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옛 모습
2021년 퇴직을 결심한 이후, 나는 주변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습작들, 그리고 쓸모없는 문구류나 기념품, 장식품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저 붙잡고 있어 봤자 죽을 때 짐이 될 것이고,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흔히들 말하는 미니멀 라이프, 혹은‘버리고 비우기'의 실천이라 포장했지만, 아직도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다.
1980년, 고교 졸업 직후부터 써온 일기장 노트가 이제 39권째에 이르렀다. 대부분 대학노트 크기였고, 한 권당 보통 200~300쪽에 달해 그 분량이 꽤 방대했다. 주로 글로 채워져 있으나 그림, 스케치도 꽤 된다. 그중 스케치 부분은 오래전 따로 뜯어내 보관해 두었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끄적였던 스케치들은 대학 복학 후 2학년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하기도 했었다.
반백 년 가까이 내 인생의 일부였던 그 노트들은 매우 소중하고 은밀한 기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감히 그것들도 버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하나하나 꼼꼼히 파쇄하며 다시 읽게 된 과거의 일기들은 때때로 가슴을 울컥하게 했고, 나이 든 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
결국 처음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깔끔하게 없애지 못하고, 최근까지도 한두 권이 남아 있었다. 남은 몇 권은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심경을 간략히 기록하여 온라인 한글 파일로 보관하기로 했다.
이제 거의 모든 노트를 버렸고, 오늘 마지막으로 남은 ‘그림과 나 17’권을 한글 파일, A4 한 장 분량으로 기록했다. 1986년 2월부터 1987년 2월까지의 일기였다. 기록은 2월 28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끝으로 몇 줄의 소회와 함께 멈춰 있었다.
노트북을 펼쳐 타자를 하던 중, 뜻밖의 글을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매일매일 그날의 할 일 및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결심과 반성 등을 두서없이 나열하며 일기를 써왔다. 그런데 1986년 2월 15일의 일기에는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무작정 내린 ‘경동시장’에서 마주친 풍경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글이었다. 25살, 내 청춘의 한때였고, 내 일기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의 글이기에 그저 파쇄해 버리기엔 왠지 아까웠다. 그래서 이 글을 여기 옮겨 남겨두기로 한다.
오늘 집을 나서서 5시간 넘게 사람 구경을 했다. 버스에서 처음 내린 곳은 경동시장. 시장 골목과 상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보도 위 앉은뱅이 노점상들을 쫓는 경비원들의 거친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다. 쫓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그 상황에 익숙한 듯 보였다. 목청을 돋우어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나 한 푼이라도 더 깎아 사려는 사람들, 모두 그들 각자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디서 그 많은 미꾸라지가 잡혀 왔는지, 혹은 양식장에서 대량 생산됐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들어가서 충분히 목욕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함지에는 미꾸라지들이 빽빽이 모여 미끌미끌 꿈틀거리고 있었다.
과일 상자에서 흘러나온 겨들이 질척한 땅과 어울려 좁은 시장 골목을 도포하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일 상자를 보며 너무 많고 풍성하면 오히려 호감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에 들렀을 때, 그 기분을 실감한 적이 있었다.
일상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이 쌓여 삶은 자연스레 윤기와 활기를 얻고 풍성해진다. 마치 변두리 헌책방에서 먼지에 묻혀 있던 한 권의 책을 발견해, 그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내듯, 소소한 것들이 쌓여, 결국 우리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음식이나 과일도 마찬가지로,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만남에서 이야기를 얻고 의미 있고 특별하게 다가갈 것이다.
골목을 빠져나와 넓은 길로 나서니, 곳곳에 손수레와 트럭들이 크고 작게 늘어서 있다. 그 사이사이로 뜨문뜨문 토스트를 파는 노점들도 보인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약장수가 토끼와 쥐가 접합해 나왔다는 기형의 동물과 고슴도치를 놓고 당뇨, 치질 등에 좋다는 약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쪽 편 거대한 스피커에서 약장수의 손에 쥔 마이크를 타고 윙 윙 울리며 째지듯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 신문이나 T.V. 혹은 교과서에서 접했을 법한 용어와 문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자신을 믿어달라는 식의 약 선전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 요란하면서도 묘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말들 속에서,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비슷한 차림과 초라한 노소가 모여 진지하게 듣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항상 쫓기는 듯한 사람들, 돈에 궁색한 사람들의 형상, 평범하고 가장 많은 종류의 비슷한 인간군임이 느껴진다. 내 배와 마음 역시 허전하고 주머니도 비어있다.
옆의 토스트 파는 손수레 앞에서는 술 취한 험상궂은 사내가 연신 큰소리로 주정한다. 붉으락푸르락 비틀거리며 혼자만의 노여움 가득한 이야기를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허공에 난사한다.
약장수의 거칠지만 유려한 쉰 목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과일 상자가 쌓인 다른 한편에서 소란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곳은 윷을 던져 높게 나온 쪽이 담배를 경품으로 받는 곳이었다. 가격별로 진열된 담배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그 사이로 윷가락 던지는 소리가 왁자지껄 울려 퍼졌다.
윷놀이판을 벌린 꾼은 꽤나 나이 든 노인이었다. 주위의 과일가게 젊은 장정들을 상대로 노인 특유의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200원을 내고 윷을 몇 번 던져 모나 윷 등의 큰 운이 닿으면 담배를 경품으로 타게 된다. 내가 갔을 때,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옆 과일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는 윷놀이판의 단골손님으로, 심심할 때면 자주 그곳을 찾는 듯했다.
오늘, 노인은 가장 비싼 값의 담배 3갑을 잃었다. 기세등등한 젊은이는 익숙한 노인을 은근히 비아냥거리며, 그의 화를 자꾸 돋우었다. 젊은이는 주변 사람 보란 듯이 노인을 조롱하고, 노인은 점차 사면초가에 몰린 듯 어눌해진다. 구경꾼들은 그 상황을 지켜보며, 마치 불난 집 구경하듯 재밌어한다.
노인은 조금의 돈도 잃지 않으려는 듯, “두 개가 낙이다, 세 개가 낙이다!”라며 규칙을 이리저리 바꾸고는 필사적으로 조바심을 내며 애쓰고 있었다. 그때마다 주위의 구경꾼들은 한두 마디씩 던지며 웃음을 터뜨리거나, 비웃듯 윷을 감추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윷을 함부로 던져서 그르다, 옳다 따지던 젊은이도 있었다. 윷을 사납게 던진 덕에 진열된 담배들이 금세 흐트러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에 변화무쌍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이의 끈질긴 심술에 맞서던 노인은 결국 담배 세 갑을 더 잃고 말았다. 그는 남은 담배와 윷판, 윷을 허름한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 가방은 고즈넉한 벽에 둘러싸인 주택가의 한구석, 쓰레기통 옆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듯 보이는 낡고 퇴색한 검은 가방이었다. 마치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작고 초췌한 모습의 굽은 허리 노인과 대조를 이루며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했다.
그런 잘고도 질긴, 저속하고 시끄러운 소란을 뒤로한 채,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속의 무게가 더욱 깊게 눌려오는 듯했다.
글은 여기서 끝난다. 1986년, 25살의 나는 집을 떠나 무작정 버스를 탔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을 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서울 시내는 최루탄 냄새가 짙게 퍼져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무심한 듯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았다. 무기력한 낭만파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3월 대학 복학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자주 가던 신설동 시립도서관 벤치에 앉아, 한동안 우두커니 해를 쬐던 기억이 여전히 마음에 새겨져 있다.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당시 노트에 휘갈겨 쓴 글인지라 비문도 상당했고 뒤죽박죽 앞뒤 없이 헷갈려 서술된 부분들은 고쳐 옮겨 적었습니다. 내용이나 느낌을 크게 바꾸거나 더하지는 않았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