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33화 흩어지는 이름들, 길 잃은 영혼들 (1)

5월 19일 새벽, 도솔산의 안개는 여느 때보다 깊고 무거웠다. 동운암 뒤편 숲길, 고요를 깨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나타났다. 수십 년간 고창의 험한 산길을 타며 화장품 가방을 메고 다녔던 정희의 어머니, ‘아모레 아줌마’였다. 태허 스님과 동운암 노스님의 기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그녀의 손에는 해진 보자기 뭉치가 들려 있었다.

“총각이 우리 정희가 말한 그 사람인가 보네.”

여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민우는 정희의 눈매를 꼭 닮은 여인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여인은 말없이 민우의 거친 손을 잡았다.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바닥에서 정희가 자라온 세월의 무게가 전해졌다.

“정희 엄마, 이 총각이 오늘 광주로 가겠다고 하네요.”

노스님의 말에 여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광주는 왜? 거기가 고향이간디?”

“어머님, 제 고향은 충청남도입니다.”

“그런데 왜 광주에 간다고 그러능가?”

정희 어머니, 아니 일반 국민 대다수는 광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정희 엄마는 고창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듣는 귀가 있다.

“충청도 총각이 광주엔 왜 간다고 그려? 내가 소문으로 들었는디 시방 거그서 난리가 났다던디? TV랑 라디오에서 온통 북한 놈들이 내려와서 난리를 피운다니 어쩌니 하고 난리여. 무서운 세상인디 거그를 왜 간다는 거여?”

정희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투에는 대다수 국민이 가진 막연한 공포와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민우는 광주를 제외한 전국의 시계가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광주를 봉쇄하기 위해 완벽한 ‘정보 차단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민우는 신군부가 언론 검열을 통해 모든 신문사와 방송국에 시청(검열단) 요원들을 배치했다고 들었다. 따라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는 사진이나 기사는 단 한 줄도 나갈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정작 정확한 기사가 들어갈 자리에는 ‘불순분자와 고정간첩에 의한 소요 사태’라는 정부의 발표문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군부는 통신과 교통의 단절을 통해 광주와 다른 지역을 철저히 분리해서 광주는 빨갱이들의 도시라는 설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광주로 들어가는 모든 시외전화는 차단되었고, 광주역으로 향하는 열차와 버스도 운행을 멈췄다. 광주는 한반도 안의 거대한 외딴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옆 동네에서 이웃이 죽어 나가도 ‘유언비어’라는 경고 문구에 눈과 귀를 가려야만 하는 것이다.

민우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본 뉴스 속 ‘폭도’들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학생들이고,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엔 이곳 산사의 공기가 너무도 고요했다.

“어머님, 언론이 말하는 것과 진실은 다릅니다. 제가 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에 제 동지들이 있고, 제가 지켜야 할 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우의 단호한 대답에 정희 어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말없이 보자기를 풀어 따뜻한 쑥떡과 낡은 무명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 젊은이가 가려는 길이 옳은 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죽음을 각오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희가 서울서 참한 사람 만났다고 편지에 적었던디, 혹시 연락되거든 에미 걱정은 말고 몸 건강히 잘 있으라고, 꼭 전해주시게. 그리고 총각도 몸 성히 꼭 살아서 다시 보드라고. 알았는가? 나도 정희랑 연락되면 총각 만났다는 이야기를 헐팅게.”

민우는 정희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것을 보았다.

민우는 정희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어머니, 제가 지금 정희 씨와 연락을 취할 입장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살아서 다시 정희 씨를 만나거든 어머님의 당부 말씀을 꼭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도 정희씨에게 제가 반드시 정희 씨 곁으로 무사히 돌아가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꼭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서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라고 하더라고 전해주세요.”

민우는 수건 밑에 정희에게 남기는 짧은 쪽지를 숨겨 여인에게 건넸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지만, 민우는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알았네. 편지를 써도 되고, 우리 동네 이장집에 전화가 한 대 있응게 거그서 우리 딸 직장으로 전화허면 되는 겨여. 내가 그말 꼭 전할팅게 걱정말고 총각 몸이나 잘 챙기시게.”

광주로 간다는 것은 제 발로 불지옥에 뛰어들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노스님은 민우를 데리고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수행자들의 행각로(行脚路)로 안내했다. 스님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지도를 그리며 광주 진입의 사선(死線)을 짚어주었다.

“지금 광주로 통하는 큰길은 공수부대가 쥐 잡듯 뒤지고 있다네. 자네가 광주로 들어가려면 산의 품을 빌려야 할 것이여. 그리고 장성갈재를 넘는 순간부터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니 부디 몸조심 하게.”

“그리고 광주 외곽의 봉쇄망은 잔인할 만큼 촘촘하다는 말을 들었어. 계엄군이 주요 국도와 고속도로를 차단한 것도 모자라, 인근 야산의 주요 길목마다 매복조를 배치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민우가 선택한 경로는 고창에서 방장산(方丈山) 줄기를 타고 장성군 북이면으로 숨어드는 험로였다.

민우는 낮에는 빽빽한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별빛에 의지해 백양사 뒷길(사자봉 인근)을 넘었다. 5월 20일, 장성군 남면과 광주 본촌동 경계에 다다랐을 때 민우는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계엄군 헬기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산등성이를 훑고 있었다. 민우는 흙탕물에 몸을 굴려 위장하고, 군인들의 담배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올 때마다 썩은 나무 밑동인 것처럼 숨을 죽였다.

민우는 광주 북쪽 관문인 산동교 인근 하천부지를 통해 잠입을 시도했다. 영산강 줄기를 타고 수풀 사이를 기어가는 동안, 시내 쪽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함민우, 이제 네가 돌아갈 길은 없다. 너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으니 이제 네 운명에 너를 맡겨봐.”

민우는 품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태극기를 한 번 더 만져보았다. 그는 어둠을 뚫고 불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금남로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한편 명륜동의 홍성집에서 영석은 며칠 새에 홀쭉해진 얼굴과 퀭한 눈으로 태종의 앞에 앉아 있었다. 식어버린 두부김치를 앞에 두고 영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종아, 수아가 떠났어. 아무 말도 없이 그날 밤 택시 뒷모습이 마지막이었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너무 무력해서, 그 애를 지켜주지 못해서 그런 걸까?”

영석의 질문은 허공을 맴돌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태종은 잔에 술을 가득 채워 영석에게 밀어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담배 연기 너머로 태종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영석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수아 잘못도 아니야. 지금 우리가 겪는 건 개인의 이별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강제 이별 같은 거야. 수혁이 형님의 죽음만 아니었어도 수아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을 거야.”

태종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의 어두운 거리를 응시했다.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평소라면 학생들이 토하는 모습도 보이고, 비틀거려야 할 골목길이 생기를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조언 하나 하마. 지금 수아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지 마라. 네가 수아를 찾으려 할수록, 수아는 더 깊은 수렁으로 숨어들 거다. 수아는 지금 너라는 고결한 거울 앞에 서는 게 죽기보다 고통스러울 거야. 그 애가 선택한 건 배신이 아니라, 너를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절박한 도망일지도 몰라.”

태종은 빈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영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영석의 눈에는 수아를 향한 그리움을 넘어선, 집착에 가까운 열패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영석아,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참 묘한 거다. 그건 마치 ‘그림자 밟기’ 같아서, 네가 한 발짝 다가가면 상대는 본능적으로 그만큼 물러나게 되어 있어. 네가 수아를 찾겠다고 길길이 날뛰며 집착할수록, 그 애 눈에는 네가 사랑꾼이 아니라 자기를 옥죄는 감시자로 보일 거란 말이다.”

태종은 담배를 새로 한 대 피워 물었다. 맵싸한 연기가 영석의 얼굴을 휘감았다.

“사람 마음에는 용량이란 게 있어. 수아는 지금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짐을 지고 도망치는 중인데, 네가 거기다 대고 ‘내 사랑을 받아달라’, ‘내 진심은 이거다.’, ‘지켜주겠다’ 하며 매달리면 그게 사랑이겠냐? 그건 폭력이야. 네가 고결하게 굴수록 수아는 자기가 더 더럽게 느껴질 거고, 결국 네가 꼴도 보기 싫어질 거다. 인간은 원래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사는데, 자기 바닥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봐. 그런 사람 옆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법이거든.”

영석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태종의 말은 영석이 애써 외면해 온 진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건 수아를 찾는 게 아니라, 네 자리를 지키는 거야. 수아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수아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땅을 만드는 거. 네가 지금처럼 술 퍼마시며 수아 이름만 부르고 있으면, 나중에 수아를 다시 만난들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그땐 정말 수아가 널 경멸하게 될지도 몰라.”

태종은 영석의 어깨를 툭 쳤다.

“사랑에도 예의가 필요해. 상대가 등을 돌렸을 때는 그 뒷모습을 봐주는 게 예의다. 그 애가 제 발로 진흙탕을 건너올 때까지, 너는 네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더럽히지 말고 버텨. 그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다.”


영석은 태종이 남긴 잔혹한 조언을 씹어 삼켰다. 고결한 거울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욕심이 오히려 수아를 숨 막히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 위로, 명륜동 골목길을 훑고 지나가는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영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냥 이렇게 넋 놓고 기다려야만 한다는 거니?”

태종이 영석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 손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아니, 기다리지 마라. 대신 너를 바꿔라. 영석아, 사랑은 진공상태에서 하는 게 아니야. 세상이 불타고 있는데 우리 둘만 깨끗한 방에서 사랑을 나눌 수는 없는 법이야. 네가 수아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수아가 겪고 있는 저 진흙탕 속으로 너도 발을 담가야 해. 네 고결한 도덕심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이 비극의 한복판으로 들어오란 말이다.”

태종의 말은 비수처럼 영석의 가슴을 찔렀다.

“나 휴학하는 건 어떨까? 이 상태로 공부한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렇다면 조만간 너에게도 영장이 날아오겠지. 너는 이제 이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될 거다. 그때 기억해라. 수아가 왜 떠나야만 했는지. 수아가 탄 택시를 쫓아가지 못한 건 네 다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가 네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라는 걸. 그 분노를 잊지 마라. 그 분노가 너를 버티게 할 거다.”

태종은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영석아, 슬퍼할 시간도 사치다. 수아를 정말 사랑한다면, 수아가 돌아올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수아가 다시는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네 인생을 걸어라. 그게 네가 수아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태종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영석은 태종이 남긴 ‘분노’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러나 자신이 수아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자신에게서 수아를 강탈해갔다는 태종이의 말이 가슴에 잘 와닿지 않았다. 또한 사랑을 잃은 그에게 태종이의 조언은 신기루를 쫓는 것만 같았다.

'내가 사랑을 잃었는데 그걸 사회참여로 해결하라고?'

영석은 오히려 자신이 수아의 진심을 몰라준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수아가 만나주기만 한다면 무릎꿇고 사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 이눔아! 네 친구놈은 가버렸는디, 네눔은 뭔 청승을 떨고 있는 거여? 그만 마시고 얼릉 가.”

홍성집 할머니가 꽥 소리를 지르자, 영석은 술값을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정허정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걸어갔다.


5월의 서늘한 밤공기를 가르며 오목교 집 대문을 밀고 들어선 영석의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마당 한쪽 구석에는 짐을 정리하려는지 낡은 사과 상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정희는 툇마루에 앉아 곰소댁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영석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저녁은 먹고 댕기는 거여? 젊은 사람이 굶고 댕기면 몸이 곧 축낭게 조심혀.”

곰소댁의 다정한 말투에 영석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예를 표했다.

“이제 오니? 술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얘.”

정희의 목소리에는 평소 같은 타박 대신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정희는 영석을 방으로 불러 앉히더니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영석아, 우리 이사 가야 해. 가리봉동에 있는 먼 친척 아저씨네 벌방 있지? 거기 관리해 주는 조건으로 우리 남매가 방 한 칸 쓰기로 했어. 열흘, 아니 늦어도 2주일 안에는 짐 싸서 옮겨야 한다.”


영석은 멍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동네라지만 가리봉동, 구로공단 여공들이 다닥다닥 붙어 사는 벌방 역시 비좁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고, 어떻든 정이 든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한편으로 서운했다. 그리고 여기를 떠나면 수아와 영영 이별이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기도 했다.

“곰소댁 아주머니네도 신길동 최 사장님 댁으로 들어가시기로 했다더라. 민우 씨가 떠난 후 비어 있으니까, 아주머니가 들어가서 안살림 봐주기로 하셨다나 봐.”

영석은 헛웃음을 삼켰다. 민우가 머물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서류를 태우던 그 신길동 방에는 이제 곰소댁의 보따리가 풀릴 것이고, 자신은 수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가리봉동의 눅눅한 단칸방으로 가야한다. 사랑도, 사람도, 머물던 공간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제자리를 이탈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거기는 공단이잖아?”

“그래. 나도 이제 일동방직 그만두고 그 근처 공장으로 옮겨보려고 해.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닐 거야.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 민우 씨가 그런 말 자주 했었잖니. 노동자도 알아야 세상을 바꾼다고.”

정희는 말끝을 흐리며 남쪽 하늘을 한 번 바라보았다. 민우가 사라진 남쪽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에 가려 소식이 없었다.

“오늘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민우씨가 선운사에 있으면서 엄마를 만났고, 광주로 간다고 했다더라. 내가 듣기로는 광주가 지금 난리라는데 그 사람 성격상 선운사에서 몸을 피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잖니?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정희의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본 민우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영석아, 수아 일은 안타깝지만, 우리 이제 정말 살아남는 것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야. 어서 짐 정리 좀 도와라. 가난한 살림인데, 버릴 것은 태산이다.”

정희의 단호한 말에 영석은 고개를 숙였다. 텅 빈 마당에 비치는 흐릿한 전등 빛이 꼭 자신의 처지 같았다. 영석은 방 한구석에 던져둔 가방 속에서 법서를 만져보았다.


오목교 집의 정적이 깨진 것은 골목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경쾌한 발걸음 소리 때문이었다. 어느덧 열두 살, 제법 소녀 티가 나기 시작한 숙희가 단숨에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숙희의 손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듯한 알록달록한 공기알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언니! 오빠! 나 왔어!”

숙희는 마당에 쌓인 사과 상자들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석과 정희의 어두운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숙희는 툇마루 한쪽 끝에 털썩 걸터앉아 두발을 모아 흔들며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언니네도 진짜 이사 가나 보네? 우리도 드디어 신길동으로 이사 간다! 아빠가 그랬는데, 이제는 비 새는 천장 안 봐도 된대. 거기는 진짜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마당도 지금 여기보다 훨씬 넓대. 나 이제 내 방도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숙희의 얼굴엔 그늘 한 점 없는 설렘이 가득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신길동 단독주택은 가난의 때를 벗어던질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다. 하지만 조잘대던 숙희의 입술이 이내 삐죽 나왔다. 정희와 영석의 짐 보따리를 번갈아 보더니 코를 훌쩍였다.

“그런데 이제 언니, 오빠랑은 헤어지는 거야? 신길동 가면 언니가 해주는 콩나물국도 못 먹고, 영석 오빠한테 숙제 물어보러 오지도 못하잖아. 나 오빠랑 언니랑 헤어지는 건 진짜 싫은데. 언니, 우리 집은 진짜 크다니까? 그냥 우리 집으로 다 같이 가면 안 돼?”


숙희는 영석의 소매를 붙잡고 흔들었다. 열두 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었다. 숙희의 서운함 섞인 투정에 정희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숙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정희가 알기에 최사장네 신길동 집도 숙희가 말하는 것처럼 큰집은 아니지만, 이곳 판잣집에 비하면 대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숙희야, 신길동이랑 가리봉동은 그리 멀지 않아. 언니가 나중에 맛있는 거 싸 들고 숙희네 집으로 놀러 갈게. 거기 가서 숙희 공부 잘하나 감시도 하고.”

“진짜지? 꼭 와야 해? 오빠도 와야 해! 오빠는 대학생이니까 나중에 내 영어 숙제 꼭 봐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영석은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먼 산을 보았고, 정희는 숙희의 손을 꼭 쥐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자랑과 서운함이 섞인 목소리는 습한 밤공기 속에 흩어졌고, 영석은 이 낡은 판잣집에서의 며칠 남지 않은 밤이 숙희의 조잘거림 덕분에 그나마 조금 덜 쓸쓸하게 느껴졌다.

숙희가 폭풍처럼 쏟아낸 작별 인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간 뒤, 마당에는 다시금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밤이 깊어갈 무렵, 곰소댁이 큼지막한 쟁반을 들고 영석과 정희의 방으로 들어섰다. 쟁반 위에는 갓 삶아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와 탱글탱글한 오징어 숙회, 그리고 소주 세 병이 놓여있었다.

“이사 준비하느라 고생들 인디, 이 아지매랑 술 한잔들 해야지 않겄어? 짐 싸는 사람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법이여.”

곰소댁은 좁은 방 한구석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영석과 정희에게 잔을 건넸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정희도 오늘만큼은 말없이 잔을 받았다. 맵싸한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곰소댁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참, 내가 아까 시장에서 들은 이야긴디 말이여. 그 미스리 있잖어. 결국 잡혔다드만.”

순대를 집으려던 영석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잡혔다고요? 어디서요?”

“고향인 서천 근처에서 숨어 지내다가 경찰들한테 덜미가 잡혔디야. 곗돈 떼인 시장 상인들이 독이 올라서 끝까지 뒤를 캤나 보드라고. 시방 영등포 경찰서로 압송되어서 조사받고 있다는디, 상황이 아주 안 좋은 모양이여.”

곰소댁은 목소리를 낮추며 자기 집쪽을 살피고는 속삭이듯 말을 이어갔다.

“최 사장은 아직 몰라. 그 냥반, 요즘 정신이 반쯤 나가서 숙희만 보고 사시는디, 미스리 소식 알면 또 속 뒤집어질까 봐 내가 아무 말도 안혔어. 근디 들리는 소문에,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단순 사기만으로 안 끝날 수도 있다는디. ‘정화’니 뭐니 해서 어디 무서운 데로 보낸다는 말도 돌고.”

정희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탐욕과 허영의 끝은 결국 차가운 철창과 이름 모를 압송차였다.

“인생 참 덧없네요, 아주머니. 그 여자가 착한 사람들 사람 피눈물 흘리게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네요.”

“그렁게 말이여. 죄짓고는 못 사는 법이여, 그것이 정상적인 시상이고.”


곰소댁은 남은 소주를 털어 넣으며 영석과 정희의 손을 번갈아 잡았다.

“가리봉동으로 이사 가더라도 기죽지 말고 살어. 그라고 절대 나랑 연락 끊지 말고 살어. 시상이 아무리 뒤숭숭해도 사람은 사람의 정으로 사는 벱이여. 신길동 최 사장 댁에 자리 잡으면 내가 맛난 거 맹글어가지고 자주 찾아갈팅게.”

그날 밤, 세 사람은 차가운 소주와 함께 오목교 집에서의 마지막 회포를 풀었다. 누군가는 광주의 사선으로, 누군가는 좀 더 나은 집으로, 그리고 벌방으로, 또 누군가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흩어지는 1980년 5월의 밤이었다. 각자의 이름은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거대한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은 영혼들이었다. 영석은 내일 학교에 가서 휴학계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곰소댁이 건넨 소주가 서너 잔 들어갔지만, 영석에게는 그 독한 술기운이 마치 맹물처럼 밍밍하게만 느껴졌다. 곰소댁이 늘어놓는 미스리의 비참한 말로나 정희의 비장한 각오도 영석의 귓가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웅웅거리며 겉돌 뿐이었다.

영석은 잔을 내려놓고 무의식적으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수아가 탄 택시의 문손잡이를 놓치던 그 밤의 서늘한 감촉이 여전히 손끝에 화인처럼 남아 있었다. 술을 마시면 잊힐 줄 알았고, 몸이 달아오르면 그 차가운 이별의 감각도 녹아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오히려 머릿속은 날카롭게 각성하여 수아의 마지막 눈빛을 더 선명하게 그려냈다.

‘태종이는 시대가 강탈해갔다고 했지만, 아니야. 내가 수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거야.’


영석은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소주를 들이부어도 그 구멍은 메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찬바람만 윙윙 소리를 내며 드나들었다. 수아가 떠난 밤 이후, 영석의 시간은 그 자리에 박제되어 있었다. 아무리 취하려 해도 정신은 비겁할 정도로 맑았고, 그 맑은 정신은 끊임없이 영석을 자책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영석아, 왜 잔만 만지고 있어? 안주 좀 먹어.”

정희가 걱정스레 오징어 한 점을 밀어주었지만, 영석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릴 기운조차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영석에게 필요한 것은 알코올의 망각이 아니었다. 수아가 택시 뒷좌석에서 흘렸을 눈물의 의미를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술기운이 오를수록 슬픔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밀해졌다. 수아의 샴푸 냄새, 이태원을, 남산길을, 종로거리를, 쌍문동을, 명륜동을 함께 걷던 발소리, 그리고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켰던 수아의 수많은 말들이 술잔 안에서 일렁였다. 영석은 이 아픔이 소주 몇 병으로 털어낼 수 있는 가벼운 통증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앓아야 할 고질병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곰소댁이 삶아온 순대의 기름진 냄새와 소주의 들척지근한 향이 섞인 방안보다, 비릿한 강물 냄새가 나는 오목교의 밤공기가 차라리 숨쉬기 편했다. 영석은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수아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정말 딱 한 번만이라도’

영석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너진 영혼에게 술은 위로가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잔인한 거울일 뿐이었다.

이 소설은 35회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오목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