 수학, 국사, 일반사회, 그리고 과학 과목인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에서 영석이가 선택한 생물 과목에 대한 학습 콘텐츠를 차례로 공부하기로 했다.
‘학원’의 학습 시리즈 중에서 국어는 현대 문학, 고전, 비문학 등 다양한 지문과 함께 문제 풀이, 핵심 정리 등이 실려 있고, 수학은 새로운 문제 유형과 상세한 풀이 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영어는 독해, 문법, 어휘 등 시험에 필요한 영역을 골고루 다루고 있어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영석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영석이가 특히 좋아하는 '학원'의 핵심 콘텐츠는 ‘월례 학력고사’다. 매달 실제 예비고사와 유사한 형태의 모의고사 문제가 출제되고, 학생들이 이 문제를 풀어 답안을 엽서에 적어 보내면 전국적인 석차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같이 경쟁하며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혼자 공부하는 영석으로서는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학원'의 월례고사는 자신의 실력을 전국 수험생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인 셈이다. 특히 매달 시험을 치르면서 실제 시험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시간 안배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교육과정의 변화나 새로운 출제 경향을 반영한 문제들을 통해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영석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학원’에는 유명 학원 강사나 교사들이 집필하는 과목별 '특강' 코너가 있다. 이 코너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해 주거나, 시험에 자주 나오는 핵심적인 포인트를 짚어 주어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과외를 받을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게다가 ‘학원’이라는 잡지는 단순히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를 넘어 한국 청소년의 교양과 문학적 소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매체로서 꾸준히 학생들의 시, 소설, 수필 등의 창작물을 공모하고,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우수작을 발표하고 있다. 게다가 영석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편으로 응모한 시가 당선된 적이 있어 더욱 애착이 가는 잡지다. 영석은 ‘월간 학원’을 통해 치른 전국 모의고사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마치 성적표를 받아 드는 학생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예상 등급과 합격 가능 대학을 보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기 때문이다.
영석의 공부 방식은 우직하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폐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다. 오전과 오후 5시까지는 국어, 수학, 그리고 영어를 공부하고. 저녁 시간에는 기타 과목들을 번갈아 가며 공부한다. 깜빡 잠이 들면 책상 위에 눌린 볼 자국을 매만지며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하나둘 불을 밝힐 때쯤이면, 영석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향해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다.
영석은 9월 15일부터 9월 26알까지 12일간 이루어지는 1979학년도 대학 입학 예비고사의 지원 신청기일 내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10월 말에 수험표를 배부받고 마포고등학교에서 11월 7일에 예비고사를 치르기로 하였으며, 그 전날인 11월 6일의 예비 소집일에 시험실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1월 7일에 대학 예비고사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