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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샘 Jun 28. 2022

미움의 탄생

종종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시작이 어디인지, 무엇 때문인지, 어떤 감정인지를 우린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아니 찾는다기 보다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되돌아 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경험한 과거, 늘 되돌아보며 이것이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그중에서도 나의 선택과 무관했던 부모, 주어진 환경은 아쉬움이 많았던 부분이다. 그 아쉬움의 마음이 어쩌면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되는 원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과거와 조건들은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 결핍된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어쩌면 내 슬픔과 실패나 좌절의 정당한 사유가 되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마흔 중반인 지금 지난 시절 내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를, 우리 집과 친구의 집을, 나 자신과 친구를 비교했다. 세부적인 비교 내용을 적는다면 끝나지 않을까 두렵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것! 그 비교가 결국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 과정에 좌절했다. 그 열등한 조건들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땐 그 열등감의 조건들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망의 대상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에 그 원망과 미움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여정을 글로 남기려 한다.


너무 당연하게 내 과거에 대해 슬퍼하고 그러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 보려고 상담을 하면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담자가 아닌 내담자로 말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가정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권위적이었다. 늘 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무 희생적인 어머니상 그 자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항상 자식들에게 따뜻하고 한없이 선한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계셔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상담을 받으면서 좋은 기억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참 고통스러웠던 상담을 경험했다. 그러다 한 가지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학원차량을 타고 와 내리는 곳과 집의 거리가 꽤 멀어 마중을 나오시던 모습. 이 모습이 떠올랐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연민도 서글픔도 녹아든 눈물이었다. 계속된 건강의 문제로 쇠약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던 그 모습. 차량에서 내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곤 함께 걸었던 기억. 하지만 거리들 두고 아버지는 앞에 나는 조금 뒤에 말없이 걸었던 기억이 났다. 어색했던 것일까? 불편했던 것일까? 아버지가 싫었던 것일까? 혼자 가기엔 무서웠던 길인데 말이다. 주로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셨는데 가끔 아버지가 오실 때가 있었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와 늘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누르고 눌러 마음 깊은 곳에 가둬두었던 것 같다. 그 감정이 상담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때도 다시 가둘 수 있다면 가두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기억이 없어서였을까? 상담 회기가 반복되어도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찾지 못하고 내면의 갈등을 겪었고, 상담 중기 후반에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참 잔인하다. 단 하나뿐이라는 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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