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소리로 기억하기

by 황성동

땡! 소리로 기억하기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일이 내 하루의 거의 전부다. 반복되는 일상 속 가장 번거로운 일은 단연 식사다. 가끔 집에서 밥을 싸 간다. 일회용 국에 뜨거운 물만 부어 김치와 함께 먹는다. 가장 자주 먹는 건 ㅇㅇ사 컵 누룽지이다. 인스턴트 특유의 냄새도 없고 양도 적당하다. 속이 편하고 허기도 가신다.

6월 초, 누룽지 한 박스를 택배로 받았다. 토요일 오전 10시, 박스를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서둘렀다. 큰아이가 수행평가 자료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기사를 오려야 했는데, 신문은 작업실에 있다. 마음이 바빴다. 얼른 기사를 스크랩해 아이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다.

백팩을 메고 누룽지 박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신문 더미를 꺼냈다. 기사 찾기에 집중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자료가 모였다. 빈 파일에 정리해 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빠진 것 같았다. 가방도 파일도 들고 있는데… 아, 누룽지! 분명 들고 나왔는데, 사라졌다. 혹시 복도에? 아니면 작업실 맞은편 피시방 쪽에? 근처를 뒤지고 피시방 카운터에 물어보기도 했다. “누룽지 상자 보셨나요?”, “아뇨, 못 봤는데요.”

집에도 전화했다. 조심스레 물었다. “나… 누룽지 박스 들고나왔었지?” 처가 바로 대답했다. “뭔 소리야? 들고 나가선 딴소리야?”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아 얼른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작업실 안팎을 다 뒤졌지만 소용없었다. 아이의 스크랩 파일을 들고, 다시 온 길을 걸었다. 도대체 어디에 두었을까.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신호등 앞에서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출입구 뒤편 계단 의자 위에 잠깐 내려놨었다. 그리고 길을 걸을 때 늘 그렇듯 습관처럼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꽂는 사이, 상자 생각이 사라졌다. 그 길로 유튜브 방송을 들으며 작업실까지 걸어온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신문을 뒤졌고,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상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의자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달려갔다. 출입구 계단, 그 익숙한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상자도.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내 일상엔 이제 이런 건망증이 자연스럽다. 사람 이름, 약속 장소, 상호명도 자주 잊는다. 하지만 가장 고질적인 건 문단속과 전열기기 확인에 대한 강박이다.

특히 작업실을 나설 때면 심하다. 문이 잠겼는지, 전원을 껐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다. 한참 가다 다시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돌아와 보면 모든 게 제자리에 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왜 유독 작업실일까. 늘 어수선한 풍경 탓일지도. 전선은 어지럽게 늘어져 있고, 탁자 위엔 공구와 물감이 널브러져 있다. 나 혼자 드나드는 공간이라 더 심하게 확인을 되풀이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처방’을 하나 만들었다.

작업실을 나서기 전, 스위치를 끄고 나서 작게 외친다. “땡!”

침대 위 전기장판, 스탠드를 끌 때도 “땡.”

환풍기를 끄며 “땡.”

천장의 LED 등을 끌 때는 “땡, 땡, 땡.”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며 또 한 번, “땡!”

그 짧은 소리를 기억의 도장처럼 머릿속에 찍는다.

그러면 집에 가는 길, 문단속과 전기 걱정이 신기할 만큼 사라진다.

그 순간의 “땡!”이 내게는 일종의 확인음이자 안심음이다.

어쩌면 누군가 보기엔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혼잣말로 ‘땡’을 외치며 문을 닫는 모습이란. 하지만 내겐 그 한 음절이 불안을 잠재우는 작은 주문이다. 삶은 어쩌면, 그런 사소하고도 이상한 습관 하나로도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25. 7. 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들꽃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