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메, 찬서리 맞고 해풍에 몸뚱이 오그라들며
은빛 비늘이 가을빛에 바래갖고 무광의 동전처럼
변해가는 저 풀치떼 좀 보소.
볏짚에 줄줄이 엮여 제 몸의 물기 다 내주고
포도시 그 줄 한가닥에 간당간당 매달려
허벌나게 매운 세월 견뎌낸 진심인 것이여.
그것도 소금기만 남어
썩지 않는 마음이란 말이시.
오늘은 엄니가 무 한토막 숭덩숭덩 썰어 넣고,
까나리 액젓도 쪼까, 꼬창도 쪼까 풀어넣어
시뻘건 아궁이 불로 지져부렀는 갑다.
내 콧구녕은
십리밖에서도 저놈의 풀치조림 냄새는 알아맞혀 분당게.
기가 맥히제.
"야야, 아따 요놈이 참 게미지다잉, 언능 오니라."
젓가락 하나로 살점 하나 떼어 물면
"허미, 어째 요로코롬 꼬숩당가"
"간이 딱 맞어갖고 섯바닥 끝이 얼큰허니 개운한 것이, 참말로 오져부네, 엄니.
밥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능가"
곰삭은 양념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탁'허고 내 입천장을 때림시롱
아조 정신을 못 채리게 돼야 불제.
뼈째 씹으면 눅진하고 고소한 그 맛.
인생도 저만치 말라비틀어져 세월에 삭고 삭어야
비로소 속살이 채워지는 것 아니겄는가.
서러운 눈물바람 다 마르고 나면
세월의 단맛이 옹골지게 맺혀
뼈마디 사이로 게미진 웃음 고이는
저 전라도 곰소항의 저녁 밥상.
국어학적으로 '풀치'는 '풀'이라는 명사와 물고기를 나타내는 접미적 성격의 '-치'가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풀' (Grass): 어린 갈치의 몸 모양이 가늘고 길며, 말려놓았을 때의 빳빳한 질감이 마치 '풀잎'이나 '풀줄기'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치' (Suffix for fish): 우리말에서 물고기를 나타내는 고유어 접미사입니다. 예: 멸치, 꽁치, 가물치, 넙치, 갈치
재미있는 점은, 갈치(칼 모양의 물고기)의 새끼를 다시 '풀 모양의 물고기'라는 뜻의 풀치로 명명했다는 점입니다. '칼'이 작아져 '풀잎'이 된 셈이니, 언어학적으로도 강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의 전이가 일어난 단어입니다. 표준어 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으나, '풀치'는 전라도 서해안(부안 곰소, 목포 등)에서 훨씬 더 생명력이 강한 활어(活語)로 살아남았습니다.
한 달 전이었나 봅니다. 자양동에 있는 '팔당숯불갈비'라는 식당에서 음식을 드시던 아주머니 한분이 풀치를 보고 자기 친구에게 아주 친절하게 '장어 말린 것'이라 설명해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격하게 알려주고 싶었으나 오지랖이 넓다 할까 봐 간신히 참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