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언어
시작은 A였으나 과정은 B가 되다
“어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나온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내가 글 쓰는 방법을 배우며 글을 쓰고 있었기에, 정확히 말하면 '작품'을 쓰는 방법을 공유할 목적으로 매거진을 만들었었다.
브런치북도 있었지만 굳이 매거진을 선택한 이유는
검색이 잘 안 될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배우며 알아가게 된 글쓰는법 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쉽게 볼 수 있는 파일이 필요했고, 그 용도로 매거진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일기 같은 거였다.
어차피 글쓰는 방법을 정리 하는 거니까 '이럴땐 어떻게 써야할까 ?' 하고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노출되는 건 싫었다.
'내가 글쓰는 방법_실시간공유'
매거진에 이런 제목을 썼을 때 나는 왕초보이고,
아무도 내 글을 안 볼 거라 생각했다.
브런치에는 워낙 작가도 많고 글 잘 쓰는 분들이 많으니까.
내가 쓴 왕초보의 작법을 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라이킷이 달리는 걸 보면 몇몇 읽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괜찮다.
노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주 조금 1% 정도는 누군가에게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쓰다 보니까 이게 갑자기 나의 집필 과정이 되어 버렸다.
시작은 A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B로 바뀌어 버렸다.
제목도 '왕초보가 글 쓰는 방법 실시간 공유'로 했다가,
나중에는 '‘왕초보 글쓰기 우당탕탕 대환장 파티'로 바꿨다.
글쓰기 방법을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론이 태어나는 기록 공간이 되었다.
부자가 되려다 멈춰버린 4페이지의 사유
“의식은 답을 찾기 전까지 불안을 내려놓지 않는다
나는 천 개의 돌을 쓸 생각이 없었어.
존재론을 쓸 계획도 없었어.
아예 뭐 그런 것엔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YouTube에서 우연히 부자가 되는 글 읽기라며 고명환이 부자가 되어 나타나서는 강의를 하네.
개그맨인데 자기는 책을 이렇게 읽어가지고 부자가 됐다는 거야.
3일은 책을 읽고 이틀은 산책을 하며 쉬어라.
그러니까
첫날은 철학.
두째날은 문학.
세째날은 과학.
철학, 문학,과학책을 하루에 한권씩 30페이씩 읽고 이틀은 산책을 하며 쉬라는거야.
그러면 내안에서 솟아나는 게 있데. 그거대로 하면 돈을 번다는 원리 였어.
말을 곧이 곧대로 잘 믿는 난,
책장 앞으로 갔어.
부자가 될려고. ㅎ
내가 집어든 책은
피터프랭클에 죽음의 수용서에서(철학)
데미안(문학)
아주 작은 습관의 힘(과학) 이였어.
아쉽게도 내 책장엔 과학책이 없었어. 자기 계발 도서 중에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게 있었지. 그 책은 이미 읽은 거였는데 앞으로 내가 쓸 책
(자가치유 성공한 방법에 관한) 의 구도를 모델링할 책이라 그 책을 집어 들었지. 자기 계발 도서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거란 점도 작용했지.
죽음의 수용서에서 3시간을 읽었지만 30 페이지도 못 읽었어.
그래도 데미안에 비하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꽤 많이 읽은편이 였어.
데미안은 4 페이지 읽었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은 줄 치워놓은 거, 그것도 아주 한 단락 밖에 못 읽었어.
왜냐하면 독서메모량이 많아서, 상당했거든.
그리고 이틀 쉬어야 되니까
4일째 되는 날은 10페이지 정도 까지 읽어놓은 '작가가 읽는법'이라는 책을 펼쳐들고는 책을 어떻게 읽는건지 요점정리 해 놓은 것을 다시 훑었어.
어는 지점에서 내가 멈췄나?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내가 시큰둥했던 부분은?
당신이 적은 그부분들이 독자를 움직이게 할 부분이다.
이 메모들을 보고 다시 데미안,죽음의 수용서,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을 훑으며 내 느낌이 선곳들을 봤지.
아~!! 이부분들이구나.
“행동은 의식을 선회하고, 의식은 존재를 바꾼다.
또한가지 더, 또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책 문구가 생각난거야.
될 일은 된다 책에 보면 잠들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 '나는 누구인가'물어보면 무의식이 거기에대한 답을 준다는 거야.
나는 누구인가
말로 세번 내뱉고 속으로 반복 되내면서 잠들면 무의식이 그 질문에 답을 준다는 거야.
근데 옛날에 그걸 해 본 적이 있었거든.
그날 정말 신기한 꿈을 꿨었어.
그러면 이번에도 무의식이 무슨 답을 주는지 보자 싶었지.
이번에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 뭐야?
하면서 잠 들었거든.
기대를 잔뜩하고 잤는데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
어? 아리송해 하며 안되는구나!
하고 말았지.
나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실천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
항상 얻은 정보에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정보를 접목해서 활용하지.
내가 자가치유에 성공한것도 이 때문인것 같아.
심리학 도서를 읽을때도 난 도서에서 발췌한 정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접목해서 실천했거든.
잠깐 샛길로 샜다.
5일뒤면 토,일,월에 다시 책을 읽어야 했지만 날짜 새는것도 산만하고 해서,
그냥 월화수는 책을 읽은뒤 남은 주는 쉬기로 했지.
하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아프고 층간 소음에 도망도 다녀야 하고,
맨날 길에서 돌아다니고 ㅠ
그 다음 주 월,화,수가 왔지만 책을 읽지 못한채 다음주로 넘어 가버렸어.
그 주 월,화,수도 역시나 책은 읽지 못했어.
토요일이 되고 우크렐레 공연 준비를 하면서 나를 관찰했어.
관찰하는 동시에 적었지.
그리고 천개의 돌이라는 글이 나온 거야.
다만 책을 읽었고, 관찰했고, 기록했고, 질문했을 뿐이다.
어느 순간, 글은 ‘써진 상태’로 내 앞에 있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어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나온다는 것을.
26년 1월 24일 영양
.
“의식은 답을 알려줘도 말 안 듣는 아이 같다. 지가 답이 나야 끝낸다.
새벽 6시
일어나자 마자 데미안 책을 집어 들었다.
어제 분명히 데미안 책을 읽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홀린듯 책을 집어 들었다.
읽을려고 들은것이 아니다.
그냥 들려 있었다.
책장을 한장씩 넘겨보았다.
피치, 파스텔톤 하늘색, 블루블랙.
색색별로 줄을 그어놓은 여백에 빽빽히 들어선 메모들이 보였다.
내 메모를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다.
맞다.
데미안의 첫페이지를 읽었을때 나의 격감은 처음 일어났다.
이날 하루종일 격하게 감동하고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채 하루를 보냈다.
그 후 나는 나의 글에 격감하고, 내 깨달음에 격감하고 내 통찰에 격감하는 2달을 보냈다.
나의 격감의 시작 지점을 다시 보았다.
평생해 보지 못한 격한 감동을 지난 2달간 숨이 멎을 정도로 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 말고 오열을 토한 사건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밥먹다말고 또 글감이 떠올랐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손바닥만한 메모지 5장과 검정 볼펜을 빌려서는 글을 섰다
내손에 들려 있던 숟가락은 식탁에 누워 쉰다.
쓰면서 내가 어떤 처지에 있었고, 어떤상황이며, 내 고통의 깊이가 보통사람이 견딜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는걸 알수 있었다. 그 깊은 맨홀에서 나를 살리려 무뎐히도 애썼던 내가 보인면서 나는 그렇게도 서글프게 울어됐다. 식당 한가운데서.(무엇을 적었는지 존재론이 발간되면 공개함)
주인아주머니는 모른척 하고 계셨지만 내가 오열을 토하는걸 애써 모른척 하고 계셨다는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고
데미안 10,11페이지 메모를 읽고 데미안의 서문과 나의서문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찾았다.
나에서 우리로 이렇게 써야 하구나.피치색 줄.
내글에서 프롤로그를 우리로 뻗어가게 바꿔야 한다는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헤를만해세는 28페이지에서 또한번 우리로 뻗어가는 글을 쓴다.
34페이지에서 크로머가 어떤잔인함을 지닌아이인지 묘사하고 싱클레어의 심리 갈등의 원흉임을 표현한다.
아 이제 알겠다.
우리를 어떻게 쓰는지.
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쓰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한채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써내려 가지고 있었다.
그저 몇 곳이 빈다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불안해 하고 있었다.
그 수준에 도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뇌는 의식의 수준에서 규칙이나 원리를 찾지못하면 불안을 일으킨다.
선명함이 보일때까지 계속 찾아 헤맨다.
데미안 책을 다시 집어든건 해소 발화점을 찾기 위해서 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멍청한 의식같으니라고.
무의식이 하는일을 의식 따위가 어떻게 알겠니.
의식은 마치 답을 알려줘도 말 안듣는 아이 같다.
고집불통에 지가 답이 나야 끝낸다.
하지만 보이는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이 또한 의식이 답을 찾았을때 내놓는 감정선이다.
이걸 가질려고 그리도 쓰잘대기 없는일에 매달리다니.
그럴시간에 흩어진 메모하나 더 모으지.
“자기비하는 나를 미워하기 위한 감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신호였다.
두뇌의 언어. 아니 의식의 언어는
답을 알지 못할때 불안을 데려 온다.
어렵다. 포기.
내가 할수 있을까?
내가?
의심- 모르는 구간이 있을때마다 내가 무슨 문학적 글을 쓴다고,
자.기. 비.하.
혐오의 지점까지 꼭 찍고 와야 성이 풀리나보다.
격감- 글을 다시 봐도 내가 쓴글을 보고 격감하는 구간에 들어서게 되면,
서사 구조는 너무 좋아 그런데 서문에서 심심해.
뒤가 핵심인데,
앞에서 책을 다 놓겠어.
답이 없는 이 부분(서문)을 일반화 해버린다.
나는 부족해 .
그리고 자.기.비.화.
의식의 두뇌 넌 누구냐?
의식의 두뇌는 자기만의 언어를 쓴다.
그래서 통역해 줘야 한다.
배워야해.
부족한게 아니라 그부분을 채워야 한다.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자. 기. 비. 화.
그럼 왜 의식은 자기 혐오라는 단어를 선택할까.
자기혐오는 불안을 동반한다.
신석기로 올라 가보자.
불안을 느껴야 지킨다.
목숨을.
돌도끼를 만들고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불안의 도출은 흔히들 헤로움으로 알고 있다.
나도 매 한가지다.
하지만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불안을 불러 오기 위해 불가능을 불러 오고 ,자기비하를 가져온다.
이건 사자,호랑이, 맘모스 같은 도구다.
세상은 변했고, 맘모스로 부터 안전해 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은 아직 진화하지 못한 두뇌라고.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진화한 두뇌였다.
행동을 불러 일으킬려면 불안을 불러 와야 하나.
불안을 어떻게 불러 올지.
의식의 두뇌는
살아남는 방법으로 지가비하.혐오를 남겨두었다.
지금 글쓰는 내 심리 패턴을 보니 딱 그렇다.
여기서 행동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괴감, 우울, 무기력이 발생한다.
그럼,신석기 시대,호모사피엔스는 나는 돌도끼를 만들수 있을까? 라는 불안을 느꼈을까?
자기의심 .
내가 무슨 도끼를 만든다고. 자기 비하를 했을까?
여기서 답이 달라진다.
만일 신석기 시대에도 이와 같은 생존기능을 사용했다면 두뇌는 생존에 필요한 기능만 남겨 놓은 것이 된다.
그러니까 필요없는 사자, 호랑이 ,맘모스의 공포의 불안만 삭제한것이다
고로. 우리는 두뇌의 언어를 번역할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슨 문학작품을 쓴다고.는
어떻게 써야될지 몰라서 답을 찾고 싶은거구나!
어떻게 찾아볼까?로.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던일을 계속해야 한다.
여전히 의식의 두뇌는 해답을 찾을때까지 불안을 동반할것이다.
자기비하로 .
그래야 움직이니까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기 위해 온다.”
왕따를 당한다.
죽고싶다. 나같은게,는
아! 나는 괴롭힘을 안 당하고 싶구나
방법을 찾으란 얘기구나.
방법을 찾을때까지 뒤흔든다. 방법을 못찾으니 죽음. 착란이다.
방법을 찾지못한 영혼은 죽여버린다.
두뇌의 오작동이 아니라 의식이 하는 멍청한짓이다.
무의식은 말리지만 의식은 말안듣는 아이와 같다.
답을 추구하는 의식이다. 아이는 사탕이라는 답을 도출하기 위해 때를 쓰다 드러눕는다.
의식도 마찬가지다 드러누워 버린다.
아이는 사탕을 얻지만 의식은 존재 자체가 소멸해 버린다.
과연 의식이 한것은 해결 이였을까?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깊이 빠지면 절망, 낙담, 술로 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구나로 간다.
이것은
아! 사람이 그리운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립구나 로 번역해 줘야 한다.
여기서 건강한 행동이 빠지면 우울로 간다.
행동이 불량하면 극단적이긴 하지만 패인이 될 가능성도 생긴다.
의식은 행동을 도출하기 위하여 불안을 사용하지만 각자의 단위로 존재하는 하나 하나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환경, 경험, 부모로부터 받은교육, 기질등 외부환경에 으로부터 갈린다.
의식은 그 점을 관가 했다.
각자 다른 단위로 움직이는 존재인데 모두에게 같은 방법을 적용하니 어떤이에게는 틀린 작용이 될수도 어떤이에겐 맞는 작용이 될수도 있다.
의식의 두뇌는 왜 이 함정이 있음에도 이 작용을 보편화 했을까?
그냥 두뇌도 보편의 원리를 사용한다로 마무리 해 본다.
멍청한 보편의 원리.
“AI를 거치는 순간, 존재의 밀도는 전부 지워져 버린다. 존재 살리기, AI가 그걸 못하더라.”
쓰다 보니, 오늘도 존재가 튀어나온다.
천개의돌도 지금 쓰고 있는 존재론도 썼다기보다 튕겨져 나온것이다
내가 AI를 싫어하는 이유는 존재를 다 지우기 때문이다.
문장력은 훈련으로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감각의 밀도는 훈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AI를 거치는 순간, 문장은 분명 더 매끄러워진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존재의 밀도는 전부 지워져 버린다.
AI이가 그걸 못하더라. 존재 살리기.
그래서 나는 AI에게
‘문장을 좋게 고쳐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조금 날것이지만, 존재의 밀도기 있는 내 글이 더 좋다.”
� 영양의 기록, 존재의 명언
의식의 언어는 자기비하를 사용한다.
자기혐오는 불안을 증폭시켜 행동을 강제한다.
②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기 위해 온다.
③ 의식은 답을 찾기 전까지 불안을 내려놓지 않는다.
④ 자기비하는 나를 미워하기 위한 감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신호였다.
⑤ 행동은 의식을 선회하고, 의식은 존재를 바꾼다.
⑥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졌다.
⑦ 의식의 두뇌는 해답을 찾을 때까지 불안을 동반할 것이다. 자기비하로. 그래야 움직이니까.
⑧ 의식은 답을 알려줘도 말 안 듣는 아이 같다. 지가 답이 나야 끝낸다.⑨ 두뇌의 언어를 번역하라. 자기비하는 살아남기 위한 신호였다.
⑩ 방법을 찾지 못한 영혼은 죽어간다. 그것은 두뇌의 오작동이 아니라 의식의 고집이다.
26년 1월 25일 12시 22분 영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