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1화 함지박 속 비린내(2)


영석은 ‘네’하고 달려 나갔다. 평상에 앉은 이웃 사내는 “이리 와 앉아봐”라고 하는데 사뭇 명령조였다. 쭈뼛거리던 영석은 평상 한끝에 살짝 엉덩이만 걸친 채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보아하니 자네는 학생인 것 같은데, 어느 대학에 다니나?” 영석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흠칫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까 싶어 버스 속에서처럼 “어서 도망가야 할 텐데 이를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종종걸음을 쳤다. 재수생, 그것도 돈이 없어 언제 학원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가난한 재수생이었으니 그놈의 자존심이 또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고 “그러면 앞으로 이 사내를 어떻게 피해 다니지?” 하는 고민을 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수하고 있습니다” 영석은 모기가 내는 소리처럼 웅얼거렸다.

“아 그래? 나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왔어” 사내는 영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제길 할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영석의 입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 아 그러세요, 정말 좋은 대학을 나오셨네요”

“어느 학원에 다니고 있나? 이 동네에서는 자네가 나 다음으로 고학력자일 걸세”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중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15%나 될까?” “이 동네 남자들은 대부분 막노동을 하고 여자들은 대부분 공장에 다닐 걸세” 사내는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영석은 조금은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는 듯해서 사내를 다시 힐끗 쳐다보았다. 눈빛은 여전히 불을 뿜는 듯하지만, 낯빛은 매우 창백했다. 그는 한쪽 손에 신문쪼가리를 쥐고 가끔 기침할 때 나오는 가래를 닦는 듯했다.

“ 내 아내는 영등포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지, 그리고 우리 딸은 학교 갔다 와서 지금 방에서 놀고 있어” 사내는 또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영석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니 연세대 나온 사람이 왜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생선 장수 아줌마하고 산다는 거지” 직업에 귀천이 없고 생선 장수 아줌마가 명문대 출신하고 살지 말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영석의 마음속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혹시 이분도 폐결핵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고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앓은 경험이 있는 영석은 사내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갑자기 꺼림칙해져 사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평상에서 걸친 엉덩이를 뒤로 살짝 뺐다.

“자네는 이 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내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영석은 오늘도 시내에서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맡아 골이 띵했는데 무슨 시험에나 걸린 듯하여 어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안양천이라도 걷고 싶었다. 게다가 현 시국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재수생 신분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크게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고, 한껏 움츠러드는데 내가 왜 이런 대답까지 해야 하는가 싶어 살짝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영석은 다시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아니 자네는 이놈의 독재정권에 분노가 일지 않는단 말인가?” 사내는 아주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추궁하듯이 다시 물었다.

영석이 선뜻 대답을 못하자 사내는 다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 이 죽일 놈의 세상에 대항해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술이나 퍼 마시며 기타 들고 강촌에 가서 띵까띵까나 하고 있으니 어디 될 법한 일인가?” 영석은 심한 꾸지람을 듣는 듯하고 열등감이 치밀어 올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서 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매미는 자지러지게 울고,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땀까지 삐질삐질 나오니 죽을 지경이었다.

“자네 말이야 프란츠 카프카를 아는가?” 갈수록 태산이었다.

“‘변신” 독일어로 디 페어 반들룽, 즉 Die Verwandlung이라고 하지 “ 그의 독일어 발음은 유창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깨나 했고 독일어를 배웠으며, 국어선생과 독일어 선생이 수업 시간에 읽어 보라고 권해서 읽어 본 적이 있기에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석은 자리를 뜨는 일이 우선이다 싶어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카프카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아야 “ 사내는 자조하듯 지껄였다.

세상에 이 동네에서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할까 싶었지만 혹시 자신도 모르게 입이 터질까 싶어 입술을 꽈 깨물었다.

”아이고 더워 미치겠네, 썩을 헐 놈의 날씨가 비라도 좀 확 뿌리지 “

가슴이 엄청나게 크고 건장한 체격의 아줌마가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얼굴의 땀을 우악스럽게 훔치며 들어와 평상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함지박과 몸에서 나는 비린내가 영석의 콧속을 훅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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