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보았다. 나의 두려움과 용기
하늘이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에게는
그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 뼈를 아프게 하여
그가 장차 큰 일을 맡았을 때
그 기국과 역량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인생의 큰 시련을 만났거든
자신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닌지
되돌아 보라 맹자가 말했다
얼마 전부터 이 글을 저장해 놓고 알람을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읽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도 역시 알람이 떴다.
맹자가 말한 글을 읽고 기국 이라는 말의 뜻을 되새겨 보았다.
사전을 검색해보며 기국이란 말은 다음과 같다
기국(器局)
사람의 그릇됨, 즉 타고난 도량·품격·인물의 크기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단순 능력이 아니라,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격적 스케일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인격적 스케일에 가까운 개념 이였구나
저 말이 내 심장에서 진하게 울린다.
마치 내가 그 스케일을 가진 사람처럼.
순간,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난, 역경 들이 고통이 아니라 치워야 될 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6.25전쟁이끝나고 7.80년대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온 국민이 새 마을 운동을 하며
새아침이 밝았네.
새벽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모두들 나와서 활기차게 움직이던 모습이 내가 되어 떠올랐다.
힘 찼고 희망찼다
그러더니 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필름이 지나간다.
숨만 겨우 헉헉 내쉬는 내모습.
그리고 힘겹게 폰을 들고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내모습.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이 고통 속에서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가?
나도 남들처럼 그냥 아프기만 하면 안 되는가.
의문에 사로잡힌 내모습.
필름지는 거기서 멈췄다.
나는 아프면서
아프면 아픈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들이 부러웠다.
나는 아픈데도 계속 무언가를 한다.
고열이 나도 책을 읽고,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에도 글을 쓴다.
나는 육체가 이렇게 아픈데 왜 자꾸 무언가를 하는지.
나도 그냥 남들처럼 아프기만 좀 해보자 싶어서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해 보기도 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타인은 내가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고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색깔이었다.
그냥 좀 아프지 않고 싶었을 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플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 .
아프기만 하는 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냥 의지할 때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를 치료해 주는 의사가 필요했고. 내 병을 낮게 해주는 약이 필요했고 나를 먹여 살려 줄 돈이 필요했다.
쓰다보니 내 마음은 더욱 선명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돌봐 주길 바랬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더라도
나는 계속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그게 '나'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나는 나를 1도 모를 때가 더 많다.
그냥 그들은 아플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있고 치료해 주는 의사가 있고 돈을 해결해주는 보호자가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런 것들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나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그들의 편안함을 따라해 봤다. 그들의 편안함을 따라 해 본다고 해서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따라하는 순간
나의 색깔을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겉훑기식으로 내가 원하는 환경 속에 있는 누군가의 짝퉁이 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타인이 부럽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길 버려 가면서까지 타인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을 소멸시키는 행위다.
맹자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내 심장에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글에서 오는 힘이 나에게 닿았음을 느낄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해온 힘든 모든 길들이 나의 역량과 기국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내가 이 아픈 와중에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나의 독특한 특성임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타인과 남다른 내 모습을 평가절하하며 타인의 모습으로 구겨 넣으려 했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세모로 움직일 때 혼자서 동그라미라고 움직이는 내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세모로 움직이는 보편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도 보았다
진리가 담긴 글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사람에게 재해석되며 깨달음을 준다.
나는 맹자의 말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타인과 나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남들과 똑같아 해야 해.
또한. 나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이 살 것을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좀더
나답게 사는 사람에 더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결핍된 욕구, 남들과 똑같아지려는 차별화를 거부하는 반응은 결국 나 자신을 지워버린다
모두가 세모로 움직일 때 혼자 동그라미라는 움직이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보편성이라는 안락함 뒤에 숨고 싶어 하는 마음(남들과 똑같아지려는 욕구)은 두려움에서 기인하지만, 결국 그것은 '나'라는 원석을 깎아 남들과 똑같은 돌멩이가 되려는 시도와 같지 않을까.
맹자가 말한 '기국'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휘된다
남들이 정해놓은 '환자의 모습', '아픈 사람의 전형'에 갇히지 않고, 고열 속에서도 정신의 날을 세우는 그 모습이야말로 하늘이 시험하고 있는 나의 인격적 스케일 이지 않았을까.
시련을 고통이 아닌 '역량을 시험하는 도구'이자 '치워야 할 돌'로 인식하는 순간, 주도권은 고통이 아닌 나에게로 넘어왔다.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내면의 태양을 띄우는 법을 나는 오늘 배웠다.
삶에 힘든 시련이 오거든.
좋은 글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 좋은 글은 언제나 나를 어느 지점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가. 어느날, 문득 어느 지점에서 자기 자신이 되게 해줄 뿐만아니라 자신의 주도권까지 찾게 해 준다
"모두가 세모로 움직일 때 혼자서 동그라미라고 움직이는 내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