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한 적 없는 배려

내가 프렌즈에 빠지게 된 이유- 시즌2 Ep5

by 말랑작가

우리 사회에 배려는 아주 기본적인 소양이다. 배려란, 타인을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든 배려는 선하다고 볼 수 있을까?


위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 준 에피소드는 프렌즈 주인공들의 경제력 차이로 인해 시작된다. 이 에피소드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배경을 설명하자면 프렌즈의 6명의 친구들은 '죽마고우'이다. 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함께 보내고,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다 같이 n분의 1을 하여 생일 선물 또는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챈들러와 로스 그리고 모니카는 벌이가 좋고, 피비, 조이와 레이첼은 상대적으로 벌이가 좋지 않다는 부분이다. 아까 말했듯이, 경제력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인 거다.


고연봉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챈들러는 친구들을 대표해서 로스의 생일선물을 준비하였고 모두에게 62달러씩 내야 한다고 말한다. 62달러는 현재 원화로 약 8만 원 정도이지만 당시 2000년도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정말 큰 금액이다. 피비와 조이가 조심스럽게 비싸다는 의견을 돌려 말하자 챈들러는 "조금 비싼 건 알지만, 로스 생일이잖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니 달리 반박하기도 어렵기에 모두들 수긍했다.


조금 뒤 챈들러가 자리를 비우자 피비, 조이와 레이첼만이 한 공간에 남아 허심탄회하게 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들은 매번 어떠한 '명분'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근사한 이곳저곳을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하기도 애매하다고 말한다.


결국 용기를 내어 조이는 솔직하게 우리는 너네만큼 돈을 못 벌어서 이런 일을 매번 챙기기 힘들다고 모두에게 말했고 일이 잘 해결되는 듯했다. 그런데 돈을 잘 버는 세 친구 모니카, 챈들러 그리고 로스는 방향을 잘못 잡아도 단단히 잘못 잡아버렸다. 단순히 '돈이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나머지 친구들이 내야 할 돈을 대신 지불해 주었고, 이 행동은 마치 불우이웃 돕기 자선활동 마냥 보여 조이, 피비 그리고 레이첼은 자존심이 상해버리고 만다. 이 일 이후로 6명의 죽마고우는 3대 3으로 나뉘어 서로 대판 싸우고 얼굴도 보지 않았다. 이때의 상황을 간단하게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Chandler : 얘들아 후티 앤 더 블로우피쉬 공연 티켓 여섯 장이야!

Monica : 우리가 돈 내는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Pheobe :..... 그래,,,,, 고맙다

Ross : 반응이 왜 그래?

Joy : 생각해 준 건 고맙지만, 뭔가 불우이웃 돕기 같이 느껴져

Ross : 우리는 좋은 뜻으로 준비한 거야

Rachel : 로스, 너의 좋은 뜻이 우리를 작아지게 만들어

Ross : 이해가 안 돼,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거야?

Chandler : 그리고 너네가 작아지는 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너네가 그냥 그렇게 느낄 뿐인 거지

Joy : 하,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거다?

Pheobe : 나는 기분이 별로라 콘서트 안 갈래

Rachel & Joy : 나도 안 가



그런데 여기서 참 슬픈 점은 돈이 많은 친구들은 결국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며 굉장히 재미있고 알차게 시간을 보낸 반면, 돈이 적은 친구들은 집에 누워서 재미없게 시간을 때웠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돈이 가져다주는 삶의 질의 차이가 이 장면에서 유독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두 그룹으로 쪼개져 버린 프렌즈 멤버들이 영원히 틀어질 위기에 놓인 순간, 갑작스레 모니카가 직장에서 잘렸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서, 돈 문제로 유발됐던 신경전이 잦아들고 다시 모두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듯한 느낌으로 에피소드가 끝이 났다. 마치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경제력으로 인한 갈등은 언제나 진행 중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듯했다.


나의 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유로도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석번호가 붙어있어서, 자리가 바로 옆이라서, 집이 가까워서 등등 정말 단순했다. 그중 정말 오래 남는 친구들은 성격이 잘 맞아야 하는 등의 조금 더 복잡한 이유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처럼 늘 단순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차 나이가 들면서 아주 오래된 친구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화하며 더 이상 친구로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도 참 많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에피소드의 주제인 '경제력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아직 이십 대 후반의 나이라 경제력 차이가 가져오는 관계의 변화를 체감해 본 적은 없지만, 프렌즈의 한 에피소드를 보며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로스와 챈들러 그리고 모니카는 어떻게 보면 기꺼이 친구들을 위해서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마음은 요구한 적도 필요한 적도 없는 배려심이었다. 돈이라는 건 정말로 민감한 문제라 친구 사이 심지어는 가족사이에서도 가진 것이 많다한들 쉽게 베풀면 안 될 것이며, 가진 게 없다한들 받기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배려를 하기에 앞서 늘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고, 내가 베풀어도 되는 호의인지에 대해서도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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