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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샘 Jun 28. 2022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의 기적

상담이 이어지면서 나는 내담자로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총 24회기의 상담을 받았고 가끔은 상담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약속을 미루고 미루기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뭔가 돌아온 듯 한 그 길을 나는 결국 완주했다.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을 찾으면서 말이다. 그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 때의 내 감정은 뭐라 표현이 안됐다. 뭐랄까 내 안의 모든 것이 뒤엉긴 듯한 무엇 같았고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이 일은 이십 대 후반의 경험이다. 그 이후 나는 미움이라는 웅덩이 속에 자리했던 아버지의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자리로.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된 후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의 이유들을 말이다. 그 이유가 아버지의 삶을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남들은 흔히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나는 과거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모든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고 이유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트라우마! 그 트라우마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트라우마만이 나의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충격은 생각보다 너무 컸고 난 한동안 고장 난 시계처럼 나에 대한 모든 생각과 고민에서 멈춰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의 과거를 형성하는데 아버지라는 존재는 물론 중요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전부가 아닌 조금은 중요한 한 대상을 이유로 나는 트라우마 외의 다른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묻고 지나왔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나 스스로 불행을 자처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고 그 선택이 나를 지금까지 끌어왔다는 것에 조금은 내 자신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름 모를 감정의 집합체 앞에 조금은 무력했지만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을 찾고 내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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