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
<2024년 07월 02일>
[제주 A 스테이]
AM 10:30
2층 침실에서 잠들어 있던 스텔라가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신 지, 얼굴을 찡그리며 잠에서 깬다.
눈도 다 뜨지 못한 채, 1층으로 내려가 수납장에서 캡슐커피를 꺼내 커피머신에 넣고, 커피 추출구 아래엔 머그잔을 받쳐 커피를 내린다.
한 모금 마시고는 맛이 없어, 얼굴을 찡그리며 머그잔을 내려놓고, 지갑과 핸드폰만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
조금 걷다 보니 아기자기한 카페가 보여서 안으로 들어간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스텔라를 발견한 카페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카페 맨도롱입니다~”
“안녕하세요.”
카운터 앞에서 메뉴판을 보던 스텔라가 주문한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랑 한라봉 주스 하나 테이크 아웃이요.”
“네. 만 천 원입니다~”
스텔라는 토스기 앞에 있는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꽂았고, 결제 완료음이 들리자, 카드를 뺀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시면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네.”
스텔라는 창가 쪽 의자에 앉았고, 창밖으로 바이크를 탄 한 남자가 카페 매장 옆에 주차하는 게 보인다.
그 남자는 바이크를 세워두고, 헬멧을 벗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오른손으로 정돈한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혼혈인 같아 보이는 외모의 그 남자에게 시선을 둔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
이름: 메이든 드완(Maden Cha Dewan)
국적: 캐나다와 한국 이국 국적(캐나다 한국 혼혈)
나이: 31세
직업: 건축 디자이너
“어서 오세요. 카페 맨도롱입니다~”
메이든은 자주 온 듯, 메뉴도 보지 않고 주문하려고 카페 사장님을 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 아웃 맞으시죠~?”
“아, 네~”
메이든도 결제를 완료하고 자연스럽게 창가 쪽 스텔라 옆에 앉는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스텔라를 슬쩍 본 메이든도 그녀가 자신과 같은 혼혈인이라는 걸 짐작했다.
그녀는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메이든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어? 우와, 혼혈이다~ 나돈데~”
“……”
스텔라는 익숙한 반응이라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메이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한 뼘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간다.
갑자기 가까워진 그의 얼굴 때문에 놀란 스텔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힌다.
“어? 어? 혹시~ 스텔라 작가님 아니에요?”
“나 알아요?”
“당연하죠~ [미드나잇 블랙] 작가님이시잖아요~ 와,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꿈인가?”
그의 밝은 에너지에, 경계심이 조금은 허물어졌다.
“[미드나잇 옐로우] 아는 사람은 몰라도 [블랙]을 아는 사람은 드문데, 영화 좋아하시나 봐요?”
메이든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는데 카페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 한라봉 주스 하나 나왔습니다~”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픽업대로 향한다.
“캐리어에 담아 드릴까요?”
“네.”
카페 사장님이 음료 캐리어를 꺼내 음료 두 잔을 캐리어에 담아 준다.
그녀는 음료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저기, 괜찮으시면 음료 여기서 같이 드실래요?”
메이든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전 소설책이 더 재미있었어요~ 역시나 영화는 원작을 다 담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제 소설 독자분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가 건축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서 건축 관련 자료 찾느라 서점에 자주 가는데, 우연히 작가님 소설을 보고 처음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그날 바로 첫 장 읽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어 버릴 정도로 너무 재밌었어요~ 특히, 여자 주인공 지안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고 과거를
바꾸는 장면 묘사가 인상적이에요."
메이든이 첫인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감성적이고 생각이 깊어 보인다는 생각에 옅은 미소를 띤 얼굴을 한다.
"고마워요. 사실 요즘 슬럼프인지 글이 잘 안 써져서 머리도 식힐 겸 여행 온 거거든요. 메이든 씨 말이 힘이 되네요."
"웃을 때 보조개...예쁘세요. 아, 이게 아닌데, 작가님도 슬럼프를 겪고 계시구나~ 다들 인생에 한 번쯤은 겪더라구요. 중요한 건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죠.
제가 건축 디자인하면서 느낀 건데,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건축 디자인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제주도에선 며칠 일정이세요?"
메이든이 ‘아, 이게 아닌데’라고 하면서 고개를 젓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에, 스텔라가 대화 중 처음으로 크게 웃다가 이어서 슬럼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답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일단은 한 달 생각하고 있는데, 충분히 쉬었고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를 다 쓰면 더 일찍 올라갈 수도 있고, 아님 더 오래 걸릴 거 같으면 더 연장해서
있을 수도 있고, 모르겠어요."
"제가 작가님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곳 추천해 드릴까요?"
메이든의 말에 스텔라는 관심을 보이자, 목에 걸고 있던 디지털카메라 전원을 켜고 사진 몇 장을 보여준다.
“여기 더 선셋이라는 곳인데, 건물도 예쁘고 전망은 더 미쳤더라구요. 브런치 카페고 유명해서 사람이 많지만 작가님이 이 전망을 보면서 작업을 하다가
노을 지는 것까지 보고 오시면 글이 더 잘 써지지 않을까요?”
“와~ 진짜 미쳤네요~ 왜 추천해주시는지 알 거 같아요~ 더 선셋...내일 꼭 가볼게요. 고마워요~”
스텔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쉬운 표정이 역력한 메이든
“가..셔야 되죠. 제가 시간 너무 많이 뺏었죠? 들어가 보세요~ 진짜 진심으로 작가님 만나서 영광이었어요!”
“아니에요~ 보여주신 사진 보니까 제주도 곳곳에 그런 스팟이 많을 거 같은데 찾아다니면서 글 쓰는 것도 좋은 생각인 거 같아서 더 찾아보려구요~
저야말로 대화 너무 즐거웠고 좋은 말 너무 고마워요~”
스텔라가 메이든과 카페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나선다.
펜션으로 돌아온 그녀는 수납장에서 맥주잔 크기의 컵을 찾아 마트에서 사 온 돌얼음 몇 개를 꺼내 넣고, 그 위에 다 식은 아메리카노를 부어 차갑게 만든다.
금방 차가워진 커피를 거실 테이블 위에 놓고, 2층 화장대 앞에 두었던 가방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온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전망 좋은 스팟들을 찾아보는 데에 집중한 그녀는 눈이 피로해져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고 나서야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PM 02:15
늦은 점심으로는 로제 파스타를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베이컨 3줄, 양파 반개, 아스파라거스 2줄기, 다진 마늘을 꺼내고, 미리 구비 되어 있던
양념 트레이에서 올리브 오일, 소금, 설탕, 후추를 사용한다.
베이컨, 양파와 아스파라거스를 미리 손질해두고, 물을 냄비에 넣고 소금 2스푼을 넣어, 파스타 면을 삶는다.
면이 삶아질 동안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아 향을 내고, 양파와 아스파라거스도 넣고 볶다가 베이컨을 넣은 후 함께 볶아준다.
그 사이, 면이 다 삶아지면 면만 건져 프라이팬에 옮겨 골고루 저은 후, 소금과 설탕을 넣어 간을 하고, 접시에 따로 옮기지 않고 프라이팬 채로 먹을 거라서
아일랜드 식탁에 우드 냄비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는 후주로 마무리하고 젓가락을 꺼내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아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프라이팬을 다 비운 후, 주방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노트북을 아일랜드 식탁으로 가져온다.
2층에서 I패드와 I펜슬도 가져와 메모해둔 것들을 보면서 다음 작품 구상을 한다.
그러나 구상 단계부터 막혀, 어떤 구상도 떠오르지 않고, 떠오른 구상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린다.
스텔라는 시나리오 작업을 포기하고 점심때 찾아보던 전망 좋은 스팟들을 이어서 찾기 시작한다.
내일은 메이든이 추천해준 브런치 카페에서 작업을 하기로 하고, 차귀도 섬과 해안 절경 그리고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요트 투어를 찾았고,
차귀도 요트 투어는 퍼블릭 투어와 프라이빗 투어가 있는데, 프라이빗 투어 돌고래 투어와 선셋 투어가 세트로 묶인 코스를 선택해, 내일모레로 예약했다.
리뷰를 찾아보면서 사진을 보다 보니, 이미 요트 투어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창밖으로 해가 지려고 하자, 저녁으로는 회를 먹을까 하는 생각에 펜션을 나선다.
차량 문 잠금을 해제하려는데, 노을 지는 제주도 하늘이 너무 예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는 차에 탄다.
20분 거리에 있는 한 애월 B 횟집에 도착해, 전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회 포장 세트 메뉴 중 제주 다금바리 회와 단새우회를 주문하고 차 안에서 기다린다.
그때, 차량에 블루투스가 연결되어 있던 핸드폰에 전화가 오자, 내비게이션 화면이 전화로 전환된다.
>> 용산 호랭이
(오에스 작가님~ 어디야?)
“요오~ 호랭이 형사님~ 나 사실 서울 아님~ 한량이한텐 말하지 마. 나 여기 조용히 작업하러 온 건데, 그 시키 때메 시끄러워진다~
‘왜 말 안 했냐, 왜 혼자 갔냐’ 어쩌고저쩌고~ 어후~”
(ㅋㅋㅋ 그래서 어딘데? 해외는 아닌 거 같고~ 인제? 속초? 아님, 부산? 거제도?)
“다 틀렸음~ 제주도~”
(오~ 힐링 제대로 하고 관광도 하고 오시겠다~?)
“10년 만에 슬럼프가 와서~ 10년 전에 처음 슬럼프 왔을 땐 잘 넘겼는데, 이번엔 영~ 4년째다, 벌써~ ”
(제주도에서 힐링하고 오면 술술 써질 거야~ 난 우리 작가님 믿어~ 니가 누군데~ 스텔라 오~)
“ㅋㅋㅋ 제주도 올 때 너한테 태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보다, 야~ 하여튼 비행기 잘 태워~”
(비행기 태우는 거 아니고 진심이라니까~ 난 늘 니 팬이라고~ 그래서, 얼마나 있다 올 거야?)
“일단 예약은 한 달 했는데, 작품 빨리 써지면 더 일찍 갈 수도 있고~ 안 써지면 더 있을 수도 있고~
지내봐야 알 거 같아~ 급할수록 돌아가라잖아~ 야, 진짜 한량이한테 말하면 안 된다~ 걍 너만 알고 있어~”
(알았어, 알았어~ 근데, 권 변한테도? 나 권 변한테 거짓말 못 하는데?)
“그니까~ 걍 모르겠다 그래~”
(알았어~ 항시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올라오면 연락하고~ 알았지?)
“아, 알았어~ 또 또 잔소리~”
통화가 끝나자, 멀리 횟집 직원이 포장 손님을 찾는 듯한 모습이 보이자 차에서 내려, 매장으로 향한다.
스텔라가 주문한 회가 담긴 포장 봉투를 받아 들고 차로 돌아와, 회와 같이 곁들일 와인과 위스키 파는 곳을 검색하다 와인과 위스키 종류가 많은
와인 상점을 발견하고 내비에 주소를 찍은 후, 바로 출발한다.
[제주 V 와인 상점]
30분 거리에 있는 한 와인 상점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진열장들마다 와인과 위스키들이 종류별로 그득하게 채워져 있었으며, 왼쪽 테라스에는 다양한
안주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은 기본이고,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 위스키에, 쇼케이스에는 탄산수와 치즈도 구매 할 수 있고, 사장님께 추천을 요청하면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곁들일 음식에 맞춰 적합한 술을 찾아 주신다는 리뷰가 많았다.
차갑게 보관해야 하는 와인은 와인 냉장고에 따로 보관해둘 정도였고, 5병 이상 구매 시엔 배달 서비스도 가능하며, 서울로 택배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스텔라는 오늘 저녁뿐만 아니라 한 달 동안 지내면서 마실 와인과 위스키를 배달 서비스로 받아야겠다는 생각하면서 천천히 종류별로 구분된
진열장들을 둘러 본다.
일단 해녀 와인으로 유명하며, 제주에서만 판다는 리미티드 에디션인 발레 벨 보 그란 디저트 제주 아일랜드 와인 3병을 가장 먼저 골랐고,
로제 와인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스위트 로제 1병, 사장님이 같이 먹을 회와 잘 어울린다고 추천해주신 아스트로라베 말보로 소비뇽 블랑 1병과
바르바네라 토스카나 스페셜 로쏘 1병, 그녀의 집 와인 냉장고에 몇 명씩 쌓아 놓고 있는 알피에리 스푸만테 모스카도 3병과 조지 미셸 소비뇽 블랑 3병
그리고 위스키 중에서는 싱글 몰트를 좋아해서 싱글 톤 더프다운 12년 1병, 글렌피딕 15년 1병, 그리고 사장님이 시음해보라고 준 버번위스키 3 대장 중
하나라는 버펄로 트레이스 1병까지 총 15병과 냉장고에 넣어두고 함께 먹을 과일 치즈, 고다치즈, 살라미, 브리치즈 4종 모둠 치즈 플레이트, 하몽, 금귤 정과,
올리브, 크림치즈 호두 곶감말이도 샀다.
사장님은 그녀가 구매한 양을 보시고는 놀라셨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셨고, 와인과 위스키를 좋아하는 데다,
한 달 정도 지내는 동안 마실 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탄산수 여러 병과 경북 상주에 위치한 막걸리 양조장에서 만든 너드바질 스파클링 막걸리도
1병 서비스로 넣어주셨다.
배달 서비스를 위해 사장님께 펜션 주소를 적어드리자, 단번에 [제주 A 스테이]라는 걸 아시고는 저녁 9시 이후에 배달 가능하다는 안내와 매장 밖까지
배웅 나오신 사장님을 뒤로 하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포장해 온 회와 함께 곁들일 아스트로라베 말보로 소비뇽 블랑 1병은 따로 챙겨와서 아이스 바스켓에 칠링 해두고, 아일랜드 식탁에 회와 기본 제공으로
딸려온 조미밥, 조기구이, 홍합 미역국, 쌈장, 깻잎, 와사비, 마늘, 백김치, 간장, 초장까지 세팅한 후, 와인잔과 와인 오프너를 꺼내 온다.
쫄깃한 식감과 단맛이 좋은 회와 궁합이 잘 맞는 와인까지 완벽한 저녁이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둘째 날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