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항하여 용기를 가져라
<2024년 07월 03일>
AM 11:25
스텔라는 메이든이 소개해준 브런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여유 있게 나선다.
[애월 T 카페]
펜션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브런치 카페
리조트와 함께 운영되고 있어서 주차 공간은 협소했지만 운 좋게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카페 외관은 이국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공존하면서도 심플했으며,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우드톤과 베이지 색의 조화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고,
작업을 위해 콘센트가 있는 편한 소파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카운터 앞에 여러 개 배치된 메뉴판을 가져가서 고른 후,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메뉴판을 가져다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든 가방과 함께 올려놓고, 개방된 창밖엔 야외 테이블이 있는데, 제주 특유의 돌담 그리고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카페에서 한담 해안도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산책하듯 해변을 걸을 수도 있으며, 카페를 나서기 전에 잠깐 산책 겸 해변을 걷기로 하고,
주문부터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메뉴판을 보던 그녀는 노을이 질 때까지 머물면서 브런치에 디저트와 음료까지 먹을 생각이라, 별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카운터로 향했고,
바빠 보이는 직원 대신 카페 사장님이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 드릴까요?”
“네. 근데 그 전에 양해를 먼저 구해야 할 거 같아서요. 제가 저기 소파 좌석에 앉아서 노을 질 때까지 조금 오래 글을 좀 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혹시 피해가 될까요?”
“아뇨~ 전혀요~ 얼마든지 오래 계셔도 괜찮습니다~”
카페 사장님이 기분 나쁜 표정 하나 없이 흔쾌히 허락하자, 굳었던 그녀의 표정이 안심하듯 풀어졌다.
잠시 생각하던 사장님은 그녀를 알아본 건지,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한다.
“어? 혹시 스텔라 작가님 아니세요?”
그녀는 사장님이 청한 악수에 응하며 웃어 보인다.
“아, 네~”
“여행 오셨나 봐요~”
“네~ 계속 서울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요~”
“그쵸~ 아! 주문하셔야죠~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요~ 가시기 전에 사인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작가님 진짜 팬이거든요~
작가님이 쓰신 영화 다 봤어요~”
“와, 진짜요? 제주도에 제 팬이 많네요~ㅋ 어제 숙소 앞 카페에서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여기 전망 좋아서 글도 잘 써질 거라고 추천해주셔서 온 거에요~”
“제주도에만 있겠어요~ㅎㅎ 그 분께는 정말 감사하네요~ 언제 한 번 같이 오시면 제가 쏠게요~”
“다시 만나면 전해드릴게요~ 사인은 주문하고 해드릴게요~”
“아, 네~ㅎㅎ”
"일단 브런치는 불고기 파니니 샌드위치 하나랑 핑크 선셋 티 하나요~ 디저트는 나중에 시킬게요~"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드릴게요~"
스텔라는 결제를 위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아뇨, 아뇨~ 제가 낼게요~ 나중에 영화 나오면 엔딩 크레딧에 저희 카페 이름 올려주시는 걸로 퉁 치는 건 어떨까요?ㅎ"
"아뇨~ 그럴 순 없죠~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브런치와 디저트 정도는 사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ㅎ감사합니다~ 엔딩 크레딧에 꼭 이름 올릴게요~"
"감사해요~"
카페 사장님은 자신의 노트와 펜을 내밀었고, 스텔라는 정성스레 사인과 함께 한 줄 메시지도 적었다.
- 애월 T 카페 너무 예뻐요~ 항상 행복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P.S - Special Thanks to 제주 애월 T 카페 엔딩 크레딧을 위해…-
사인을 마친 그녀가 노트와 펜을 사장님께 돌려준다.
"자리에 편하게 계세요~"
"네~"
그녀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다.
하지만 여전히 노트북 키보드에 손은 올라가 있지만 화면의 커서만 깜박일 뿐, 글은 한 글자도 쓰지 못 했다.
카페 사장님이 직접 그녀가 주문한 불고기 파니니 샌드위치와 핑크 선셋 티를 가져다준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배가 고팠던 스텔라는 불고기 파니니 샌드위치 두 쪽 중 하나를 들어, 한 입 베어 먹는다.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있는 제주 흑돼지 불고기가 적당한 소스와의 궁합이 잘 맞았고, 촉촉한 파니니 안쪽엔 소스가 잘 베어져 있었으며,
크리스피한 파니니 겉면 덕분에 베어 물었을 때 파니니 안의 아삭한 양상추와
구운 양파 그리고 잘 녹인 치즈가 지저분하게 흐르지 않아서 손으로 들고 먹기에도 좋았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도 바삭하고 짭조름해서 굳이 케첩을 찍지 않아도 맛있었다.
음료는 핑크빛 리치와 보랏빛 라벤더 향이 가득하고 좋았으며, 핑크색과 보라색이 섞이지 않고 층이 생겨, 그라데이션 때문에 맛만큼 시각적으로도 예뻤다.
그때, 한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다가 스텔라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작가님?"
그녀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어제 펜션 근처 카페에서 봤던 남자, 메이든이 헬멧을 들고 서 있다.
어제의 편한 복장과는 달리 오늘은 NY 데님 바이커 자켓 세트를 입어, 러프하면서도 캐주얼해 보인다.
"어? 안녕하세요~"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사장님에게 메이든을 소개한다.
"사장님, 좀 전에 말씀드렸던 분이에요~ 여기 추천해 주셨던.."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도 작가님 팬인데 저희 카페 추천도 해주시고, 감사해요~ 오늘 주문하시는 거 제가 사겠습니다~"
"어? 진짜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아요~ 주문하시고 앉아 계시면 가져다드릴게요~"
"그럼, 작가님이랑 동석해도 되나요?"
"아...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긴 한데..."
"방해 안 할게요~ 진짜~ 조용히 브런치만 먹을게요~"
"ㅎ 알았어요~ 주문하고 와요~"
스텔라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메이든은 더 선셋 브런치와 토피넛 라떼를 주문하고 그녀의 테이블로 온다.
맞은편에 앉은 그는 그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서 야외로 나가 디카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사이, 카페 사장님이 그가 주문한 브런치와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저희 2단 트레이 있는데,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사장님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메이든이 자리로 돌아왔고,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이 스텔라를 자꾸만 웃게 한다.
그러다 그녀의 핸드폰이 불빛을 내며 반짝이고, 그녀 대신 메이든이 발견한다.
"저기, 작가님, 전화 오는 거 같은데요?"
스텔라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다.
>> 마포 한량이
(오에스~ 어디야?) "왜~" (나 어디~게~?) "설마~ 아니지?" (뭐가 아니야? 응~ 맞아~ 나 제주도 지롱~) "제주도는 왜?" (뭘 시치미를 떼고 있어~ 너 제주도에 있는 거 알고 같이 놀아 주려고 이 오빠가 오셨다구~) "아...호랭이 이 시키를 죽이까, 진짜..." (왜~ 내가 귀찮아?) "그것도 그건데, 나 여기 진짜 리프레쉬하고 조용히 작업하려고 왔는데 니가 오면 작업을 못 하잖아~" (그건데? 내가 진짜 귀찮아?) "몰랐냐?" (와~ 진짜 너무 하네~ 방해 안 하고 너 놀고 싶을 때만 같이 놀면 되잖아~~) "어후, 내가 제주도까지 와서 널 봐야겠어? 너야말로 너무하다, 진짜~" (너 차 렌트 했어? 나 택시 타? 나 어디로 가? 너 숙소 어디야?) "야, 이 씨~ 하나씩 물어봐~ 난 내가 가져왔어, 너 필요하면 렌트해~" (너 숙소 어디야? 나 좀 재워줭~) "나 A 스테이에 있는데, 별채 있어서 추가 금액 내면 될 거야~ 나는 지금 밖에 나와 있고~" (그럼 너 지금 있는 데 주소 좀 보내줘~) "하아...알았다~"
스텔라는 전화를 끊고, 톡으로 카페 주소를 보낸다.
"누구..에요?"
메이든의 물음에 한숨을 쉬는 스텔라
"고등학교 동창 중 하난데, 지금 제일 한가한 놈이라~"
"아, 놈..."
그녀는 펜션 사장님께 전화를 건다.
>> 제주 A 스테이 사장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작가님~) "친구 한 명이 더 올 건데, 별채 써도 되나요? 추가 요금이 얼마죠?" (아, 친구분이 별채를 쓰신대요?? 요금표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친구분, 언제 입실하시나요?) "오늘부터 가능할까요?" (아...저희가 청소 업체를 외주 주고 있어서, 일단 연락은 취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바로 청소해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사장님 청소 끝나는 시간 맞춰서 입실하도록 할게요~" (청소 업체에 전화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연락 주세요~"
메이든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와 표정이 살짝 굳는다.
다시 펜션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 제주 A 스테이 사장님
(작가님, 업체에서 1시간 내로 청소팀 보내준다네요~ 보통 별채 청소는 2~3시간 정도 걸려요~) "아, 네. 그럼 친구한테 입금은 지금 바로 할게요. 입실은 몇 시 이후에 가능할까요?" (지금이 12시 반이니까 청소는 3시 반에서 4시 정도면 끝날 거고, 제가 점검을 한 번 더 해야 해서요~ 4시 반에서 5시 사이 괜찮으실까요?) "네. 그럼 그쯤으로 알고, 점검까지 다 완료되면 연락 주세요~" (아, 그리고 별채 청소하는 김에 본관 청소 필요하시면 같이 해드릴 수 있어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요.) "아, 네~ 본관 청소도 해주세요~ 다음 청소도 미리 말씀드릴까요?" (네~ 청소는 하루 전에 요청하시면 되는데, 미리 말씀해주시면 더 좋죠~) "다음 주부터 월요일마다 해주시면 돼요. 자주 해주실 필요는 없고, 일주일에 한 번요~ 그러니까 오늘, 8일, 15일, 22일, 29일 이렇게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친구분 입실 먼저 하실 수 있게 별채부터 청소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통화가 끝나고 펜션 사장님이 보내준 별채 이용 요금표를 전달하고는 전화를 건다.
>> 마포 한량이
"방금 내가 보낸 요금표 봤어? 1박 기준인데 넌 여기 얼마나 있을 거야?" (너 서울 올라갈 때 가...ㅌ) "너 무인 편의점 계약이 언제지?" (다..음주 월요일...) "그럼 적어도 일요일에는 서울 가야겠지?" (응...) "오늘 3일이니까 3, 4, 5, 6일까지 4박 요금 입금하고, 여기 체크 아웃은 11시니까 체크 아웃하고 점심 먹고 서울 가~
알았어? 가는 비행기 편까지 알려줘? 펜션에서 공항까지 1시간 정도 걸리니까 1시 이후 걸로 예약하면 되겠네. 6일 1시, OK?" (알았어, 알았어~) "상가 계약하고 나면 할 거 많다~ 정신 차려~ 또 폐업하지 말고~" (윽~ 팩폭 오지네~ 딱 기다려라~ 다 주거따~) "까불지 말고 4일 동안 운전은 니가 해라. 그래야 6일날 공항 갈 때 데려다준다~" (네, 엄마~) "으~ 너 같은 아들 낳을까 봐 내가 비혼이지~"
전화를 끊은 그녀가 메이든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혹시..내일 시간 돼요? 요트 탈 건데, 같이 갈래요?"
그녀의 말에 금세 표정이 밝아진 메이든을 보고 참 투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
"좋죠~ 근데, 제가 방해되는 거 아니죠?"
"전혀요~ 어차피 동창 놈 가기 전까지 작업하길 글렀고, 둘이 놀긴 싫거든요~"
"고등학교 동창이면 오래됐겠네요?"
"그쵸~ 한 24년? 그러고 보니 전 그쪽 이름도 모르네요. 이름이 뭐예요?"
메이든은 면접이라도 보듯 자세를 바로 고쳐 앉고는 목을 가다듬고 대답한다.
"안녕하세요. 전 메이든 차 드완이구요. 31살 건축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들 네임은 한국인 엄마 성인 '차'에서 따온 거구요.
아버지가 캐나다인인 혼혈입니다. 당신은요? 면접관님?"
"ㅋ 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전 스텔라 오, 41살 시나리오 작가구요. 공교롭게 저도 엄마 성에서 따온 미들 네임이 있는데, 크로포드에요. 스텔라 크로포드 오.
엄마가 미국인이고, 아버지가 한국인인 혼혈입니다. 우리, 공통점이 많을 거 같네요?"
"와우~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좀 있으시구나~"
"하? 메이든 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어. 리. 시. 네. 요? ㅋ"
"ㅎ 그런 말 처음 들어요~"
"아~ 전 사실 많이 들어요 ㅋ"
"엄청 동안이셔서 그래요~ 전 그냥 제 나이로 보이는 거 같고~"
"말 놔도 되나?"
"네~"
"뭐 하나 물어볼게. 여기를 나한테 추천했다는 건 이미 와봤다는 말일 텐데, 여기 또 온 이유는?"
"작가님 계실 거 같아서요..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운명에 대항하여 용기를 가져라'라는 말이 있거든요..."
메이든의 대답을 듣고 스텔라는 한참 동안 그와 눈을 마주친다.
메이든은 그녀의 파란 눈이 블랙홀 같았고, 점점 빠져들었다.
그때,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한 건 한 남자의 스텔라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오에스~"
"시끄러. 목소리 낮춰, 제발~"
그는 요란하게 캐리어를 끌며, 스텔라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그녀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는다.
그러다 입 안에 있는 샌드위치를 씹으며, 메이든을 쳐다본다.
"레이저 쏘냐? 이쪽은 메이든이고, 메이든, 이쪽은 세상 제일 한량이라 제주도까지 쫓아온 신석영~"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입금했어?"
"응~ 왜 호텔 안 가고?"
"호텔은 장기 숙박하기에는 불편해~ 그리고 여행 가서 며칠 자는 건 괜찮은데, 저번에 호텔에서 장기 투숙 하면서 작업한다고 노트북 가져갔을 때
청소 한다 그래서 폰만 들고 로비 카페 가 있다가 노트북 뭘 잘 못 눌렀는지, 작업하던 원고 다 날아간 적도 있고, 스카프, 돈 없어진 적도 있고.. 뭐, 물론 그 호텔이 문제지, 관리 잘 된 호텔이 더 많겠지만 외출만 하면 청소한다고 요청도 안 했는데 문 따고 들어오는 게 호텔이면 당연한 건데 난 그게 싫더라~
매번 미리 청소 요청 시에만 해달라고 말해도 어쩔 땐 청소 되어 있고, 그럼 또 싸워야 되잖아~ 감정 낭비야, 나한텐~ 아예 독채 펜션을 빌리니까
청소는 요청할 때만 해주고, 심지어 비대면이라 더 좋고~"
"어련하시겄어~ 이거 맛있다~ 이거 하나 더 시켜야겠다~"
석영은 카운터로 가서 주문하고 돌아온다.
"음료는 뭐 시켰어?"
"아 아~ 펜션 빨리 보고 싶다~"
"지금은 청소하고 있으니까 저녁 먹고 들어가면 돼~"
"아, 그래?"
"이 시키야, 그러게 누가 이렇게 무턱대고 오래? 당일 예약 안 되는 펜션인데 내가 부탁해서 된 줄 알아~ 너 나 아니었으면 노숙할 뻔했어~"
"녜~녜~"
얄미운 표정으로 놀리는 듯하자, 스텔라는 석영의 등짝을 꽤 아프게 때린다.
(퍽)
그렇게 어색한 듯, 화기애애한 듯 세 사람이 브런치를 함께 먹고, 카페를 나서면서 스텔라는 카페 사장님과
서로의 친절함이 오고 가는 인사를 나눈 후, 카페 뒷문과 연결되어 있는 산책로를 걸어 H 해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