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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현자는 마음에 입이 있고, 바보는 입에 마음이 있다

by 제나랑


한담 해변으로 나온 스텔라, 석영 그리고 메이든

앞서가던 스텔라의 뒷목이 보이고, 석영의 뒤를 따르던 메이든은 석영의 어깨 너머로 스텔라의 뒷목 아래 작은 별 타투와 티셔츠에 가려진

초승달 타투의 끝부분이 보인다.

한담 해변은 제주 북서부에 위치한 애월에서 곽지까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로, 바다는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어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해변 산책의 낭만을 느끼기 충분했고, 햇살은 뜨거웠지만 날씨가 좋아서 뭉게구름을 띈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닷바람 덕분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수채화로 그려 놓은 듯한 풍경에 스텔라는 핸드폰, 메이든은 디지털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그냥 찍어도 사진은 잘 나올 정도로 예뻤지만, 두 눈으로 가득 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 걸 보려고 다들 제주도에 오나 봐~ 바다가 진짜 대박적이다~"

검은 화산석 바위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세 사람은 검은 화산석 바위 중 가장 평평한 곳에 나란히 앉는다.

"여기가 올레길의 일부래~ 한량이 가면 올레길 끝에서 끝까지 걸어봐야겠다~"

"그래, 나 가고 나면 걸어~ 난 걷는 거 싫어~"

"메이든, 저녁에 일정 있어? 일정 없으면 저녁도 같이 먹자~"

"네~ 좋아요~"

"뭐 먹지? 고기 먹으까?"

"제주도에 왔으면 흑돼지부터 조져야지~"

메이든과 석영 가운데에 앉은 스텔라가 맛집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메이든은 좀 점에 살짝 보였던 초승달 타투의 일부가 앉으면서

조금 더 드러난 타투를 보고 있으며, 석영은 그런 그를 보고 있다.

스텔라는 메이든의 친근한 접근을 즐기지만, 석영은 메이든의 상냥함이 조금 의심스럽다.

딱 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고 스텔라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메이든이 스텔라를 가볍게 보고 접근 한 게 아닌가라는 선입견과 오해들로 인해

탐탁지 않은 느낌이 들어 괜스레 표정이 좋지 않다.

"타투 예쁘네요? 초승달 위에 뜬 별인가?"

"응~ 여기 하나 더 있어~"

스텔라는 오른쪽 팔뚝의 티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메이든 쪽으로 몸을 돌려 보여준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 끝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진 팔뚝에 [Dawn always and shine]이라고 필기체로 적힌 레터링 타투가 있다.

"나도 타투 두 개 있는데~ 보여주려면 위에 다 벗어야 돼요.ㅎ 오른쪽 어깨 뒤엔 Rêver c'est y croire(라 썽쁘리씨떼 에 라 쏘피스띠게숑 쉬프헴) 꿈꾸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라는 뜻이구요. 왼쪽 어깨 뒤엔 Contre fortune bon coeur(꽁트르 포흐뛴 봉 꾀흐) 운명에 대항하여 용기를 가져라, 라는 뜻이에요~"

"너무 좋은 말이네~ 언제 새긴 건지 물어봐도 돼?"

"오른쪽 어깨는 스무살 때 캐나다에서 친구랑 새긴 거고, 왼쪽 어깨는 얼마 안 됐어요. 얼마 전에 여친이랑 헤어지고 여기 오기 2주 전에 새긴 거거든요~

작가님은요?"

"별이랑 초승달은 나도 스무살 생일 때 미국에서 아버지랑 같이 가서 새긴 거고, 레터링은 서른살 생일 때 전 남친이랑 같이 가서 새긴 거~"

"타투 더 할 생각 있어요?"

"아니, 이 나이에 하면 노망났다 그래~"

"왜요~ 작가님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넌? 하고 싶은 타투 있어?"

"제 인생 마지막 여자 생일이요~"

"오~ 낭만 있게 사네~"

스텔라와 메이든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석영은 그녀가 이렇게 서로 안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심지어 10살이나 어린 남자와

이렇게나 대화를 잘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 맞다. 나 내일 요트 투어 예약해놨는데..야, 너도 갈 거지?"

"네~ 엄마 가는 길에 아들이 당연히 가야지~"

"으이구, 이 화상~ 언제 철들지, 이거?"

"헉, 진짜 우리 엄만 줄~"

석영은 놀라는 시늉을 하며,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다가 두 손을 양 귀에 가져가고는 고개를 젓는다.

메이든이 뒤에 놓아둔 헬멧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메이든에게 말을 건다.

"바이크 타나 봐요?"

"네. Y MT03 모델이요~ 바이크 타세요?"

"아뇨. 관심만 많아요~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거든요~"

"아~"

그때, 스텔라에게 전화가 온다.

>> 제주 A 스테이 사장님

"네, 사장님~" (작가님~ 별채랑 본관 청소 다 마쳤구요. 지금 바로 입실하실 수 있게 점검도 마쳤어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친구분 6일 11시 체크 아웃 맞으시죠?) "네, 맞아요~ 안 나간다고 해도 제가 꺼지라고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아휴, 걱정 안 합니다~ㅎ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펜션 사장님과의 통화를 끝낸 스텔라

"야, 너 입실해도 된대~"

"그래? 그럼 들렸다가 짐 놓고 나올까?"

"내 차 있잖아. 뭐, 들고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뭔 걱정이야~"

"아~"

서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일몰이 시작되어 파랗던 하늘이 노을빛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일제히 카메라를 켜,

그 노을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파란 하늘 위에 주황색 물감이 번지도록 채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의 하늘색을 그대로 담아낸 바다가 하늘색에서 진한 파란색으로 스펙트럼을 보여주듯이 펼쳐지는 에메랄드빛이 아름다웠고 노을 진 하늘 만나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들의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다.

바람이 아주 많은 날은 아니었지만, 에메랄드빛 바다가 검은 화산석 바위와 만나 하얗게 부서졌고, 이건 어떤 물감을 풀어 놓아야 만들 수 있는 빛이 아닐까 싶다.

눈이 부신 햇살을 받은 바다와 모래가 낮에도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고, 검은 화산석이 모래까지 속속들이 품을 줄 아는 듯, 안정감을 주는 포용의 빛깔이었으며,

유리를 깔아 놓은 듯한 해변에 주황빛 하늘이 점점 붉게 스며들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비경을 만들었다.



노을이 다 지고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출출해졌다.

조금 전, 예약해둔 맛집으로 가기 위해 스텔라의 차와 메이든의 바이크가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제주 S 애월점]

매장 전용 주차장에 차량과 바이크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

입구에서는 숙성 중인 고기들이 걸려 있고,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웨이팅하지 않고 바로 들어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며, 960대갈비와 숙성 스페셜 700g

세트에 560특항정 200g을 추가해서 주문했다.

"스텔라, 술 안 마실 거야? 술 한잔 해야지~"

"운전할 사람들은 못 마시지. 한량이가 마셔~ 내가 운전할게~"

"그래~ 나 한라산 진짜 마시고 싶어~"

한라산 소주와 콜라 그리고 공깃밥과 동치미 열무 냉면을 추가로 시킨 후, 고사리, 깻잎절임, 묵은지, 소금, 명란젓, 멜젓, 갈치속젓 그리고 와사비까지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을 밑반찬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비선호 저지방 부위들을 전문적인 숙성법으로 더욱 맛있는 흑돼지 고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고, 웨이팅이 있는 이유가 있다, 제주 오면 다시 오고 싶어진다,

제주 떠나면 다시 생각난다는 평이 많을 정도의 애월 대표 흑돼지 맛집이었다.

저녁 식사 후, 매장을 나오면서 내일 함께 할 차귀도 요트 투어 B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스텔라와 석영은 펜션으로 향했고, 펜션 앞에 도착하자마자, 웅장한 대문을 보더니 호들갑을 떠는 석영

"와! 대박~! 이게 대문이야? 저택이야, 뭐야?"

제주 A 스테이 본관 옆에 위치한 A 풀빌라 별채는 자쿠지만 있는 A 스테이와는 다르게 수영장과 자쿠지가 모두 갖춰져 있지만 본관보다는 평수가 작았고,

1층은 주방, 작은 티테이블, 샤워부스가 있는 욕실이 있으며, 2층은 침실 두 개와, 욕조가 있는 욕실 그리고 실내 자쿠지가 있다.

1층 주방의 구성은 본관과 비슷하지만, 취사가 불가능해서 라면, 삼각김밥 등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만 가능했고,

주방 옆의 작은 티테이블에는 접이식 소파가 있어서 펼치면 누울 수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작은 오브제 느낌이 나는 감성적인 공간이다.

2층 침실과 실내 자쿠지가 있는 공간에는 싱그러운 식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공기 정화가 잘 되는 느낌이고, 침실과 자쿠지 사이에는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TV까지 구비 되어 있다.

본관과 별채의 공통점은 건물 1, 2층 모두 통창으로 되어 있어, 한라산 전경이 보이는 뷰가 개방감이 있고, 답답함이 전혀 없으며, 커튼을 걷으면 야외 정원이

자연을 연상케 해 상쾌함과 안정감까지 준다는 점이다.

수영장은 24시간 온수 유지로 언제든지 사용가능하며, 수영장에 덮개가 덮여 있어서 수질 오염이나 벌레 걱정 없이 이용 가능했고,

편하게 수영장 및 야외 정원을 이용하기에 용이하도록 별채 내부에 미리 준비된 실리콘으로 된 말랑한 슬리퍼도 구비되어 있다.

물을 좋아하는 석영은 수영장을 보자 더욱 난리가 났고, 2층 침실 바닥에 대충 캐리어를 펼쳐놓은 채, 수영복만 꺼내서 금방이라도 물에 들어갈 기세다.

"오~ 오~ 물이다! 수영~ 수영~ 나, 나 수영 할래~ 이럴 줄 알고 수영복 챙겨 왔~지~"

"너 수영할 동안 나는 불멍이나 때려야겠다."

야외 정원 안에는 원형 스톤 화로가 있고, 불멍을 위한 라탄 야외 테이블, 라탄 야외 2인용 의자와 1인용 의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스톤 화로는 바베큐로도 활용할 수 있는데, 스톤 화로 위에 망으로 된 스파크 스크린을 올려두면 안전하게 불멍을, 바베큐 그릴을 올려두면

고기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다.

펜션 사장님께 요청하면 1시간 내로 장작이나 바베큐 그릴을 세팅해 주신다.

석영이 온수 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동안, 해녀 와인으로 유명한 발레 벨 보 그란 디저트 제주 아일랜드 와인 1병을 얼음을 채운 아이스 바스켓에 넣고,

와인잔과 와인 상점에서 사 온 크림치즈 호두 곶감말이를 냉장고에서 꺼내 같이 가져와 테이블 위에 둔다.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고 한 모금씩 마시며 크림치즈 호두 곶감말이를 곁들여 먹는 스텔라

발레 벨 보 그란 디저트 제주 아일랜드 와인은 이탈리아 모스카토 품종으로 유명한 발레 벨 보와 협업을 한 리미티드 와인으로,

오로지 제주에서만 구입을 할 수 있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고, 라벨에 해녀 그림이 있으며, 발레 벨 보 그란 디저트 제주 와인의 판매 금액의 일부는

해녀들을 돕기 위하여 사용되기 때문에 해녀 와인이라고도 불린다.

달달한 느낌을 주면서도 청량한 버블 감이 느껴지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풋풋한 청사과 향, 농축된 과실 향과 과일잼 향이 느껴지고, ​

코르크를 천천히 잡아 당기면 쉽게 뺄 수가 있어서 와인 오프너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으며, 차갑게 칠링을 하여 오픈을 하자마자 마시면

달달한 복숭아의 향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함께 곁들여 먹은 크림치즈 호두 곶감말이는 달콤하고 말랑한 곶감 속에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오독오독 호두가 씹히는 재미가 있었다.

스톤 화로 안의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과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불결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온화해지고 편안해졌고,

어느새, 와인 한 병과 곶감말이를 그 자리에서 다 비웠다.

"솔직히 나는 그 시키 맘에 안 들어."

"어떤 시키?"

"메이든 인가, 뭐시긴가."

"왜?"

"10살 어린 시키가 처음부터 니가 누군지도 알고 접근한 거 같고. 영~"

"제일 자유롭게 큰 게, 이럴 땐 선입견 덩어리야, 완전~"

"선입견이 아니라 남자는 남자가 보면 똭 아는 거지~"

"환이는 몰라도 넌 잘 못 보는 거 같아서 믿음이 안 가~ㅋ"

"아, 씨~ 진짜 내가 친구니까 이런 말해 주는 거야~ 내가 니 연애사를 아는데, 맨날 배신당하고~"

"안 닥치냐? 요새 안 맞았지? 니가? 야, 그리고 난 적어도 알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믿은 것뿐이지. 후회는 안 해. 근데 넌 아무것도 몰랐잖아, ㅂ신아~

니들이 왈가왈부할 때 내가 뭐라 한 적 있어? 근데 넌 우리가 니 여자한테 뭐라 할 때마다 지ㄹ 발광 염ㅂ 떨었잖아. 어디 감히 비아냥거려."

"미안해, 미안해."

"너야말로 연애할 때 우리 말 좀 들어, 시키야~ 연애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만 넌 좀 물어보고 해~ 아무나 만나지 말고~"

"너무 맞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네~"

"넌 걍 내 말에 반박을 못 하지~"

"니가 항상 맞말만 하니까~"

"ㅋㅋㅋ근데 왜 환이 말에는 맨날 반박하냐?"

"걔가 하는 말은 다 걍 반박하고 싶어, 걍~ㅋㅋㅋ경임이는 변호사니까~"

"환이도 경찰이야, 인마~"

"그거랑은 별개로~ㅋㅋㅋ"

"뭐야~ㅋㅋㅋ그럼 걍 말발 차이 아냐? 환이는 걍 시끄럽다고 하잖아~ㅋㅋㅋ"

"그 시키는 뭐, 내가 뭐, 말만 하면 '시끄러, 시끄러.' 이 지ㄹ~"

"근데 니가 시끄러운 건 맞지~ㅋㅋㅋ"

"야, 이 씨~ㅋㅋㅋ"

"현자는 마음에 입이 있고, 바보는 입에 마음이 있다는 말 아니? 말을 할 때는 마음속으로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넌 생각을 안 하고 걍 덤비니까 설득력이 없지~"

"아, 맞말 그만하라고~"

"ㅋㅋㅋ"

석영은 조금 떨어져 있는 스텔라와 대화를 하면서도 그녀가 와인 한 변을 다 비울 때까지 혼자서 수영을 즐기는 것만 봐도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고,

수영장에서 나와 별채 안으로 들어가면서 스텔라가 테이블을 정리하는 걸 슬쩍 보더니 와인이나 위스키보다는 소주나 맥주를 더 좋아하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샤워하기 위해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스텔라도 잠 준비하려, 본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조에 물부터 틀었고, 입욕제를 풀었다.

헤어 밴드를 하고, 클렌징 워터를 적신 화장솜으로 화장을 1차적으로 지운 후, 욕실 세면대로 들어가, 클렌징폼으로 2차 세안을 하자,

욕조에 물이 다 차서 수도를 잠갔다.

그리고는 한 장씩 뽑아 쓰는 마스크팩을 꺼내, 시트 한 장을 뽑고 얼굴 위에 밀착시킨다.

반신욕과 팩은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그녀의 저녁 루틴 중 하나이다.

마스크팩을 한 채, 반신욕을 하면서 욕조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셋째 날이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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