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따듯한 6월의 어느 날, 장례식장에 다녀오다.
햇살 따듯한 6월의 어느 날, 장례식장에 다녀오다.
처가 큰아이를 차로 등교시키는 동안, 나는 작은아이를 챙겨 학교에 보낸다. 아침은 집 안 청소와 정리로 늘 분주하다. 그때 “띠리리!” 하는 알림음과 함께 휴대폰 단체 채팅방에 부고장이 떴다. 파주에 사는 K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은 D 대학 일산병원, 발인은 내일 오전. 오늘 오후에 조문하자고 마음먹었다. 잠시 뒤, 부천의 C가 성산동 H와 함께 6시쯤 병원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시간에 맞춰 만나자고 따로 연락을 보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빨래를 돌렸다. 이후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시립도서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참여 중인 글쓰기 강좌다. 오늘의 주제는 ‘인간관계’.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전적 수필을 쓰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아침에 받은 부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노동 만화 네트워크 - 들꽃’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노동 현장의 신문이나 소식지에 만화를 그리는 아마추어들과, 각자의 일터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전문 작가들이 연대한 집단이었다. 전교조 신문에 만평을 연재하던 경험을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하자센터와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 등에서 정기전을 열었고, 동인지 제작, 벽화, 걸개그림 작업도 함께했다.
“화려하지도 가꿔지지도 못했지만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수수하게 피어나는 들꽃처럼, 우리의 주변 곳곳에는 이웃들과의 공감 속에 소박한 목소리가 담긴 만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의 관점에서 생활의 과정에서 그려진 익명 혹은 무명의 만화들은 꾸밈없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기면서 우리의 삶을 살맛 나게 하고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어 가는 우리들의 삶에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하고 확인시켜 주는 미덕이 있습니다. 우린 이런 만화끼리, 만화인끼리, 서로 연결되어 그 소중한 미덕을 더 풍부하게 가꾸고자 합니다.
*윗글은 2001년 ‘노동 만화 네트워크’ 출범을 알리며 전시 도록에 실렸던 선언문의 첫머리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문예진흥기금’이 끊기면서 ‘들꽃’도 조용히 시들어갔다. 이제는 공식적인 활동 없이, 개인적 인연만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관계를 유지하는 멤버는 열 명 남짓이다. 나는 중고등학교나 대학 동문회에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들꽃은 지금까지 이어진 내 유일한 공동체다. 교사로서 전교조 활동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이 모임은 내 생각과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말보다 그림으로, 중심보다 주변의 이야기에 더 눈을 돌리게 되었다.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한 번 더 돌린 뒤, 빨래를 널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2시쯤 작업실에 도착했다.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들었다. 이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 소식, 그리고 3대 특검법 통과 소식이 흥미롭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오후 4시쯤, 안양에 사는 J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촌 근처에서 5시에 미팅을 마친 뒤 장례식장에 들를 예정이라며, 내 도착 시간을 물었다. 자신은 8시쯤 도착할 거라고 했고, 나도 그에 맞춰 가겠다고 했다.
일산은 자가용으로 몇 번 가본 게 전부였다. 전철로는 얼마나 걸릴지 몰라 6시쯤 인터넷으로 경로를 검색해 보았다. 헐,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 1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탄 뒤, 원당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예상 소요 시간은 무려 1시간 30분. 생각보다 꽤 멀었다. 6시 20분쯤 독산역으로 향하며 J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아직 출발 전이면 같이 가시죠?”, “오! 황 선생, 그럼 신도림역에서 2호선 갈아타고 신촌역 8번 출구에서 만나자!” 7시 무렵, 신촌역에서 J형을 만났다. 형 옆에는 문산에 사는 친구분이 함께였고, 그분이 길 안내를 맡아주셨다. 세 사람은 홍대입구역까지 함께 걸은 뒤 ‘경의중앙선’을 타고 풍산역에서 하차했다. 버스로 세 정거장을 더 간 뒤 내려, 황량한 보도를 15분쯤 걷자, 장례식장이 위치한 D 대학 병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J형은 70년대 말 미대 재학 시절부터 노동단체와 재야 운동단체의 선전물에 ‘민중만화’를 그려왔다. 이후 만화 관련 박사학위를 늦게나마 취득하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몇 해 전 퇴직했다. 노동 만화 넷의 산파 역할을 했던 그는 초대 대표이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들꽃’의 시작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8시 30분경 도착하니 부천의 C는 이미 떠나고, 성산동의 H가 남아 있었다. 부의금을 내고, K를 만나 조문했다. K는 부친 이야기를 하다 몇 번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요양원에 계시다 82세로 돌아가셨단다. K는 ‘들꽃’의 모든 전시와 각종 활동을 총괄하며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전문 만화가로 활동 중이며, 창작집도 몇 권 출간했다. 이미 신촌에서 전작이 있던 J형은 소주를 반 병쯤 더 마셨고, 나는 허기를 달래려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은 뒤 식혜로 입가심했다. 앞 테이블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옛 당산역 부근의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사람들이었다. 아주 오랜만이지만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10시쯤 되어 K의 배웅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왔던 길을 거슬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독산역에서 내리고, J형은 좀 더 가 안양에서 내린다. 금천교를 건너며 집에 전화를 걸었다. “ 장례식에 들린 후에는, 다른 곳에 한 번 더 들렀다가 오는 거래!”라는 처의 말에 “웬 미신!”하고 답하고는, 잘됐다 싶어 작업실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고 ‘들꽃’과의 인연을 곱씹으며 ‘인간관계’ 관련 글쓰기 첫 문장을 시작한다. 커피 향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작업실 불을 끄고 일어섰다. 무엇 하나 거창하게 해낸 것은 없지만, 마음 한편이 작게나마 정돈된 듯했다. 그렇게 또 하루를 천천히 닫는다. 깨진 보도블록 틈새,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가 가로등 불빛에 시리도록 곱게 빛나고 있다.
2025.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